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세력을 쫓아내는 행위인 엑소시즘(exorcism, 구마)은 고대 아시리아나 이집트 등지에서도 시행하던 풍습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비손이라 불리는 개인적인 고사와 구마의 전문가인 무당이 주재하는 굿, 마을 공동체의 집단적인 의례나 주술 등의 형태로 이뤄져 왔다. 최근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이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장르물을 내세우며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사자>는 물론 드라마 <손 the guest> 등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은 장르물에서 엑소시즘이 익숙한 소재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흥미를 유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기사에서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 다섯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컨저링> 스틸컷

<컨저링>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컨저링>(2013)
 
2013년 개봉한 <컨저링>은 1971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 해리스빌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시리즈로 연결됐고, 이를 통해 엑소시즘을 다룬 작품들을 최근 주류로 편승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극 중 꿈에 그리던 새 집으로 이사 간 페론 가족이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 기현상으로 인한 위험이 아이들을 향하자 페론 가족은 가톨릭 계열의 악마 연구 및 영매, 퇴마를 하는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청한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무섭다'는 홍보 문구 그대로, <컨저링>은 미국 호러영화 특유 피범벅을 지양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오컬트 영화가 지니는 기이함과 심리적인 공포를 선명하게 담아냈다.
 
<컨저링>을 필두로 제임스 완 사단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공포영화를 제작하며 '컨저링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컨저링>에서는 악령과 맞서 싸우는 구마 의식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이를 통해 악령의 존재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구마를 담았고, 기승전결의 드라마적 구성으로 나름의 감동도 전해준다. 엑소시즘을 다룬 작품들이 확실한 기틀을 잡지 못할 때, 그 방향성을 확실히 알려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엑소시스트> 스틸컷

<엑소시스트>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엑소시스트>(1975)
 
<엑소시스트>는 엑소시즘 영화의 전설로 남은 작품이자 개봉한 지 40년 넘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영화가 지닌 공포 때문에 섣불리 관람하지 못할 만큼 두려움을 주는 영화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보다 졸도하거나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던 걸로 알려진 만큼, 공포의 강도에 있어서는 슬래셔 무비 못지않게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영화의 시작은 평범한 소녀 리건이 어느 날 욕을 내뱉고 목이 360도 돌아가는 등 기이하고 이상한 행동들을 보이는 장면들이다. 결국 예수회 소속의 구마사제 메린과 카라스 신부가 리건의 집에 찾아온다.
 
두 사람이 구마 예식을 행하며 리건의 몸 안의 악령과 싸우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어 점점 난폭해지고 흉측하게 변해가는 리건의 모습, 악령과의 싸움에 점점 지치고 나약해져가는 두 신부의 모습도 담겼다. 이런 설정들을 통해 <엑소시스트>는 관객에게 극한의 공포를 선사한다.

악령과 인간의 사투, 그 사투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불안과 연약함을 담아낸 이 작품은 시각과 심리 두 부분을 모두 잡아내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이후 '엑소시즘' 열풍을 이어갈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후속편들의 실패로 1편만이 전설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스틸컷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2006)
 
<엑소시스트>와 <컨저링> 사이에 등장한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면 단연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를 꼽을 수 있다. 엑소시즘을 바탕으로 한 여러 작품들이 완성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반면, 이 작품은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정교한 짜임새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엑소시즘에 기반을 둔 기존 작품들이 지닌 약점을 법정물 장르를 통해 극복해내는 묘수를 보여준다. 심리적인 공포를 주로 다루는 오컬트물의 진부한 전반부에서, 법정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통해 왜 에밀리 로즈가 죽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법정에 서게 된 무어 신부의 진술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어느 날 에밀리 로즈에게 닥친 악령의 공포와 그로 인한 일상의 변화, 악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녀가 무어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공포가 발현되기 전까지 진행되는 서사가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는 약점을 현명하게 극복해낸 이 영화의 후반부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채워졌다. 에밀리가 괴성을 지르며 건물 아래로 추락하는 장면, 빙의된 에밀리가 남자친구에게 악마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 등 공포에 있어서도 꽤나 충실한 영화다.
 
 <검은 사제들> 스틸컷

<검은 사제들>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검은 사제들>(2015)
 
한국영화계에서 엑소시즘, 그리고 신부복이 익숙해진 계기가 된 작품이라면 단연 <검은 사제들>을 말할 수 있다.

<검은 사제들>은 뺑소니 사고 후 악령에 씌어 의문의 증상을 보이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 예식을 진행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계에 있어 '히든카드'라 할 수 있는 배우 강동원을 통해 한국공포에 엑소시즘이라는 소재를 성공적으로 이식해냈다. 엑소시즘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잦은 돌출 행동으로 교단 밖에 난 김신부(김윤석 분)와 그를 돕기로 한 신학생 최부제(강동원 분)의 조합은 익숙한 듯 하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준다.
 
이미 <엑소시스트> 등의 작품을 통해 경험한 구마 예식 자체는 익숙하게 다가오지만 그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 등장인물이 구마 예식에는 의심과 불신을 표하지만 같은 성격의 굿에는 믿음을 보인다는 설정 등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신부복마저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해내며 영화에 멋을 더한 최부제 역의 강동원은 한국에서는 실험적인 장르영화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힘을 보태주었다. <검은 사제들>은 한국 공포영화가 지닌 무기를 또 하나 늘려줌과 동시에 어색하게 느껴졌던 엑소시즘을 한국 문화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기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오멘> 스틸컷

<오멘> 스틸컷 ⓒ 20세기 폭스

  
<오멘>(1976)
 
1970년대 <엑소시스트>와 함께 엑소시즘을 대표하는 영화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 바로 <오멘>이다. 데이비드 셀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6월 6일 오전 6시에 악마숭배자들에 의해 태어난 데미안이라는 '악마의 아들'을 소재로 했다.

데미안은 같은 시간 병원에서 출산된 미국 외교관 로버트의 아들과 바꿔치기 당하고, 이를 모른 채로 아이를 키우던 로버트 부부가 기이하고 무서운 일을 연속해서 당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살한 데미안의 유모, 동물원에서 데미안을 보고 울부짖는 동물들의 모습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해낸다.
 
<오멘>은 데미안을 수상하게 여기던 카메라 기자 제닝스와 로버트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오컬트의 매력과 엑소시즘이 주는 기이함을 관객이 체험하게 한다. 또한 이 영화는 절묘하게 긴장감을 유발해내는 OST와 잔혹한 장면들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공포를 보여준다.

특히 심리적인 공포를 뛰어나게 선사하는데,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종말론, 아들의 정체에 대한 의심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관객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가족'과 '악령'이라는 소재로 엑소시즘 작품의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올 수 있는 사랑과 갈등을 잘 그려낸 점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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