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저스의 일본인 투수 마에다 켄타는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각)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 경기에서 7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12경기 무승을 털어내고 71일 만에 시즌 8승을 따냈다. 마에다가 7이닝 이상 투구하면서 무실점을 기록한 것은 올 시즌 처음이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번 호투로 인해 마에다의 가을야구 선발 로테이션 합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호의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주전 라인업 전원을 우타자로 배치한 애리조나를 상대로 7이닝 5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가벼운 목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지만 전혀 후유증을 느낄 수 없는 호투였다. 하지만 현지 언론도,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류현진의 호투에 대해 전혀 유난을 떨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짠물 투구'를 하는 투수가 늘상 보여주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류현진이 7이닝 이상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상대를 틀어 막은 것은 올 시즌 8번째였다. 평균자책점 4.12의 마에다에게 7이닝 무실점은 대단한 기록이지만 평균자책점 1.45의 류현진에게 7이닝 무실점은 그냥 일상적인 날 중 하루에 불과했다.사실 올 시즌 류현진과 비교할 만한 대상들은 함께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역 선수들이 아니라 이제는 자료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빅리그를 호령하던 과거의 '레전드'들이다.

마운드 10인치로 낮춘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
 
 2019년 7월 2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홈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류현진 선수.

2019년 7월 2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홈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류현진 선수.ⓒ AP/연합뉴스

 
초창기 메이저리그는 공인구의 개념이 없어 무겁고 반발력이 낮은 공을 주로 사용했다. 공이 멀리 날아가지 않으니 당연히 투수들이 득세를 부리던 '투고타저'가 기승을 부렸고 이를 통칭 '데드볼 시대'라고 부른다. 통산 511승에 빛나는 사이 영이나 110번의 완봉승을 기록한 월터 존슨 같은 전설적인 투수들이 바로 이 시대에 등장했다(물론 '데드볼 시대'에도 1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타이 콥 같은 위대한 타자도 있었다).

그러던 1920년 메이저리그는 공의 반발력을 높이고 부정투구를 엄격히 금지하며 타자들의 장타력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라이브볼 시대'의 시작이었다.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면서 노골적인 투고타저가 즐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리그가 심각한 타고투저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1968년까지 마운드의 높이가 무려 15인치(38.1cm)에 달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투수들이 2층 높이에서 내리 꽂는 투구가 가능했다. 

1966년의 샌디 코팩스(1.73), 1985년의 드와이트 구든(1.53), 1994년의 그렉 매덕스(1.56),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스(1.74)처럼 '라이브볼 시대'에도 비현실적인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들은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라이브볼 시대 한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 기록은 1968년 1.12를 기록한 밥 깁슨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깁슨 바로 밑에 1.45에 빛나는 2019년의 류현진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류현진이 최종적으로 어떤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치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류현진의 평균자책점 1.45는 쟁쟁한 레전드들을 뛰어넘는 대기록이다. 물론 코팩스와 구든, 매덕스 같은 선수들은 이닝이나 탈삼진, 대체선수대비 승리 기여도(WAR) 등에서 류현진을 앞섰지만 적어도 실점 억제 능력 만큼은 올해의 류현진이 그 어떤 전설들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류현진이 1968년 깁슨이 세운 기록을 경신하려면 잔여 경기에서 42이닝 무실점을 기록해야 한다. 아무리 류현진의 최근 기세가 좋다 해도 앞으로 7경기 연속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깁슨이 1.12를 기록했던 1968년의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2.98에 불과했던 반면에 마운드 높이 10인치(25.4cm)에 약물 시대 이후 가장 많은 홈런이 나오고 있는 올 시즌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4.51에 달한다.

'불멸'이라는 2000년 페드로의 조정 ERA 위협하는 '코리안 몬스터'

깁슨과 함께 최근 류현진과 많이 비교되는 투수는 바로 '외계인'이라 불리던 페드로 마르티네스다. 페드로는 만28세 시즌이었던 2000년 4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8승 6패 ERA 1.74 284탈삼진으로 개인 통산 3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0년은 새미 소사,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약물 선수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40홈런 타자만 16명이나 배출된 극단적인 타고투저 시즌이었기에 페드로의 성적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장효과나 리그의 투타 밸런스를 고려한 조정 평균자책점(ERA+)을 계산한다. 2000년의 페드로는 조정 평균자책점이 무려 291로 라이브볼 시대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에서 약물타자들을 상대하면서 만든 기록이기에 많은 야구팬들이 페드로의 2000년 조정 평균자책점을 불멸의 기록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 시즌 이 기록의 아성이 류현진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류현진은 12일 애리조나전까지 조정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 중이다. 이는 1994년(271)과 1995년(260)의 매덕스, 1968년의 깁슨(258)을 뛰어 넘는 라이브볼 시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00년 페드로와의 차이는 고작 5에 불과하다. 물론 조정 평균자책점은 앞으로의 활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만 2000년의 페드로를 위협하는 성적을 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올 시즌 류현진이 얼마나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적수가 없는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전체 1위와 이닝당 출루 허용수(0.93) 내셔널리그 1위, 다승 3위를 달리고 있는 류현진은 분명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레이스에서  가장 유력한 1순위 후보다. 다승 1위(14승)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와 탈삼진 1위(189개)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이 류현진을 추격하고 있지만 두 선수는 각각 평균자책점(3.72)과 다승(7승)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매체 CBS스포츠는 올 시즌이 끝난 후 열릴 FA 시장에서 류현진을 랭킹 5위로 분류하며 예상 몸값을 2년 400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로 전망했다. 류현진을 평가절하하는 언론들이 단골로 써먹는 적지 않은 나이와 수술경력이 또 등장했다. 하지만 류현진의 에이전트는 바로 '악마' 스캇 보라스다. 류현진이 전설들과 비교될 정도로 역대급 성적을 올리고 있는 지금, 보라스도 고객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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