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주인공인 신은미씨.ⓒ 신은미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부분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 미지의 나라 북한에 대한 관심은 꽤 뜨겁다. 북한 역시 2000년 이후 꾸준히 언어 능통자 등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등 관광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2002년만 해도 19만여 명의 외국인이 북한을 찾기도 했다(한국관광공사 통계 기준). 

만약 당신이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대동강 맥주가 참 맛있었다', '실제로 가 보니 북한에서도 휴대폰 보급이 많이 돼 있더라' 등의 감상을 공유하고 타인에게 전한다면? 여타 여행지가 그렇듯 아무렇지 않을 일이 대한민국에선 국가보안법 위반 명목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분단 70년 역사가 낳은 아이러니다.

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앨리스 죽이기>는 바로 재미 교포 신은미씨가 겪은 시련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본다. 냉전 시대 산물이던 '레드 콤플렉스', 즉 맹목적 빨갱이 몰이가 여전히 폭력으로 발휘되는 현실 말이다.

투철했던 반공의식, 그런데 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신은미씨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그는 법무부의 입국 금지 조치에 따라, 2020년 1월 9일까지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없다.

신씨는 2011년 10월 첫 여행 후 2015년까지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북한을 여행했다. 이후 <오마이뉴스>에 북한 여행기를 연재했고, 그 글을 묶어 출판한 책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엔 신은미씨의 성장 배경을 비롯해 한 시민단체 초청으로 북한과 통일 이야기를 담은 토크콘서트를 연달아 진행하는 과정, 도중에 한 고등학생에게 사제 폭탄테러를 당하는 모습, 그리고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하고 5년간 입국 금지조치를 당하기까지,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법원은 국보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강제 출국은 풀지 않았다. 애초 북한의 진짜 모습을 담고 싶었던 김상규 감독은 2014년 신은미씨를 만난 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쭉 관찰했고 방향을 수정, 지금의 영화가 나오게 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제겐 바로 어제 같은 일이다. 2014년 저에 대한 종북몰이는 기억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생의 일부"라며 신은미씨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일반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에 (저도) 많이 놀랐다"고 개봉 소감부터 전해왔다.

"사실 이 영화는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일종의 코미디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코미디로 생각하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에게 '빨갱이', '김정은 대변인'이란 막말을 해대는 사회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런 일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이 말만 놓고 보면 신은미씨가 일종의 진보 혹은 과거 운동권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 반대다. 1986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자유당 의원이던 외할아버지,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 그리고 군인인 아버지 영향으로 오히려 투철한 반공의식의 소유자였다. 영화에도 나오듯 남편의 제안으로 북한 여행을 떠나기 직전 "(북한 사람들은) 뿔이 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는 그의 고백이 그래서 가능하다. 2002년 미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그는 보수성 강한 미국 한인 기독교 공동체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북녘 동포들이 어쩌면 그렇게 심성이 착하고 고운지, 그리고 남에서는 이제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우리의 아름다운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여행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며 제가 생각했던 그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린 오랜 역사와 문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음을 첫 북한 여행 이틀 만에 느끼게 됐다. 어쩌면 엉터리 반공교육의 역효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제 개인적 성향엔 아직도 보수적 부분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쉽게 사라질 수 없겠지. 그러나 민족문제에는 보수나 진보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앨리스 죽이기>는 신은미씨 개인의 수난사이면서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이는 영화인 셈이다. 신씨의 첫 여행기 무렵부터 현재 상황과 심경까지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종북몰이 대체 왜 했을까? "여전히 의문"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첫 글에 고려항공 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의 첫인상이 잘 담겨있다. 여전히 북한을 바라볼 때 그때의 낯섦과 설렘이 아직 남아 있는지.
"그렇다. 지금도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그때와는 좀 다른 이유에서다. 당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에서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들을 만날 생각에서 그렇다. 눈물 흘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9차례나 여행했으면 이젠 눈물을 흘리지 않을 때도 됐는데 북한을 여행하다 보면 끊임없이 눈물이 난다."
 
