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관 구해령>.

<신입사관 구해령>.ⓒ MBC

  
MBC 수목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에는 여성 사관(史官)이 등장한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구해령(신세경 분)은 오빠가 주선한 혼례를 무산시킨 뒤, 조선왕조 최초의 여성 과거시험에 응시한다. 당당히 합격해 예문관 여사(女史)가 된 그가 궁에 들어가 역사를 기록하면서 겪게 되는 스토리가 <신입사관 구해령>에서 전개된다.
 
조선시대 역사에는 여성 사관이 없었다. 중종(재위 1506~1544년) 때 설치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을 뿐이다. 이 드라마는 여성 사관이 있었다는 전제 하에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여성 사관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여성 사관을 둘러싼 문화적 배경만큼은 정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조선시대의 핵심적인 정치 쟁점과도 연결됐다. 그런 점에서, 그 문화적 배경만큼은 화면 상에 정확히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7월 18일 방송된 이 드라마 제3회 및 제4회에서 이 제도의 설치 과정이 묘사됐다. 고대 중국 왕조인 주나라 때의 선례를 들어가며 설치를 강력히 주장한 인물은 조정 실세인 좌의정 민익평(최덕문 분)이다. 그는 임금을 대신해 국정을 수행 중인 왕세자 이진(박기웅 분)을 상대로 자기 주장을 강력히 개진했다.

고대 중국 왕조인 주나라에는 존재했던 여성사관
 
 좌의정 민익평(최덕문 분).

좌의정 민익평(최덕문 분).ⓒ MBC

  
드라마 속 민익평의 말처럼 주나라에는 왕실의 사적 공간에 배치되는 여성 사관이 있었다. 주나라 행정제도를 기록한 <주례>에 여사(女史)라는 관직이 등장한다. 이 책 천관총재(天官冢宰) 편은 여사에 관해 "내령을 기록한다(書內令)"고 말했다. 왕후의 명령을 기록하기 위해 여사를 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나라의 여사가 온전히 사관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회계를 포함해 왕후를 위한 실무 작업을 함께 담당했다. 이러저러한 보좌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관 역할을 겸했던 것이다. 
 
 세자 이진(박기웅 분).

세자 이진(박기웅 분).ⓒ MBC

  
드라마 속 민익평이 주장하는 것은 주나라 때보다 전문적인 여사의 설치다. 이에 맞서 세자 이진은 극력 반대한다. 드라마가 41분쯤 경과한 시점의 어전회의에서, 이진은 신하들을 내려다보며 "그래요, 사관이 있습니다. 조회에도 경연(세미나)에도. 전하와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와 언위(言爲)와 동정을 적어남기지요"라며 이렇게 역정을 냈다.
 
"내 그것이 두려워 지금도 말 하나 눈짓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데, 좌상은 여사관을 두어 내 침소까지 염탐하려 드십니까?"
 

위 장면만 보면, 이 문제를 놓고 왕실과 신하들이 대립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곧바로 반전을 보여준다. 세자의 아버지인 주상 이태(김민상 분)가 좌의정 민익평과 '한통속'이 돼 있는 장면이 뒤이어 나온다.
 
 임금 이태(김민상 분).

임금 이태(김민상 분).ⓒ MBC

  
드라마가 43분쯤 경과하면, 장면이 어전회의에서 임금 침전으로 바뀐다. 주상 이태가 베개에 팔꿈치를 얹고 삐딱하게 앉아 민익평과 대화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태는 "내 말했지 않은가? 세자 고집에 쉽게 받아들일 리 없다고"라며 이렇게 말한다.

"뭐, 이참에 기를 한번 꺾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제왕 교육으로 말이야. 해서, 시일이 오래 걸릴 것 같은가?"
 
