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피디.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정다운 감독(우)과 김종신 피디(좌).ⓒ 영화사 진진

  
영국 유학 후 졸업장 하나만 들고 귀국한 두 영화인은 이 건축가의 작품을 만난 뒤 큰 변화를 겪는다. 막막한 상황에서 느낀 큰 위로와 치유.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바로 그 놀라운 경험과 품고 이타미 준의 삶의 궤적을 오롯이 쫓는 작품이다.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 박물관 등 제주도 곳곳에 자리한 이타미 준의 건축물은 관광객들도 꽤 알고 찾을 만큼 명소가 됐지만 정작 그가 재일교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6년 제주에서의 그 경험을 품은 지 5년 이타미 준의 작고 소식을 들은 정다운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다. 남편이자 영화적 동료인 김종신 감독이 자연스럽게 피디 역할을 맡게 됐다. 

본질에 다가간 거장

평소 영화 속 공간,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정다운 감독은 영국에서도 건축 영상을 공부했다.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김종신 피디와는 주말부부로 지내며 말 그대로 공간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공간의 영화성을 깊이 팠다. 그러던 그에게 이타미 준은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건축은 외형이 아닌 물질(재료)이다'라는 가치를 기본으로 해당 지역과 특징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건축물을 내놓아 온 대가. 게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늘 간직하려 일본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유동룡이라는 본명을 고집한 채 마친 재일 한국인. 이타미 준은 그의 본명이 아닌 한국으로 오가는 비행기가 오가던 비행장과 친구이자 작곡가인 길옥윤 선생의 마지막 글자를 따온 예명이다. 정 감독은 그의 생애와 건축물 자체가 사람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수풍석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그간 여러 건축물을 보기 위해 여행도 다녔고, 실제로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봤는데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성당에 들어간 듯, 명상하듯 제 심연을 돌아보게 하더라. 처지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용기와 큰 위로를 경험했다.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강하게 안고 나왔지. 이타미 준이란 건축가는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는 걸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재일 한국인이더라. 

저희 두 사람 모두 나름 영국의 좋은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굉장히 불안한 상태로 한국에 왔거든. 큰 감동과 다시 살아갈 힘을 이타미 준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받았다. 하지만 그땐 찾아갈 용기는 없었고, 2011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무작정 그분의 따님(유이화 ITM 건축연구소 소장)을 찾아갔다. 선생님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얘길 나누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하셨다. 유 소장님도 우리가 이타미 준 선생을 이해하는 것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지를 파악한 것 같더라. 그렇게 선생님의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선생님에 대해 느꼈던 게 맞더라. 그것 역시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다운 감독) 


그렇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다. 이타미 준은 디아스포라, 즉 일본에선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선 일본 건축가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타미 준의 건축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아름다움을 떠올리던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놀라운 교감의 순간들

- 애초부터 다큐멘터리였나. 두 사람 모두 상업영화 연출부 출신(아이러니하게도 정다운 감독, 김종신 피디는<결혼은 미친짓이다>로 만나 결혼했다-기자 주)으로 어찌 보면 극영화에 더 특화돼 있는데.
정다운(아래 정) : "김종신 감독은 다큐 피디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지. 다만 전 영상과 공간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측면이 있는데 건축도 그렇다. 영화와 많이 닮아있다. 한국에 왔을 때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공간이 큰 자극이 됐던 거지. 확실한 팩트 안에서 만들어지는 서사성은 어릴 때부터 아주 좋아했다. <인간극장> 같은 다큐 말이다."

김종신(아래 김) : "상업영화 연출부를 같이 하면서 큰 자본과 큰 규모의 작업이 정 감독과 잘 안 맞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됐다. 건축물을 되게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해당 건축물을 보기 위해 여행을 따로 할 정도였으니. 함께 영국에서 공부하고 제주에 와서 영상 작업을 하는데 이타미 준 선생 작품이 정다운 감독을 사로잡았더라. 2008년부터 돈을 받고 건축가분들 작품을 영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기린그림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영상 작업을 해왔는데 이타미 준 다큐멘터리는 전혀 투자를 받진 못했다. 건축 다큐가 생소하기도 하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기도 했기에 대부분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지원금을 받아 진행했는데 돈이 떨어지면 작업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래서 8년이 걸리게 됐다."

정 : "김종신 감독은 영국에 있을 때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나중엔 점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때 남아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웃음). 그 8년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유이화 소장의 말이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두 분을 정말 좋아하셨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지금까지 왔다."