- 김상규 감독이 2014년 영화 제안을 했을 때, 어떻게 설명했으며 또 흔쾌히 그 제안에 응한 이유가 궁금하다.
"당시 감독님이 저와 동행하며 촬영을 해도 좋냐길래 그리 하시라 했다. 하도 세상이 험해서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봤다. 왜냐면 당시 종편을 비롯해 언론에서 허위 왜곡 보도가 난무했으니까. 그러나 그때 전 이 종북몰이 사건을 후일 영화로 만들 건지는 전혀 몰랐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뉴스를 듣고 영화화를 안 것 같다. 이후 감독님이 미국 저희 집에 와서 촬영하겠다고 연락했는데 그때 영화로 하는구나 확신했지.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본다고 비용을 들이나 싶어서."

- 영화에 신은미씨의 변화 지점이 있다. 북한 여행 이후 글을 쓰는 과정까진 우리가 몰랐던 북한의 모습을 전하고자 했다면 후반부에 들어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투사적 면모가 보인다.
"종북몰이가 시작됐을 때 전 일정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모국이 저를 반기지 않는데 계속 강연 다니는 것은 모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SNS로 입장을 밝히고, 국회 강연만 마치면 돌아가려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명서를 언론이 왜곡하며 허위보도를 계속했다. 그게 제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주최 측은 절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전 통일 운동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재미교포 아줌마인데 그런 저를 초청해 봉변을 당하게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북한에 방문한 신은미씨.

북한에 방문 당시 모습.ⓒ 신은미

 
- 종북몰이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언론일지 아니면 거기에 응해 조사에 나선 검찰 등 공권력일지.
"저도 그 부분이 여전히 의문이다. 제 첫 북한 여행기는 문체부에 의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돼 전국 공공도서관에 배포됐고 또 통일부는 저를 출연시켜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렸다. 모두 박근혜 정부 때였다. 게다가 (토크콘서트 전인) 2014년 봄 전국 순회강연을 했다. 같은 강연을 2014년 겨울에 한 건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 당시 주위에선 '통합진보당 해산을 위해', '정윤회 사건을 덮기 위해' 등이라 말하는 분도 있었는데, 전 통합진보당이 어떤 당인지 정윤회 사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교포 아줌마를 마녀사냥 해 굵직한 사건을 덮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한편으론 박근혜씨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제 강연을 언급했을 정도였다 하니 정부 개입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한 비서관의 비망록이 나왔는데 이 사건과 관련해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가 메모 된 것을 보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통합진보당은 해산됐고, 전 강제 출국당했다."
 
- 당시 검경 조사 과정에서 황당한 질문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전라북도 익산 강연에서 지금도 배후가 의심되는 폭탄테러를 당한 후 저희 부부는 주한 미영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바로 출국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공항 가는 차에서 제가 출국 정지당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결국 비행기 탑승이 불가했다. 그리고는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경찰, 검찰 조사는 영화에 나오듯 무시무시하진 않았다. 상당히 친절했다. 경찰에서는 과일 대접을 받았고, 검찰에서는 부장검사로부터 아낀다는 차 대접도 받았다. 

황당한 질문이 많았다. '평양에서 핸드폰 들고 통화하면서 걸어가는 사람들 연기하는 거 아닌가, 진짜 핸드폰인지 어떻게 아는가?', '대동강맥주가 정말로 아주 맛있다고 생각하나?', '북한 강물이 깨끗하다고 강연서 말했는데 북한 강물이 어떻게 깨끗할 수가 있나?', '왜 책을 감동적으로 써서 읽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우호적 생각을 갖게 했나?' 뭐 이런 식의 질문이었다. 변호사에 의하면 국가보안법 고무찬양 조항 위반을 찾아내려는 거라고 하더라. 참 머저리 같은 미개한 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제가 받은 느낌은 이들도 상부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위에서 들으면 더 곤란해지니 기자들과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고 하더라. 또 마지막에 제게 '살다보면 뜻한 바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선생님 상황이 그런 경우다. 한국에서 있던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시라'고도 했다. 저도 검사에게 말했다. '혹시 기회가 되면 꼭 북한을 방문해 보시라고. 그럼 제가 어떤 심정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북에 대해 한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시게 될 것'이라고."

"트럼프 진정성 믿고 싶지만, 한편으론..."

