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SF, 액션, 공포 영화에 미래를 상상한 장면이 등장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제작된 것들 중 2019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던 영화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SF 장르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1982)와 <아키라>(1988)를 비롯하여 < 2019 멸종지대 >(1983), <러닝맨>(1987), <스틸 프론티어>(1995), <힛 씨커>(1995), <아일랜드>(2005) 등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또한 <데이브레이커스>(2009), <더 로드>(2010), <지오 스톰>(2017)이 2019년 세상을 영화로 그렸다.

이 중에서 <2019 멸종지대>, <러닝맨>, <데이브레이커스>를 골라 어떤 작품인지 소개하려고 한다. 이들 작품에서는 '당시에는 먼 미래 같았던' 2019년을 어떻게 묘사했으며, 훗날에 관한 영화 속 예상은 얼마나 맞았는지 살펴보자.
 
<2019 멸종지대> 영화의 한 장면

▲ <2019 멸종지대> 영화의 한 장면 ⓒ Nuova Dania Cinematografi


< 2019 멸종지대 >(1983,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

영화 속에서는 지구가 핵폭발로 인해 오염된 지 20년이 흘렀다. 방사능으로 인해 15년 동안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고 변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를 점령한 '유라크'는 생존의 열쇠를 찾기 위해 건강한 여성들을 유전자 실험으로 희생시킨다. 오염이 덜 된 알래스카에 위치한 '범미 연합정부'는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유라크 통제하에 놓인 뉴욕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최고의 전사 파르시팔(마이클 소프키프 분)을 보낸다.

1970~1980년대 이탈리아의 영화제작자들은 할리우드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의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가져와 저예산 B급 영화로 재빨리 가공하여 내놓곤 했다. < 2019 멸종지대 >도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공포, 코미디, SF 등 다양한 장르로 경력을 쌓은 세르지오 마르티노 감독은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차용하여 < 2019년 멸종지대 >를 만들었다.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은 <에스케이프 프롬 뉴욕>(1981)과 <매드 맥스 2>(1981)다. 파르시팔이 뉴욕으로 잠입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설정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의상까지 <에스케이프 프롬 뉴욕>에서 고스란히 가져왔다. 자동차 경주 등 액션 시퀀스는 <매드 맥스 2>의 영향을 깊이 받은 듯하다.

공포 영화나 코미디 영화는 얼마든지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다. 반면에 SF 영화는 제작비를 적게 들이면 우스꽝스러움을 벗어나기 힘들다. < 2019 멸종지대 >는 저예산 SF 영화답게 폐차장, 공사장, 공장 건물 등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제대로 된 세트를 만들지 않고 날 것인 상태로 찍어 미래 사회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소품, 분장, 의상, 특수효과 등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조악한 완성도에 열광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스파게티 SF 영화' < 2019 멸종지대 >는 이들의 지지를 받아 지금도 컬트 클래식으로 추앙받고 있다.

< 2019 멸종지대 >의 원제는 '2019 After The Fall Of New York'이다. < 2019 멸종지대 >가 제작되었던 1980년대는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체제 경쟁을 하던 냉전 시기였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핵무기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구에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 2019 멸종지대 >가 상상한 풍경이 그대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오염된 지역과 오염되지 않은 지역으로 국가 체제는 재편될 것이다. 종족 보존을 목적으로 생식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따로 격리하고 과학 기술이 건재하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식량 부족 때문에 쥐를 먹으며 연명할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누군가 핵무기 버튼을 누른다면 말이다.
 
<러닝맨> 영화의 한 장면

▲ <러닝맨> 영화의 한 장면 ⓒ Braveworld Productions


<러닝맨>(1987, 폴 마이클 글레이저 감독)

세계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식량, 석유, 천연자원이 바닥이 나자 미국은 강한 공권력을 휘두르는 통제 사회를 세운다. 음악, 옷 등 표현 수단은 검열을 받고 TV에선 신체 능력이 뛰어난 챔피언과 죄수들이 펼치는 생존게임 '러닝맨'이 인기를 얻는다. 비무장한 시위대를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긴 미국의 경찰 비행사인 리처드(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살인자란 누명을 쓴 채로 교도소에 복역한다. 탈옥했다가 붙잡힌 리처드에게 러닝맨의 진행자 킬리언(리처드 도슨 분)은 '친구들을 구하려면 게임에 참가하라'고 협박한다.