- 가장 인상적인 것이 이타미 준의 진가를 알아보거나 감동한 사람들 중 재일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이다. 서로 한국적 뿌리가 있는 걸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두 분 역시 그 정서에 감동한 게 아닐지.
정 : "정말 그렇다. 그걸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만 우리 영화가 그럴 순 없었다. 이타미 준 선생의 첫 클라이언트부터 교포였듯 쭉 선생님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 나오듯 한 교포가 일본에 터를 잡을 수 있게 가게를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했고. 누군가의 터전을 지어주는 사람이 건축가라면 선생님은 그런 디아스포라 성을 가진 사람들이 뿌리내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타미 준 선생님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걸 아직 모르는 분이 꽤 많다."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약점의 장점화... 영화 자체가 힐링 된 이유

개인의 놀라운 체험, 그리고 한 건축가의 놀라운 삶과 건축물에 담긴 정신을 그린 영화라지만 <이타미 준의 바다>가 태생적으로 품을 수밖에 없는 약점이 많다. 주인공은 이미 작고했고, 건축 다큐멘터리 또한 국내에선 생소하다. 그 때문에 투자자들도 의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며 난색을 보였다. 정다운 감독, 김종신 피디는 스스로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공간에 담긴 시간성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아이, 청소년, 중년, 그리고 노년을 상징하는 인물을 배치해 이타미 준의 궤적을 쫓았다. 

- 112분이라는, 다큐멘터리로선 상당히 긴 러닝타임이다. 또 아이부터 노년의 인물을 배치한 것 또한 모험적 구성으로 보인다. 노인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전문 배우가 아닌 건축 평론가라고 알고 있는데.  
정 : "지금도 두렵다. 다만 창작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우린 우리의 프리즘을 통해 선생님의 세계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직접 영화를 보시는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친절해야 하지 않나, 관객이 익숙하게 느낄 방법으로 가야 하지 않나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전 제 스타일로 전달하는 방식을 굽히지 않았다. 건축가마다 독창성이 있듯 창작자라면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제가 감동하고 느낀 걸 제 스타일로 전달할 할 자신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아이는 저희 부부의 아이다. 5살에 출연해서 촬영을 마칠 무렵엔 11살이 됐다(웃음). 이타미 준 선생의 건축물에서 동선만 짜고 그냥 노는 걸 찍은 거다. 공간이 주는 느낌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우리 상상을 초월하더라. 고등학생이 나오는 곳은 순천의 효천고등학교인데 거기서 학생들을 섭외해서 찍었다. 이타미 준 선생이 그곳 도서관을 지었거든. 건축가의 로망 중 하나가 공공건축이다.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기도 하니까.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들 한다. 효천고 도서관을 맡게 됐을 때 선생님이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들었다. 청년 장면은 우리 조감독이다. 그리고 음악에 쓰실 수 있게 해주신 양방언 선생님이 중년 장면에 출연하셨고. 개인적으로 공간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전 선호한다.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 양방언의 음악, 그리고 후반부 최백호 선생의 음악이 참 인상적이었다. 양방언 역시 제주 출신에 재일 한국인 2세지 않나. 최백호 선생의 음악을 쓴 이유도 궁금하다.
정 : "정말 영화의 모든 과정을 책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음악 감독님은 김선 감독님이라고 따로 계시고, 양방언 선생님은 음악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것이다. 아버지가 제주도 분이시고, 바람에서 영감을 받는 등 우리 영화의 주제와도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최백호 선생님은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분이다. 새 앨범 제목이 마침 '바다 끝'이더라. 정말 딱 듣자마자 우리 영화의 엔딩곡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장년의 목소리를 영화에 담고 싶기도 했고. 영화 초반에 나오는 아이의 허밍 소리는 우리 아이가 부른 것이다(웃음). 그리고 배우 유지태님의 내레이션으로 청년의 느낌을 주려 했고, 이게 최백호 선생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재연을 위함이 아닌 이타미 준 선생님의 생애를 상징한다."

김 : "영화 제목이 <이타미 준의 바다>인데 최백호 선생님 노래는 바로 우릴 위해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팬심에 선생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직접 뵈었다. 우리 영화 몇 장면을 보여드렸는데 당신께서 살고 싶은 집이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집이라 하시더라. 그러시곤 '바다 끝'도 좋지만, 다른 노래가 또 있다고 들려주셨다. 그 노래 역시 영화에 담게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피디.