민익평은 "저하께서는 영특하신 분이시니, 곧 소신의 뜻을 알아주실 것이옵니다"라고 답한다. 민익평의 호언대로 여사 선발을 위한 과거시험이 열리고, 여기서 주인공 구해령이 급제해 이른바 '구 여사'가 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여사 설치 문제를 임금과 좌의정이 합세해 왕세자를 길들이는 방편이었던 것처럼 설명했다. 안 그래도 사관이 두려워 말 한마디는 물론이고 눈길 한번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세자를 한층 더 기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여사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드라마에서처럼 여사 문제의 파괴력이 세자를 길들이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 제도가 끝내 시행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게 된다. 드라마에서와 같이 임금이 자식 교육 차원에서 실시할 수 있는 제도였다면, 그 기나긴 500년 역사 중의 어느 시점에는 한번쯤 실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실제의 조선 왕실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한국사 전체에 걸쳐 중요하게 작용한 '임금 대 기득권층'의 대결 문제가 숨어 있었다. 역사학 용어로는 '왕권 대 신권'의 대결 문제다.
 
지주와 양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하들은 임금의 수족을 어떻게든 줄이려 했다. 임금이 군대를 늘리거나 궁녀 및 내시들을 증원하려 할 때마다 신하들이 극력 반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임금 옆에 사람들이 많아져 왕권이 강해지면 귀족세력이 임금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을 통제하지 못하면 노비 정책(노동자 정책) 및 토지 정책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귀족 신하들은 임금 옆에 사관을 많이 배치하려 했다. 사관은 기본적으로 양반층의 편이었다. 이들을 배치해 임금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는 것은 귀족들의 이익에 부합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대부들이 남성 사관뿐 아니라 여성 사관까지 배치하려 했던 것이다.
 
<중종실록>에 소개된 어전회의 한 장면

드라마 속의 일부 대신들은 어전에 들어온 여성 사관들을 성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실제의 조선시대 관료들은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여성 사관을 배치하는 게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지, 드라마 속의 일부 신하들처럼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 어떻게 아녀자가?' 식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왕실과 양반층 사이에 있었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음력으로 중종 14년 4월 22일자(양력 1519년 5월 20일자) <중종실록>에 소개된 어전회의 장면이다.
 
이날, 동지사(종2품 차관급) 김안국은 '중국에는 예로부터 여사가 있었다'는 논리를, 사헌부 장령(정4품) 기준은 '군주가 홀로 있을 때도 수양하려면 필요하다'는 논리를 들어 여사 설치를 건의했다. '왕권 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중국도 했으니까' '전하의 수양에 필요하니까' 같은 논리를 댔던 것이다.
 
중종은 당연히 반대했다. 그도 우회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옛날 여성들과 달리 요즘 여성들은 글을 잘 짓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여사 설치를 직접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여성 인재가 부족하다'는 논리를 댔던 것이다.
 
그러자 김안국은 '꼭 문장에 능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하고, 시강관(정4품) 이청은 '언문으로 기록해도 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들의 태도 어디에서도 '여자가 어떻게 사관 일을 해?'라는 식의 선입견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왕권 견제를 목표로 여사 설치를 열심히 건의할 뿐이다.
 
신하들이 이러저러한논리를 끄집어내며 공격을 계속하자, 중종도 새로운 논리를 찾아냈다. 올바른 여성 사관을 구하려면 '마음이 바른 여자'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여성을 구하기가 힘들므로 여성 사관을 설치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이청은 '여성 사관과 남성 사관의 역할은 다르므로, 남성 사관을 구할 때처럼 엄격한 잣대를 댈 필요는 없다'고 응수했다. 여성 사관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든 여성 사관을 설치할 목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중종은 이청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유능한 인재를 천거하는 게 대신들의 임무인데, 요즘 대신들이 미진한 것 같다'며 여사 문제에 관한 논의를 막아버렸다. 이렇게 해서 어전회의의 화제는, 임금이 대신들을 질책할 수 있는 소재로 건너가 버렸다.
 
왕실 사람들은 귀족 신하들이 임금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는 것도 모자라, 왕실의 사적 공간에까지 사관을 투입하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중국과 달리 조선 왕실은 이 문제에 특히 예민했다. 사적 공간만큼은 귀족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양반층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500년 동안 여사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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