영화 <러닝맨>은 미국의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란 필명으로 1982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원작소설과 영화 내용은 콘셉트와 인물만 동일할 뿐, 전개와 엔딩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 <러닝맨>은 원작소설에서 느슨하게 가져온 뼈대에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액션을 덧붙여 근사한 SF 액션 영화로 거듭났다.

지금은 CGI와 편집이 액션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날로그 SFX를 사용하던 1980년대는 상황이 달랐다. 진짜로 몸을 날리는 배우들이 활동하며 액션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람보>(1982)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터미네이터>(1984)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터미네이터>로 스타덤에 오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레드 소냐>(1985), <코만도>(1985), <고릴라>(1986)로 입지를 다지다가 1987년 두 편의 기념비적인 SF 영화, <프레데터>와 <러닝맨>을 선보였다.

<프레데터>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정글에서 전투를 벌이는 전개를 통하여 월남전이란 '지나간' 미국을 은유한다. <러닝맨>은 미디어를 이용하여 대중을 통제하는 이야기로 '다가올' 미국을 예언했다. 극 중에서 킬리언은 "미국인들은 TV 앞에선 모두 애들이 돼. 그들은 게임쇼와 레슬링을 좋아해. 운동과 폭력도"라고 말한다. 영화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능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러닝맨>이 그린 리얼리티 쇼의 인기는 현재의 방송 경향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비록 프로그램 콘셉트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생존게임은 아닐지라도, 섬에 머물거나 가상으로 결혼을 하는 등 리얼리티 쇼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늘날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또한, 정부와 언론 등이 사실을 조작하는 영화 속 모습은 오늘날 가짜뉴스의 형태로 나타나는 중이다. 정치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협력하여 거대한 권력을 만든다는 설정도 어느 정도는 적중했다. '가짜' 리얼리티 쇼에서 인기를 얻은 도널드 트럼프는 결국 '진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데이브레이커스> 영화의 한 장면

▲ <데이브레이커스> 영화의 한 장면 ⓒ (주)성원아이컴


<데이브레이커스>(2009,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감독)

뱀파이어 바이러스가 발병한 지 10년이 흐른 2019년. 인류의 99%는 뱀파이어로 변했다. 혈액대체품 개발에 실패한 뱀파이어들은 피가 부족해지자 1% 인간들에게 협조하길 요구한다.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제안을 인간들이 거절하자 적으로 간주하고 생포하여 강제로 피를 뽑는다. 남은 인류는 뱀파이어들의 사냥을 피해 은신처에 숨는다. 인간의 피를 먹길 거부하는 연구원 에드워드 달튼(에단 호크 분)은 인간과 뱀파이어의 공존을 꿈꾸며 혈액대체품을 개발에 노력하지만, 희망은 점차 사라져간다. 어느 날, 라이오넬(윌렘 대포 분)을 만나며 뱀파이어에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치료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영화 속 뱀파이어 장르는 좀비 장르의 인기에 완전히 밀렸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뱀파이어 장르는 <렛 미 인>(2008),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2008),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내놓는 성과를 일구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영화도 나왔다.

<데이브레이커스>는 햇빛에 노출되면 불타고, 거울에 모습이 안 비치며, 불사의 존재 등 뱀파이어의 고전적인 설정에 충실하다. 다만 극 중 뱀파이어는 십자가나 마늘을 무서워하진 않는다. 영화는 뱀파이어의 관습을 따르되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가 사회를 지배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나 "인간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에서 혈액이 부족하면 뱀파이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현대적인 질문을 덧붙였다. 그 속에서 오늘날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을 사유한다.

영화의 뱀파이어 사회는 식용 혈액이 부족해지자 배급으로 철저히 통제한다. 부족한 피는 석유, 물, 공기, 식량 같은 한정된 자원으로 바꾸어 해석이 가능하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급을 움켜쥔 자와 필요로 하는 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다룬 논평인 셈이다. 끝없이 피를 원하는 뱀파이어의 습성을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연결한 기가 막힌 치환이기도 하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첫 장면엔 스스로 햇빛에 나가는 뱀파이어 소녀가 등장한다. 햇빛 속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것인데, 이 장면은 영화가 '뱀파이어는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다'는 고전적인 뱀파이어 설정을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선택의 서사임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뱀파이어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에드워드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치료제가 있다. 회복시켜주지. 아직 안 늦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으로 돌아가는 치료제는 곧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영화 속 배경인 2019년이 된 현재 양극화, 불평등, 빈부격차 등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데이브레이커스>가 던진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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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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