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전장> 포스터

영화 <주전장> 포스터ⓒ (주)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은 우선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다 영어 타이틀을 살펴보고 나서야 분명하게 이해됐다. '주전장'(主戰場, The Main Battleground of Comfort Women Issue), 말 그대로 '주요전투장소'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평화소녀상을 둘러싼 전쟁 성폭력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위안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주된 전장'을 말한다.
 
극의 화자이기도 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바로 그 장소가 미국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내의 여론은 세계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가 시립공원에 '위안부' 여성 피해 사실을 기리고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에 대한 일본 측의 문제 제기는 치열한 법정공방을 넘어 외교전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감독은 중의적인 의미에서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경계의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의 내면 역시 '전장'과 같았다고 증언한다. 그는 취재를 진행하며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의 과정이 전쟁처럼 느껴졌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 있다. 연출자의 변대로 극의 도입부는 팽팽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듯했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양쪽의 논쟁은 적어도 전반부까진 대등한 듯 보였다. 두 진영의 인터뷰를 영화적으로 병치한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독은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피해 할머니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고 맹공격하던 일본 극우의 논리에 심각한 어폐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점차 쇼트의 배치는 두 진영 간의 논쟁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 극우세력의 인터뷰들을 병렬로 배치하고 충돌시킴으로써 그들 스스로 모순의 함정에 빠져 있는 민낯을 드러나게 한다. 여기에 선민의식이란 과잉된 자의식으로 가득 찬 극우세력의 위선적 모습을 중간중간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이 역겨운 감정마저 일으키게 한다.
 
미키 데자키는 이와 같은 극적인 장치와 효과를 통해 모순투성이의 부실한 인사들이 감독 자신의 뿌리인 일본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표현한다. 그들과 대면하면 할수록 경악스러워지고 급기야 구토가 나오는 심경의 변화에 대해 관객과의 공유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어떤 국적을 가진 관객이라도 전장의 적은 공통의 분모로 수렴된다. 그들은 한마디로 실체도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자들'이다. 감독은 객관적인 접근을 시도하다 도저히 그들의 논리를 대등하게 다룬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영화 <주전장> 스틸컷

영화 <주전장> 스틸컷ⓒ 시네마달

 
일본 극우세력의 망발 나열해 그들의 민낯 보여주는 다큐

영화는 '위안부'의 성폭행 피해가 있었느냐 없었냐 하는 실체적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만행을 일으킨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실체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걸 전하고 있다. 다큐에서 다룬 일본 극우세력들은 일본 사회 내부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자리 잡고 앉은 음지의 존재들 같다. 그리고 마치 세계 지배를 허락받은 이들인 양 종교적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 열도를 장악하고 있다. 극의 결말부에 가서야 이러한 사실과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관객의 반응은 실소와 분노로 뒤섞이게 된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장면이나, 이 문제를 역사교과서에서 다뤄야 한다고 요구하는 인터뷰의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황당하고 엉뚱한 논리를 펴는 일본 극우의 망발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다큐멘터리가 완성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배치의 중간마다 증거로서 제시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짧은 스틸 컷은 호흡이 긴 일본 측 인터뷰를 압도한다. 특히 삽입된 프리즈 쇼트들은 허언에 가까운 극우세력 말 잔치에 철퇴를 날리는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최근 일본의 참의원 선거와 맞물려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베 정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극우세력은 이 다큐멘터리가 매우 거슬렸던 모양이다. 일본은 최근 G20 오사카정상회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기부정의 결과를 가져올 수출규제라는 경제전쟁을 통해 한국을 도발했다. 이로써 이슈를 이슈로 덮듯이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해 선수를 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비록 추측에 불과하지만 타이밍이 그랬다는 것이다.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다큐의 말미에 드러나는 일본 극우세력의 실체는 야쿠자와 같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의 주장은 허술해 보이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뭔가 대단한 무엇이 배후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맞게 되는데, 이내 헛웃음이 나고 허탈한 감정에 쌓인다.

이런 수준의 존재들이 나와 가족, 나아가 민족이나 인종을 수탈하려 했었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일은 어깨의 힘이 빠지게 만든다. 그야말로 허망하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아마 이런 반응은 일본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실체가 없다고 해야 할 만큼 '허접한' 극우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정부를 이끌고 있으며, 그들의 선전에 호도된 국민들은 선거에서 이들을 다시 선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건전한 일본의 지식인, 시민사회가 느끼는 감정은 자괴감에 가까울 것 같다.
 
'위안부' 모른다는 일본 청년들, 이제 '평화의 소녀상' 알게 되지 않았을까

위와 같은 맥락에서 다큐멘터리 주전장은 빅터 플레밍 감독의 명작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닮아 있다. <오즈의 마법사>의 기본 골계는 우리를 통제하는 상징질서가 실체가 없는 이름에서 기인한다는 데 있다. 다큐멘터리 <주전장>에서는 '천황의 땅에서 그가 하사한 신성한 명령만이 의무와 자유'라고 여겼던 과거 군국주의 시대 어린 병사를 등장시킨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 95세의 나이가 된 소년병은 폭력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다시 그러한 야만적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말하자면 소년은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법사의 실체가 없음을 안 도로시가 무사히 제집으로 돌아왔다면,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노인의 낯빛은 어두워 보였다. 그의 증언엔 힘이 있었지만 그만큼의 근심도 엿보였다. 평화의 시대가 더 이상 후대에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그의 눈가와 입매 무시에서 흔들렸다. 그것은 지금 일본사회의 분위기가 이미 역사를 왜곡된 방향으로 선회하고자 하는 자들과의 투쟁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었다. 만약 그렇더라도 일본은 또다시 역사의 흐름에서 응징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희생될 미래의 소녀, 소년들은 어쩌란 말인가.
 
사실 감독이 <주전장>이라고 제목을 단 이유는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신대'에서 '종군위안부', 다시 전쟁의 조직적 성폭력희생자라는 의미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을 썼다가 타협점을 찾아 되돌아온 명칭이 '위안부' 여성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감독은 행간에서 이 완화된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듯싶었다. 애매한 표현이 본질을 왜곡하는 일은 다반사다. 이와 같은 타협은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명칭으로 인해 아예 관심 밖의 대상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감독이 거리에서 인터뷰를 딴 일본의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은 '위안부'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반응한다. 무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들의 의식엔 반면교사로 삼을 역사적 교훈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영화 <주전장>의 한 장면ⓒ (주)시네마달

 
하지만 다행이다 싶게도, 최근 한일 양국간의 이슈로 일본의 젊은이들 역시 '평화의 소녀상'만큼은 알게 된 듯하다. 이로써 묻고 따지고 떠들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위안부'란 없다. 우리가 정확하게 직시해야 하는 것은 군국주의 일제가 주도한 성노예 생활로 청년을 유린당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이다. 감독은 주전장이라는 애매한 일본식 한자 표현을 에둘러 사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위안부'란 표현 대신 역사로써 기술되어야 할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 전장이 감독 자신을 포함한 해당국 젊은이들의 머릿속 어딘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문화평론가이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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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문화정치에 관한 칼럼을 아시아투데이에 연재중입니다. 출판한 저서로는 영화로 읽는 우리시회- 역설과 아이러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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