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 이 남자의 피, 땀, 눈물

mbc스페셜- 이 남자의 피, 땀, 눈물 ⓒ mbc

 
< MBC 스페셜 >이 지난주에 이어 '이 남자'를 다루었다. 앞서 7월 29일 방송분은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와 페미니즘 시대 사이에 햄버거 고기처럼 낀 20대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5일 방송분에선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이란 타이틀 아래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의 고달픈 삶을 담아냈다.

3개월 수습 끝에 한 소주 회사의 정직원이 된 입사 2년차 최재원씨는 판촉행사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과 같이 우주인 복장을 한 채 여러 술집을 돌며 회사 상품을 홍보한다. 판촉 행사가 끝난 후에야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 않는 우주인 복장을 벗는 재원씨에게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최씨의 나이는 스물아홉이다. 그가 3번의 낙방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회사를 고집한 이유는 연봉 때문이었다. 조금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한 도전이 의미하는 건 뭘까?

15세~29세 첫 일자리 임금수준표에 따르면, 청년층의 34.1%가 150만 원에서 200만 원 미만의 돈을 첫 월급으로 받는다. 100만 원에서 150만 원 미만을 받는 층도 27.7%에 달했다. 50만 원 미만을 받는 층도 5.1%나 됐지만, 구직자들의 '로망'이라는 대기업 직원들만큼(300만 원 이상) 받는 층은 2.4%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는 김민근씨에게 국가대표 경기 결승전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언감생심이다. 밤 10시부터 그에게 쏟아진 콜이 20건에서 25건에 이른다.

자동차 학과를 졸업한 김씨 역시 남들처럼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6개월 정도 다녔지만 배달 대행업 알바를 하던 때보다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고 일하는 시간도 길어,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라이더 인생에 뛰어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지금 3~4배는 더 번다는 민근씨는 돈을 모아 언젠가 프랜차이즈점을 차리는 게 꿈이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형님들은 쉼 없이 일하는 민근씨를 보며 "뭘 벌써부터 저렇게 애를 쓰고 사냐"며 안쓰러워한다.

하지만 민근씨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26살의 김영준씨는 한 달 째 기침을 달고 산다. 유아 체육 교사라는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다 보니, 기침이 쉽게 낫지 않는다. 군복무를 마치고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4년차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한 달에 6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막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준씨의 최종 목표는 유아 체육교사가 아니다. 그는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한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는 "그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20대 남자들의 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20대 남자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걸 답해주는 건 바로 실업률이다. 2019년 4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11.5%다.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8개월로, 앞서 언급한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취업을 해도 10명 중 8명은 평균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청년들에겐 오늘이 발등의 불이다.

취업을 했던 청년들 중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민근씨처럼 버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다시 '취업준비'라는 타이틀을 다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 '취준생' 중 1/3이 택하는 것이 공무원 시험(공시)이다. 스물여섯 살 배민구씨는 공시생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공시생으로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배씨는 서른 살을 공시 시험을 보는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길고 긴 레이스 끝에 직업을 얻는다고 해도 어른들이 원하는 '가정'을 이룰지는 불투명하다.

꿈이 없다고? 비판적 의식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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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이런 청년세대에게 불만이 많다. 왜 꿈이 없느냐, 취직에만 매몰되어 있느냐며 다그친다. 하지만 그런 기성세대의 불만에 청년들은 '어서 빨리 저 분들이 퇴직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우리 몫이 생길 텐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88올림픽으로 경기가 상승세를 탔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학번들은 대부분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당연히 '낭만'을 즐길 여유가 있었고,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질 만한 여건도 됐다.

그러나 무한 경쟁 취업의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꿈'이나 '비판 의식'을 운운하는 기성세대에게 분노한다. 청년들은 청년세대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이들이 이제 와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무리한 요구만 한다며 분노한다.

또 페미니즘을 언급하며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은 그저 혜택 받는 경쟁자이며,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약자라 생각한다. '남성적 특권'을 누린 건 기성세대의 남자들인데 애먼 20대 남자가 눈덩이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복무로 사회 진입조차 늦어 이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이라도 넣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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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벅찬 20대 청년들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의 고증에 충실하던 다큐는 중반부에 들어선 뒤 갑자기 국민연금관리공단 홍보 방송인 듯한 모습을 보인다.

국민연금을 꾸준히 넣어 노후 걱정이 없다는 어르신들이 나오는 것. 그 중에서도 부산 물류 회사의 대표 김기식씨는 "1979년 제대 이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며 연금을 넣은 덕택에 매달 130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민연금은 든든한 노년의 보장'이라는 어르신들의 생각과 달리,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신뢰하지 않았다. 사회가 급격하게 노후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국민연금을 믿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까지 동원한 방송은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국민 연금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며 "향후 30년간은 끄덕없다"며 젊은이들의 가입을 독려한다.

방송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연가로 마무리된다. 현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도 있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현실에 대한 진단은 명확했지만, 방송이 제시한 대안은 뒷맛만 씁쓸하게 만들었다.

정녕 피와 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금의 청년세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국민연금 가입'뿐일까? 이런 조언을 20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국민연금까지 넣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과연 그런 어설프고 안이한 '답정너'식의 동어반복으로 '이 남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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