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거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아줌마'다. 아마 남성들에게는 아저씨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싫은가'라는 설문조사에서 여성은 '아줌마', 남성은 '아저씨'를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나도 29살 때 처음으로 '아줌마'로 불렸던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설마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했는데 정말 나였을 때의 당혹감이란. 지금이야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그냥 아줌마라는 호칭을 받아들였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왜 이렇게 아줌마라는 호칭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지 궁금했다.

아마 '아줌마'에 대한 퇴행적 이미지 때문이지 않을까. 아줌마라고 하면 우악스럽거나 큰소리로 수다를 떤다거나, 전철에 타면 자리를 맡아 놓고 큰소리로 지인을 부른다거나, 좁은 자리에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주책스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미디어나 우리 일상 속에서도 일 잘하고 똑똑한 여성을 모욕 주거나 얕잡아 보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호칭이 바로 아줌마다. 이러니 아줌마라고 불리는 게 탐탁지 않을 수밖에.
 
한 간호사의 다짐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의 등장인물 소개. 앞서 수간호사를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의 등장인물 소개. 앞서 수간호사를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화면캡처

 
얼마 전 2015년 메르스가 한창일 때,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김현아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맨 머리를 들이밀고 싸우겠습니다"라는 '간호사의 편지'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던 주인공이다.

당시 그녀도 메르스 환자와 함께 중환자실에 격리되면서 환자를 돌보았는데,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도 사투를 벌였다. 그 과정이 그녀가 쓴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라는 책에 잘 드러나 있다. 최근에 이 책을 드라마로 제작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녀는 지금 직접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는 중이다.

최초로 간호사가 주인공인 의료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그녀는 이런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드라마 속 간호사는 의사 심부름꾼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습니다. 현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녀요. 간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바로 얼마 뒤에 그녀가 언급한 문제가 그대로 불거졌다. 지난주에 시작한 SBS 드라마 <의사 요한> 속 간호사에 대한 캐릭터 설명이 화근이었다. <의사요한>은 병원 통증의학과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드라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간호사에 대한 캐릭터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대소사를 사사건건 알아야 하고 퍼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다."

경력 20년 차인 수간호사를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로 표현한 것이다. 논란이 일자 SBS는 사과와 함께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운 아줌마"에서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모두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 메이커"로 수정했다.
 
실제로 그런 캐릭터도 있는데 왜 딴지를 거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라마를 통해 비친 간호사들의 이미지는 수다스러운 주책바가지거나, 말을 옮기는 촉새거나,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보다는 의사의 보조적인 감초 역할로만 그려진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한마디로, 한 번도 메인이 되어본 적이 없는 직업군인 데다가 캐릭터도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간호사의 역할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문 직업인을 비하하는 느낌이 강한 '아줌마'로 표현하거나, 고정화된 여성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은 드라마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 대법관 앞에 붙은 이해할 수 없는 수식어 
 
 앞서 CGV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세상을 바꾼 변호인> 홍보 포스터

앞서 CGV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세상을 바꾼 변호인> 홍보 포스터ⓒ CGV


얼마 전, 외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포스터도 논란이 됐다. CGV 공식 인스타그램에 <세상을 바꾼 변호인> 홍보 포스터가 공개되었는데, 내용을 모르고 봤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다.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라고 감안하고 봐도 납득이 잘 안 가는 문구였는데, 나중에 해외에서 만든 원본 포스터와 비교해 보고 한숨이 나왔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성차별에 저항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이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생애를 담은 영화다. 원본 포스터에는 긴즈버그 역의 펠리시티 존스 앞뒤로 'leader(지도자)', 'lawyer(변호사)', 'justice(정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포스터에는 '핵인싸', '데일리룩'이라고 되어 있었고, 'Marvelous(훌륭한)'는 '꾸안꾸한 날(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날)'이라는 표현으로 둔갑시켰다. 언뜻 이 포스터만 보면 주인공이 직업인으로서의 소명보다는 의상에 가장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옷에 신경 쓰고 잘 입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취향이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를 완전히 지우고 영화 자체의 정체성까지 왜곡시키는 것은 엄연한 영화 모독, 관객 모독이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욕을 먹더라도 시장에서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이 훨씬 더 장사가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본질까지 왜곡해서 우선 사람부터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저급한 마케팅이다.
 
이에 대해 강남순 교수는 자신의 책 <매니큐어하는 남자>를 통해 "여성이 검사, 앵커, 교수, 작가, 회사원, 승무원 등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어쨌든 여자'라는 가부장제적 가치가 은밀하게 그러나 매우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다"라며 "여성은 전문가로서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외모'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성차별적 가치로 평가받는다"고 진단했다.

서른 살 여성의 삶 설명할 단어가 '된장녀'뿐? 
 
 오는 8월 9일 방송을 앞두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 포스터

오는 8월 9일 방송을 앞두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 포스터ⓒ JTBC


포스터로 인한 구설수는 8월에 방영될 천우희 주연의 JTBC 새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불거졌다. 서른 살 여자 친구들의 고민, 연애, 일상을 그린,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표 수다블록버스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천우희씨의 팬이어서 반가워하고 있는데, 하필 포스터에 천우희 캐릭터가 '된장녀'로 표현돼 있어 깜짝 놀랐다.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된장녀는 실제 사치를 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다.

현실에서 이런 말이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미디어에서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너무나 '천진 발랄'하게 '#내가 된장녀라고? #어쩌라고 #된장엔 #차돌박이'라고 쓴 것을 보면 별로 고민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른 살 여성의 고민과 연애와 일상을 담아내는 설명으로 '된장녀'밖에 없었을까.
 
수간호사의 전문적 능력은 무시한 채 어쨌든 (주책맞은) 아줌마,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에 오른 사람도 어쨌든 (패셔너블하고 여자여자한) 여자,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30대 여성도 어쨌든 (분수 모르고 사치를 좋아하는)여자. 이런 차별이 불편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종이나 계층,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지금까지도 특정 인종을 비하하거나 장애인을 그저 슬프고 불쌍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를 통해 차별은 조장된다. 그래서 편견과 혐오가 담긴 표현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성뿐만 아니라 차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 속에는 다양성을 억누르려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늘 갖던 의문이지만, 이번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왜 나이 많은 여성은 종종 주책 맞은 아줌마로 엮여서 폄하당할까? 좀 더 다양한 아줌마 이미지와 이야기는 왜 보기 어려울까? 왜 병원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주인공은 늘 의사일까? 여성 전문인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는 외모밖에 없을까? 20, 30대 여성에게 명품백이나 화장품 같은 것이 가장 큰 고민이고 최고의 관심사일까?

이 질문들에 답을 알면서도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건, 변화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기존의 것만 답습하는 게으른 안일함이거나, 다양한 표현을 생각조차 못하는 상상력의 한계이거나, 장사만 되면 된다는 저급한 장삿속이거나, 셋 중 하나다. 이렇게 상상력과 포용력이 부족한 사회에서 학문, 예술, 문학, 정치 영역에서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도 몰라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소극적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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