"수풍석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그간 여러 건축물을 보기 위해 여행도 다녔고, 실제로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봤는데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성당에 들어간 듯, 명상하듯 제 심연을 돌아보게 하더라. 처지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용기와 큰 위로를 경험했다."ⓒ 영화사 진진


    
- 영화는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수평적 타임라인을 그어 하나씩 제시하는데 그게 꼭 시간순서는 아니더라. 특별한 기준이 있었는지.
김 : "영화의 3분의 2지점에서 한번 정리하자는 느낌이다. 60세 전까진 선생님의 일이 많지 않았잖나. 묵묵히 자기 길을 가신 거지. 그걸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연대표로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도 아무런 정보 없이 제주 수풍석 미술관을 경험한 뒤 선생님에 대해 알아갔거든. 이런 구성이 가능한 이유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에서 우리가 30분 분량의 영상을 틀었던 경험 덕이다. 관람객이 거의 없을 거라 주최 측에서 걱정했는데 종종 앉은 자리에서 그 영상을 두세 번 봤다는 분들이 계시더라. 굉장한 치유의 느낌을 받았다면서. 물론 지루하다는 분도 계셨다. 모든 관객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정 : "시간 순서로 가지 않은 것은 제가 이타미 준 선생님의 인생과 건축 세계를 일반적인 연대기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분의 작품을 보세요. 그리고 그의 배경과 환경을 보시고 고독함을 보세요.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세요. 그러다 마지막에 전체적으로 느끼게끔 하고 싶었다."

"누구나 건물주는 될 수 없지만..."

- 영화를 보고 건축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미 재산의 수단이 된 현대 부동산 개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정 : "그게 우리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아이 둘을 키우는 부부로서 우리의 중요한 이슈는 미래다. 당장 밥 먹고 사는 문제 그런 걸 넘어서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와 미래는 무엇인지가 가장 큰 주제다. 여기에 공간이라는 이슈가 들어가 있는 셈이지. 건축이 돈과 연결돼 있고 돈에 의해 계급이 나뉘는 걸로 아이들은 교육받는다. 또 그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고. 이게 되고 공포스럽다. 건축은 돈의 도구가 아닌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너희가 사는 아파트는 몇 평이니?'가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우린 얼마나 행복하니?'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 "누구나 건축주가 될 수는 없고 당장 지금의 개념을 바꿀 순 없겠지만, 요즘 바뀌는 추세임을 느낀다. 좋은 공간은 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이걸 모두가 누리면 좋은데 사실 쉽지 않지. 그래서 공공건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문제를 계속 말하는 것이지 않을지. 젊은이들의 주거 문제라든가 말이다. 이타미 준 선생님이 비싼 건축도 했지만 전 영화에도 나오는 '주주'라는 야끼도리 집을 가장 좋아한다. 작은 불고기 집이지만 그 교포분이 일본에 뿌리내릴 수 있는 그릇을 지어준 것이거든. 이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우리 다큐를 통해 이런 건축가가 있었다. 우리가 느낀 위로를 나누고 싶었다."

정 : "선생님은 부정할 수 없는 디아스포라셨는데 전 지금의 젊은 세대가 모두 디아스포라라고 생각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선생님은 국경을 통한 디아스포라지만 심정적으론 지금 젊은이들의 삶을 먼저 사신 분 아닐지. 차별과 냉대에 힘들고 비극적이었지만 선생님은 비극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걸 창작으로 승화시킨 분이다. 그걸 선생님은 '비애미'라고 얘기하셨다. 유한한 생명력이 품은 찬란한 비애감이라 하셨다. 언젠가 죽을 유한한 생명이 무한한 자연과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며, 그 안에서 생기는 아름다움. 그래서 자연과 신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선생님은 삶으로 보이셨다.

결코 슬프거나 비극적 상황으로 끝내지 않고 승화시킨 것이다. '결국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당신 딸들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 얘길 정말 관객분들에게,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다. (창작자로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세계로 갈 수 있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제 스스로도 8년간 힘들지만 위로받으면서 나아갔다. 근데 이타미 준 선생님 인생에서 8년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징징댈 필요 없는 거더라. 그 얘길 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지금 당신이 보내고 있는 이 시간, 그리고 어느 공간에 누구와 있든 지금 느끼는 모든 게 당신을 만들어내는 원소가 되니 너무 절망하지 말자, 나중에 언젠가 반드시 비애미로 얼마든 피어날 수 있다. 그걸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주신 분이 계시잖나. 지금 슬프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그것이 결국 당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한 요소가 될 것이다.' 제 스스로가 느낀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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