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이타미 준의 건축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 중 일부는 그가 설계한 수풍석 박물관, 방주교회를 들르곤 한다. 다만 그의 건축물에 감탄하다가도 그가 재일 한국인이었고, 그 정체성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어 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고인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거기에 깃든 그의 정신, 그리고 그가 겪었던 차별과 아픔을 오롯이 담고 있다. 건축 영상물 작업을 꾸준히 해 온 정다운 감독이 뚝심으로 8년간 준비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없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타미 준의 바다>는 상당한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물이다. 작품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이타미 준은 지난 2011년 사망했다. 또한 움직이지 않는 건축물을 함께 조망한다는 것 또한 국내에선 생소한 접근이다. 자칫 한 예술가의 일대기, 혹은 실험적 영상이 가미된 실험 영화로 끝나 버릴 여지가 있기도 하다.

영국에서 건축-영상을 공부한 뒤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정다운 감독이 제주에서 수풍석 박물관을 처음 봤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간 여러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봤는데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성당에 들어간 듯, 명상하듯 제 심연을 돌아보게 하더라." (참고 : "나이 60 돼서야 꽃 핀 재일교포 건축가, 삶의 큰 위로였다" http://omn.kr/1kdon) 

개인적 감상이 아무리 강렬해도 이를 영화적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일은 전혀 다른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감독의 확신과 뚝심이 필요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고인의 건축물을 하나씩 제시하면서 그 건축물과 연관된 사람 역시 제시한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풀어내는 사람들의 면면을 쫓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정규 교육과정을 유동룡이라는 본명을 고집하며 이수한 학생.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일본 활자에 '유'가 없어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한국을 드나들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과 절친한 친구이자 작곡가 길옥윤의 이름을 따서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만든 그는 평생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간직했다. 그가 맡은 첫 건축이 한 재일교포의 집이었고,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한 재일교포를 위하 소박한 식당을 무료로 건축하기도 한다. 

영화엔 그에게 특별한 작업을 의뢰한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재일 한국인이거나 한국과 연관이 있는 이들의 자녀였다. 이타미 준이 한국인임을 모른 채 이들은 그의 작품만 보고 감동해 의뢰한 것.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예술의 정언명제 중 하나를 오롯이 내보인 셈이다.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막연한 교훈 전달 아닌 교감의 미덕

다시 강조하지만 <이타미 준의 바다>는 한 위대한 건축가의 삶을 전달하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그의 공간에 대한 철학, 즉 지역성을 철저히 공부해 그곳과 녹아드는 건축을 만들고자 했던 고인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공간에 특별한 몇몇 사람을 배치해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느끼게 한다. 

영화 곳곳엔 아이, 청소년, 중년, 노년이 각각 이타미 준 건축물에서 서성이거나 뛰노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인을 추억하는 관계자들과 병렬적으로 제시된 일종의 감독의 시선인데 이는 곧 관객이 그 공간의 의미를 돌아보게끔 하는 효과를 갖는다. 참고로 아이는 정다운 감독의 실제 자녀이며, 재일 음악가 양방언, 건축 평론가가 직접 출연해 각각 이타미 준을 형상화했다. 

양방언의 음악,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수 최백호의 노래도 인상적이다. 가사가 있는 음악을 다큐멘터리에선 보통 잘 쓰진 않지만, 최백호의 노래가 영화 화면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 이 역시 감독의 복안이라 할 수 있다. 

'슬픔과 힘든 상황에 가라앉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보는 것'. 이타미 준의 작품과 생애는 곧 '비애미'였다. 영화는 그 가치를 존중하며 관객에게 함께 느껴보자고 제안한다. 결코 교조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서 다소 긴 112분의 러닝타임이 일종의 치유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한 줄 평: 한국영화계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치유 영화 
평점: ★★★★(4/5)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관련 정보

제목: 이타미 준의 바다 (영제: The Sea of Itami Jun)
제작: 기린그림
배급 및 투자: ㈜영화사 진진
감독: 정다운
출연: 이타미 준-유동룡, 쿠마 켄고, 반 시게루, 유이화, 양방언
내레이션: 유지태
상영시간: 112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일: 2019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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