이전 인터뷰에서 신은미씨는 입국 금지가 풀리는 대로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국가로부터 모진 시련을 받았음에도 그는 "당시 박근혜 정부가 저에게 어떤 일을 했든 관계없이 남한은 제 모국"이라며 "더욱이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며 남북관계에 발전이 있으니 흐뭇한 모국"임을 강조했다. 

- 남편의 제안으로 시작한 북한 여행인데 혹시 그걸로 시련을 겪었다는 생각에 원망도 혹시 하셨는지. 
"원망한 적은 전혀 없다. 우연히 가서 본 북한에서 심성 고운 동포들을 만나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평화통일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남에서 종북몰이를 당하면서 민족 화합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또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됐다. 이 점이 가장 힘들었다.

오히려 남편이 제게 제안한 걸 후회할 때가 있다. 주로 종편과 일부 언론에서 아직도 '종북 마녀'로 오르내리는 걸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당신 탓이라며 한탄할 때가 있다. 그땐 오히려 제가 남편을 위로한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북한 여행을 갔던 제가 거꾸로 다독거린다. 2018년 이후엔 행복했다. 남북 정상이 네 차례나 만나고 북미 정상도 세 차례나 만나는 등 내 나라에서 평화의 기운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신은미 시민기자의 북녘 둘째 수양딸 설향씨.

북한 여행 당시 안내원으로 인연을 맺은 설향씨(오른쪽)를 두고 신은미씨는 수양딸이라 부른다.ⓒ 신은미

 
- 당시 이슈로 연락을 끊겠다던 어머니 말을 들었을 때 어땠는지. 그 이후 관계는 회복됐는지.
"2014년 종북몰이 당시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제게 '이제 그만 보자'고 하신 어머니의 그때 말씀은 아마도 강연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 말씀을 갖고 어머니와 얘길 나누진 않았다. 그 얘길 끌어내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지금은 물론 잘 지내고 있다. 모녀지간에 '화해'라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 제가 입국 금지 된 이후 어머니께서 1년에 한 번씩 미국에 오셔서 겨울을 나고 가신다. 긴 비행기 여행이 많이 걱정된다. 올해도 오실 예정이다."

- 2017년 9월 이후 미국도 자국 허가 없이 북한 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산물이기도 한데, 한반도 통일 문제를 미국이 진정성 있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인 북한여행금지조치는 2017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후인 걸로 기억한다. 당시 북미 관계는 최악이었으니 그 조치는 이해했다. 그 이후 2018년 남북관계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다. 북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미국 대통령이 동방의 작은 나라, 특히 미국 적대국인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고 싶지만 한편으론 의구심도 갖고 있다. 혹시라도 북미 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그렇지 않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 신은미 재단 설립 과정과 방향성, 현재 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신은미 재단은 북녘 동포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2016년 여름 북한의 두만강 지역을 비롯한 함경북도 지방에 대홍수가 발생해 수백 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고 십여 만 명의 이재민이 생겨났다. 그래서 비록 한 줌의 쌀이지만 동포들을 돕기 위해 설립했다. 모금하고, 사재를 보태 미국 재무부 허가를 받아 쌀 58톤을 사서 압록강 철교를 넘었다. 그래도 당시엔 북한 여행이 자유로워 재무부 허가만 얻으면 됐다. 지금은 국무부에 의해 미국 국적자의 북한 여행이 금지돼서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북한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게 식량과 의약품인데 너무 안타깝다."

- 입국 금지 때문에 지금은 실현될 수 없지만 <앨리스 죽이기>로 극장에서 관객과 대화 시간을 나눈다면 가장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불과 5년 전인 2014년 당시를 제3자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민족 분단이 얼마나 많은 비이성적, 비정상적 일을 가져오는지 이 영화가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종편 언론의 허위 왜곡 보도가 한 재미교포의 평범한 삶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또한 보여주고 있다. 다신 그런 잔인한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올바른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영화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민족 화합과 평화다. 우리 남과 북, 교포들이 염원하는 통일의 길목으로 나아가는 시점에 이 영화가 시사하는 게 참 많을 것이다.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신 김상규 감독님, 배급사 분들, 여러 관계자분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모국의 많은 분이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다신 그런 공안 시절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걸 일반 시민들도 보시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나아가 평화통일, 민족 화합에도 관심 두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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