※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엑시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은 말 그대로 '짠내 나는 청년 백수'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용남은 가족들에게는 애물단지요, 귀여운 조카에게는 부끄러운 삼촌이다. 누나(김지영 분)는 '너는 자랑할 게 없으니 옷이라도 잘 빼입고 (어머니 칠순 잔치에) 가야 된다'며 용남을 구박한다.

더 슬픈 건 용남도 그런 자신을 '구박'한다는 것. 사촌들 앞에서 '먹고 자고 똥만 싼다'면서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잉여' 취급한다.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누나들이 노래 부를 때, 사위들이 어머니를 업고 덩실덩실 춤을 출 때, 용남은 가족들 주위를 겉돈다. 그 모습은 참 애처롭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누나(김지영 분)에게 구박받는 용남(조정석 분).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누나(김지영 분)에게 구박받는 용남(조정석 분). ⓒ CJ엔터테인먼트

 
용남은 대학교 시절부터 산악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산악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 능력이 취업하는 데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용남의 누나는 "하필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산악동아리를 했냐"며 또 용남을 구박한다. 용남은 정말 이 사회의 '잉여'일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별 상관없는? 
 
그런데, 닿기만 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흰 연기가 세상을 뒤덮는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용남의 '도움도 안 되는' 산악부 경험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부상당한 누나를 위해 주변 물건들로 들것을 척척 만들어내는가 하면, 위기상황 속 목숨을 건 클라이밍으로 옥상 진입에 성공, 가족들을 모두 살려낸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취업도 연애도 실패한 지질한 청년백수 용남이 모두를 살려내는 영웅이 될 줄 말이다. 산악동아리 경험은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용남은 가족도, 학생들도 구해내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잉여인가, 아닌가.
 
자, 용남은 '잉여'인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왜 주변 사람들 모두는, 그리고 용남 자신은, 스스로를 잉여 취급 했을까. 그건 거칠게 말하면, '돈이 안 되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돈이 되지 않으면 '도움도 안 된다'는 취급을 받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군가가 철학 서적과 문학 서적 등을 탐독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아직 취업을 못한 상태라면,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책 말고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철학 서적과 문학 서적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계열) 전공을 기피하고, 경영학 경제학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경영학, 경제학에 적성이 맞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경영학과 경제학에 진정한 배움의 진수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영학 경제학이 돈을 벌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가. 인문학과 경영학의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면서 인문학을 조명할 때도, 그것이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부록' 정도의 의미로 한정되었을 뿐이다.
 
물론, 경영학과 경제학 등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경영학과 경제학 또한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다. 다만, 한정된 분야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 사회의 편협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이 있다. '문사철'은 과연 돈이 안 되는 학문일까?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여러 관점과 장르, 때로는 실험적인 문학작품을 내놓으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면, 문학 시장 자체가 다양해진다. 전혀 새로운 시각, 전혀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 강국 한국'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이렇게, 문학 꿈나무들에게 토익책과 취업면접 비법 등의 책만을 건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갉아먹으면서. 그렇게 미래의 '셰익스피어'와 '조 앤 롤링'을 떡잎부터 잘라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그래서, 돈 안 되는 것들을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며 글을 맺고 싶다.
 
"여러분, 기죽지 마세요. 당신은 잉여가 아니에요."

극장을 나서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탈출한 용남은, '취업절벽'이라는 재난에서도 탈출했을까? 
 
 재난상황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는 용남(조정석 분)

재난상황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는 용남(조정석 분) ⓒ CJ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게시할 예정입니다.
엑시트 조정석 청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