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가족, 자연의 소리. 한국인 있다(Itta)와 일본인 마르키도, 아들 라아이(Raai)로 구성된 일렉트로닉 밴드 텐거(TENGGER)의 영적인 여정은 세계로부터의 주목을 받았다. 영국 국영방송 BBC 라디오, 음악 평론지 '피치포크'와 '스테레오검' 등이 올해 발매한 앨범 <스피리츄얼 2(Spiritual 2)>를 호평하며 이들의 영적인 행보와 음악을 소개했다. 

세계를 여행하는 '노마드 가족' 텐거는 장엄한 산봉우리와 찬란한 바다, 차분히 흐르는 강과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소리를 체화하여 거대한 순환을 소리로 옮긴다. 전자음과 몽롱한 코러스가 주를 이루는 이들의 음악은 <스피리츄얼> 시리즈를 통해 서울 을지로 도심과 마르키도의 고향 시코쿠의 자연 광경을 담았다. 2014년엔 일본의 유명한 '시코쿠 순례길'을 걸으며 88개소 사찰의 소리를 담아 <미니시코(Minishiko)>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7월 13일 서울 을지로 페이퍼스트릿(Paper Street)에서 <스피리츄얼 2> 발매 후 첫 공연을 펼친 텐거를 만났다. 멤버 있다는 '우리는 한국의 밴드도 아니고 일본의 밴드도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우리의 정체성은 아웃사이더적이다. 경계와 구분짓기를 없애고 싶다'는 말로 가족을 소개했다.
 
 2019년 7월 13일 토요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페이퍼 스트릿(Paper Street)에서 <스피리츄얼 2> 발매 후 첫 공연을 펼친 텐거.

2019년 7월 13일 토요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페이퍼 스트릿(Paper Street)에서 <스피리츄얼 2> 발매 후 첫 공연을 펼친 텐거.ⓒ 김도헌


  - 음악 팬들에게 텐거를 소개해달라.
있다 : "음악을 하는 밴드 이전에 '여행하는 가족'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고유의 문화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로컬 뮤지션들과 교류, 현지 공연도 하며 체화된 느낌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피드백을 전달한다."

- 텐거(Tengger)라는 이름은 몽골어로 '경계 없이 큰 하늘'이라는 뜻이다.
있다 : "2005년 마르키도와 만나 2인조 밴드 텐(10)으로 활동했다. 있다에서 숫자 1을 가져왔고, 마르키도의 '마르'가 일본어로 원과 윤회의 의미가 있어 '0'을 가져와 텐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이름으로 더욱 확장하고 싶어 여러 이름을 찾다 지금의 단어를 이름으로 삼았다."

- 주로 지내는 곳은 일본인가. 
있다 : "텐으로 활동할 땐 집이 없었다. 세계 여러 곳에 투어를 다니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는 식으로 지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서 처음 제주도에 3년 정도 머물렀다. 일본 시코쿠 섬 88개 사찰 순례를 마치고 순례길 중간에 오래된 고민가를 하나 마련하여 작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을 통해 시코쿠를 방문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레지던스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아이가 올해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일단은 서울에 살기로 했다. 1학년이다."

- 자연 친화적인 삶에 비하면 서울은 크고 복잡한 대도시다. 그런 차이가 음악에 영향을 주지 않나.
있다 : "서울과 자연 속을 오가며 다양한 메시지를 얻는다. 젠트리피케이션, 환경 문제에 대해 더욱 와 닿는다."

- 도시의 삶은 아무래도 자연에 비해 각박하고 또 초조할 텐데. 
있다 : "마르키도는 시골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집에서 음악을 만들어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도인 같이 사시는 분이다. (웃음) 반대로 나는 공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고쿠 갔다 다시 서울로 오면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공연하며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시코쿠 섬 일대의 88개 사찰을 순례하며 그 공간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발표했다.
있다 : "마르키도의 고향이 시코쿠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인도도 다녀왔다. 나는 모태 신앙이 가톨릭인데, 순례길에 대해 알고 나서 마르키도에게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두 살짜리 아이를 업고 순례길에 올라 들르는 사찰마다 고유의 소리를 담아 < Minishiko > 앨범을 발매했다."

- 순례길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만든 이유가 있다면?
있다 : "앞서 말씀해주신 대로 스트레스받고 힘든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가상의 순례를 가능케 해주고 싶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한 순례 코스라 일본에선 순례를 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오스나후미(お砂踏み)라는 간이 순례소가 있고, 순례길 중간중간에도 그런 장소가 있다. 시코쿠 전역 곳곳에서,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도 '미니 시코쿠 88개소'라는 순례 체험 코스가 있다. 그것이 < Minishiko >의 콘셉트가 되었다.

건장한 성인이 순례를 하면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순례길이 험해서 순례 도중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영적인 순례를 꿈꾸지만 현실의 사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저희의 선물이다."
 
 자연의 소리를 전자음으로 담아내는 텐거의 음악에 BBC 라디오 등 해외 매체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전자음으로 담아내는 텐거의 음악에 BBC 라디오 등 해외 매체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TENGGER

  
- <스피리츄얼 2>의 앨범 커버 역시 시코쿠의 영산 이시즈치 산을 담고 있다.
있다 : "저희의 일본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높은 산이지만 주위 산봉우리에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앨범 커버 모습은 정상에서 봉우리를 촬영한 모습이다. 그러나 산을 '배경'으로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산 자체가 주는 영적인 기운,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담고자 했다."

- 산의 이미지처럼 앨범도 'High', 'Middle', 'Low' 등 수직적 구성이 두드러지는데. 
있다 : "모두 같은 사운드 소스로 이루어진 곡이다. 산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크라우트 록 밴드 노이(Neu!)의 < Cassette Music >의 오마주다. 워낙 존경하는 뮤지션이라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 라아이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매 공연마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있다 : "라아이의 생일날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르키도와 나의 공연 도중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를 찾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음악을 연주하면 자연스레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고 장난감 악기를 연주한다. 뮤직비디오는 아이의 성장을 담는 매개체다. 요즘은 욕심이 생겨서 주인공 할 거라고 말한다 (웃음)."
 
 텐거는 현재 일본 시코쿠 현에 위치한 저택에서 작업 중이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다.

텐거는 현재 일본 시코쿠 현에 위치한 저택에서 작업 중이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다.ⓒ 텐거 페이스북

 
- 텐거는 여행하는 가족, 노마드적 삶을 지향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음악 시장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자연스레 각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있다 : "우리가 동양인인 건 분명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묻어난다고 보고 어느 정도는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향후 텐거가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형태의 음악일까.
있다 : "앞으로 해봐야 알 것 같다. 이 아이를 데리고 계속 서울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영감을 받은 장소가 있다면.
있다 : "< Spiritual 2 >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코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시코쿠의 바다, 산을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었다. < SEGYE >의 녹음 장소는 을지로 4가 미싱상가 골목에 위치한 대안 공간 Slow Slow Quick Quick이었다. 한창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하던 때라 그 정서가 앨범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 Spiritual >은 일본의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을 녹음했고, 을지로의 신도시 아래층에 위치한 신도시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약간의 후반 작업을 거쳤다."

인터뷰가 끝나고 몇 시간 후인 오후 8시 텐거의 공연이 시작됐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위로 신비로운 소리가 이어지다 끊어지면서, 라아이의 자유로운 몸짓이 어우러지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밤을 수놓은 거대한 자연의 소리와 이를 연주하는 소박한 한 가족의 조화가 바쁜 도시의 하늘에 울려퍼지며,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탄생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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