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삼백상회

  
1999년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해 조연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쌓고 주연으로 발돋움 후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메이저 영화 주연까지 꿰찬 배우. 데뷔한 지 10여 년 후에는 감독으로도 데뷔해, 단편 필모를 쌓은 후 다큐멘터리와 장편까지 섭렵한 감독. 물론 각본도 직접 쓴다. 그런가 하면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모두 멜라니 로랑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올해 그는 활동 소식이 없지만 작년까지 매 해 숨막히는 활동을 해왔다. 그 최신작 중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미국 HBO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와 영화 <매그니피센트7> 각본을 썼던 닉 피졸라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갤버스턴>이다. 멜라니 로랑은 이 작품을 통해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 이후 2년 만에 연출작을 내놓았다. 

영화는 잔잔하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은 애매함과 잔잔하기도 하고 파괴적이기도 한 풍성함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에서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먼저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에 있는 작은 도시인 갤버스턴은 19세기 번창한 항구도시로 시작했지만, 20세기 초 최악의 허리케인이 강타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또한 근처 다른 도시인 휴스턴이 급부상하면서 급격히 지역 경제가 위축되었다. 여전히 중요한 곳이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작은 휴양지 정도의 위상이다.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삼백상회

 
대략의 내용과 분위기 모두 기시감이 들게 한다. 죽을 병에 걸린 청부살인업자 로이(벤 포스터 분), 알콜 중독에 니코틴 중독인 듯 보이는 그는 보스 스탠의 명령에 따라 동료와 함께 누군가를 해치러 어느 집에 잡입한다. 하지만 곧 역습 당해 동료를 잃고는 간신히 살아남아 빠져나온다. 어린 매춘부 록키(엘르 패닝 분)와 함께 말이다. 그들은 스탠의 함정에 빠진 걸 깨닫고 정처 없이 도망 여행을 떠난다. 

도중 록키는 자신의 집으로 가 여동생 티파니(릴리 라인하트 분)를 데려온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셋은 안전해 보이는 갤버스턴의 어느 모텔에 정착해 장기투숙한다. 로이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조직이 이곳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놓는다. 셋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건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스탠의 압박이 아니라, 록키와 티파니의 기막힌 사연과 그에 따른 비극 때문이었다. 그들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이미 노출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있긴 한 걸까. 거기에 '행복'이라는 패가 있을 리 만무해 보인다.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삼백상회

 
<갤버스턴>은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을 지닌 영화다. 배우 출신 멜라니 로랑 감독은 캐릭터에 매우 공을 들였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라는 베테랑 배우들 역시 그에 적절하게 부합했다. 잔혹한 외면에 저항하고 버티기 위한, 쓸쓸한 내면을 탁월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러면서도 그 이름값에 맞게 튀지도 않고 작품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스토리와 사건이 이를 받쳐주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든 순정한 마초킬러와 그를 따르는 모든 걸 잃은 어린 여자. 그들은 언제 파멸이 눈앞에 다가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께 여정을 떠난다. 다시 없을 좋은 시간도 보낸다. 그리고 반드시 거대한 비극이 찾아온다. 좋은 기억과 예쁜 장면 만을 남긴 채 이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레옹>과 한국의 <아저씨>가 생각나는 줄거리다. 이밖에 수많은 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 스토리 라인이 변주되었다. <갤버스턴>도 그 변주의 하나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항구도시의 외양이지만, 그 이면엔 빈번한 재해와 한때 번창했다가 위축된 도시의 역사가 복잡다단하게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갤버스턴이라는 배경과 두 주요 캐릭터 간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진 못한 것 같다.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각 꽤 괜찮은 미장센을 선사하지만, 굳이 둘을 '그림이 되게끔'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운명 앞에 가해자 아닌 피해자
 
 운명 앞에 피해자들이 운명 앞에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운명 앞에 피해자들이 운명 앞에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삼백상회

 
눈 여겨봐야 할 점은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이다. 갤버스턴에 재앙적 허리케인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도, 갤버스턴보다 훨씬 더 큰 도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로이가 보스의 추격을 따돌리기 힘든 것도, 록키가 매춘부로 살아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수많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헤쳐 나가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세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헤쳐나온 사람들이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어려움 앞에 주저앉는 사람들'을 그저 나약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갤버스턴>은 그런 면에서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장소로 대피하여 소중한 시간을 갖다가 다시 가해자들 앞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거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신기하게 다 보고 나면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의 소소한 반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우리 모두 운명 앞에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동질감이 그리 괜찮지 않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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