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자>의 김주환 감독.

영화 <사자>의 김주환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악마를 숭배하는 주교단과 이에 대항해 구마 의식을 행해 온 신부와의 사투는 분명 한국적 이야기는 아니다. 오컬트, 공포 장르가 부흥하며 할리우드에선 이런 소재가 흥망성쇠를 경험했다면 우린 아마도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일 것이다. <검은 사제들>에 이은 <사자> 역시 그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상업 영화 데뷔작인 <청년경찰>로 성공을 거둔 김주환 감독은 나름 포부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기독교적 세계관에 새로운 히어로를 등장시키고 싶었다던 그는 외로운 안 신부(안성기)에 신을 부정하면서도 결국 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용후(박서준)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지난 7월 31일 개봉한 <사자>는 5일 현재까지 11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면에선 다소 아쉬울 수 있는 성적을 내고 있지만, 분명 이 영화가 제시한 몇 가지 미덕이 있다. 개봉 후 김주환 감독과 만나 이 얘기를 나눴다.
 
"<사자>의 시작점은..."

'선과 악', '실리', 그리고 '증오'. 김주환 감독이 <사자>를 시작하기 전 품고 있던 키워드다. 끝까지 세상에 악을 심고 싶었던 지신(우도환)은 이기심을 넘어선 일종의 악이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사람이 이기적 행동을 할 순 있지만 그걸 넘어선 악, 그리고 그에 맞선 선을 얘기하고 싶었다. 대학 때 신학을 잠시 공부했다는 것도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 질문을 계속 하잖나. 결국 사람은 주변 환경과 사람을 통해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거든. 사람의 탈을 쓴 악, 그리고 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남아 있었다. 또한 2018년 3월인가 이탈리아에서 봤던 성 제롬의 그림(사자의 발톱에서 가시를 빼주는 신부)에서도 영감을 받았고."

그런 의미에서 김주환 감독은 <사자>를 '수퍼내추럴'(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장르라 정의했다. 홍보 과정에선 오컬트 히어로물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김 감독은 "스스로 오컬트라는 단어를 쓰면서 영화를 설명하진 않았다"며 "미국에 비해 우린 그 역사가 상당히 짧기에 관객분들이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사자> 스틸

영화 <사자>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사자> 스틸컷

영화 <사자>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오컬트 팬분들도 <사자>를 보고 의견이 엇갈린다. 용후의 불 주먹을 보고 오컬트가 아니라고 하는 분도 있고, 거기에 열광하는 분도 있었다. 길을 가다가 한 초등학생이 '히어로물은 영웅이 항상 이기는 거라 싫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엄청 충격이었다. 그만큼 히어로 장르 문법도 변주가 필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장르가 묘하게 섞이기도 하고 비틀어지기도 하는 게 요즘 추세다. 이걸 얼마나 촘촘하게 해내느냐가 관건인데 분명한 건 관객에게 익숙한 것과 변주하는 것을 잘 제시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전통적 히어로가 안 신부라면 어쩌면 용후는 일종의 다크 히어로로서 작용할 법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신을 증오하는 그는 영화에서 안 신부를 살려달라며 신에게 애원하기까지 한다. 증오와 사랑, 강한 불신과 믿음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감독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결과였다. 

새로운 시도들

김주환 감독이 언급한 성령의 불 주먹, 그리고 등장인물이 괴이한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 검은 주교와 신부가 맞대결하는 순간 등. 영화엔 CG(컴퓨터 그래픽)와 각종 특수 효과가 꽤 밀도 높게 들어갔다. 수 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할리우드의 동종 장르에 비한다면 110억 대 <사자>는 열악한 환경이긴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진은 여러 아이디어를 동원해 우리 기술로 해당 장면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사자>가 품고 있는 미덕 중 하나다.  

"마블 시리즈 같은 영웅 판타지가 주류고 관객 역시 눈높이가 거기에 맞춰져 있기에 우리 입장에선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20년 넘게 축적된 그들의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지. 그들의 공장 시스템을 우린 가내 수공업으로 따라가려 했다. 용후의 불주먹도 나름 새로운 시도였다. 서양의 히어로와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해서 넣은 건데 스태프들이 엄청 고생했지. 

<토르>에서 토르가 싸우다가 망토에 불이 붙는 장면이 있잖나. 우린 그걸 더 깊게 팠지. 실제로 한번 불을 붙여놓고 음영을 따놓았다. LED전구를 일일이 달고, 또 손이 뜨거워지면 안 되니까 그 안에 특수처리도 했다. 괴물로 변한 지신의 몸이 주먹에 맞고 타들어 가는 장면도 하나하나 분장에 손상을 내면서 찍었다. <사자>를 하며 나름 좋은 기술력을 습득했다. <청년경찰>보다 5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영화 <사자>의 김주환 감독.

"사실 장르가 묘하게 섞이기도 하고 비틀어지기도 하는 게 요즘 추세다. 이걸 얼마나 촘촘하게 해내느냐가 관건인데 분명한 건 관객에게 익숙한 것과 변주하는 것을 잘 제시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기술적 발견과 함께 장르 특성상 영화에 심어 놓은 몇 가지 상징도 기억할 만하다. 베드로의 십자가로 불리는 역십자가를 형상화해서 천국을 찌르는 칼 모양으로 만든 조각품은 검은주교가 자리한 클럽의 상징이었고, 안 신부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상징하는 아르마투스 배지를 달고 있다. 소의 뿔과 뱀은 신을 이기고 싶어하는 용맹함, 간악함을 상징한다. 

"지신이 있는 공간을 왜 클럽으로 설정했냐고 묻는 분도 있는데 단순히 클럽은 아니다. 그 동네가 클럽이 있을 법한 곳도 아니잖나. 일종의 프라이빗 클럽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사원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일반적 사람은 아니다. 사악한 기운이 감도는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 지점에서 김주환 감독은 독창성에 대해 관객이 너그럽게 생각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마블이든 디즈니 실사 영화든 결국 원작 만화가 없었다면 바로 사랑받기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며 "한국형 히어로물에 대한 장벽이 높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좀 더 너그럽게 봐주시면 우리의 히어로 영화 역시 어떻게든 진화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언론시사회 당시 김 감독은 <사자> 이후 속편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흥행이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 그는 "속편 초고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시점에서 가부를 말하긴 부담스럽다"며 "저 역시 점점 (도전에) 신중해지는 것 같다.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인 걸 넘어 이기적인 사람들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라 답했다.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푼다고 해도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김주환 감독이 덧붙였다. 결과야 어찌 됐든 그는 보편적 주제를 품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그 자체로는 일단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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