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목동 야구장에서는 2019 청룡기 고교 야구의 결승전이 펼쳐졌다. 이미 황금사자기 우승을 따낸 유신고와 강원도 명문 구단 강릉고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뜨거운 화두였다.

전문가들은 유신고의 우승을 점쳤다. 공수 전면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고 결승까지 오는 과정이 매우 순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크호스'로 결승까지 올라온 강릉고 역시 만만치 않았다. 광주일고에 18년 만의 콜드게임 패(0-7)를 안겨준 뒤, 제물포고에 14-7로 대승을 거뒀다. 준결승에서는 개성고까지 꺾고 결승에 오른 강릉고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누구도 결과를 단언할 수 없는 라인업이었다. 경기 당일에 수많은 강릉 출신 인파가 경기장을 찾았다. 강릉고 동문들은 버스 10대 이상을 동원했고 재학생 역시 버스 3대를 타고 목동에 도착했다. 유신고도 많은 응원단을 동원했지만 강릉고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마치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같았다. 이번 글에서는 강릉고등학교 학생 시점에서도 2019 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관람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강릉에서 3시간 넘게 달려온 이들, 그러나 응원도 열심히(강릉고 학생 시점)

[오후 1시]

강릉고 학생들이 집결했다. 차례로 출석 체크를 한 후 다 같이 교가와 응원가를 제창했다. 1학년 때부터 갈고닦은 터라 서로 딱 맞아떨어졌다. 더 연습할 필요도 없었다. 이후 차례로 버스에 탑승했다. 며칠 전부터 학교가 떠들썩했다. 평소 지나가면서 보던 야구부가 전국 대회 결승에 올랐다는 게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금 신기하기도 했지만 강릉고의 야구 저력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보니 우승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동에 도착하면 열심히 응원하겠다는 다짐을 한 채로 버스는 출발했다.

[오후 5시 반]

휴게소에서 시간을 꽤 보냈지만 오랜 버스 탑승은 피로도를 높였다. 그러나 조금씩 목동 야구장에 다가가면서 기대감이 올랐다. 계속 네이버 검색창에 '청룡기'와 '강릉고', 또는 '유신고'를 검색하게 됐다. 또 학교에서 보았던 하이라이트나 사진들을 보면서 빨리 경기장에 가길 바랐다. 오랜 탑승 끝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길이 막혔는지 저녁도 제대로 먹을 시간 없이 경기장에 들어가야 했다. 잠깐 티켓을 기다린 후 차례로 입장했다. 경기장에는 이미 수많은 동문들이 들어 차 있었다. 천 명 이상이 온다고 들었는데 체감은 그 이상이었다.

[오후 6시]

선수들은 각자 캐치볼도 하고 베팅을 하면서 경기를 준비했다. 6시가 되자 양측 선수들은 인사를 하고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공식 의례를 다 한 후, 심판은 본격적인 경기 시작을 알렸다.
​ 
 강릉고와 유신고의 경기 장면

강릉고와 유신고의 경기 장면 ⓒ 김동현

  
1회 말 유신고의 4점 대량 득점, 반면 허윤동에 고전하는 강릉고

강릉고는 1회 초 먼저 공격에 나섰으나 허윤동에 고전했다. 허윤동은 이번 74회 청룡기에서 준결승까지 4경기에 등판해 3승 0패를 기록한 투수다. 14이닝을 던지는 사이 평균자책점은 0.00이었고 피안타 5개, 탈삼진은 16개에 달했다. 강릉고 1번 타자 홍종표가 실책으로 진루했으나 득점하지 못하고 이닝이 종료됐다.

반면 유신고는 김주원이 우중간 깊숙한 2루타를 치고 1루 주자를 득점시키면서 1회 말을 시작했다. 강릉고 응원단이 얼어붙었지만 이 득점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릉고 최지민은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어 실책으로 무사 1, 3루가 만들어졌고 유신고는 플라이볼로 두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우의 2루타로 점수는 3-0까지 벌어졌다. 유신고는 준결승까지 32득점-5실점을 기록한 팀다웠다. 반면 강릉고는 개성고와의 경기에서 71구를 던져 결승전에 등판하지 못한 '에이스' 김진욱의 부재가 아쉬웠다. 1회 말은 유신고가 한 점을 더 내어 4-0으로 앞선 채 끝났다. 세 번째로 등판한 엄지민이 병살타를 유도했다.

흔들린 강릉고, 타선은 '침묵' 투수진도 '아쉽'

강릉고는 '벌떼' 투수진을 가동했다. 김진욱의 부재 속에 기용 가능한 모든 선수들을 투입했다. 그러나 점수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타선은 여전히 침묵한 채 허윤동의 구위에 무너졌다. 그 사이 3회 말 유신고는 한 점을 더 벌렸다. 강릉고 네 번째 투수인 신학진이 마운드에 올랐으나 김범진이 우익수 키를 넘기는 강한 타구를 때렸다. 1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까지 밟았다.

4회 말 만루 위기를 넘겼으나 5회 말 김주원의 좌중간 2루타가 점수를 6-0까지 벌렸다. 강릉고는 이미 다섯 번째 투수인 함지호를 올린 상태였다. 이어 2사 2, 3루 상황, 박정현의 깊숙한 타구를 유격수가 잡았으나 던지지 못했다. 결국 한 명이 더 홈 베이스를 밟아 7-0으로 달아났다.

허윤동은 7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7회 삼자범퇴로 막아선 후 마운드를 소형준에게 넘겼다. 소형준은 KT가 1차 지명으로 선택한 투수다. 청룡기에서도 3경기에 나서 5이닝 동안 피안타 한 개만을 내줬다. 이번 경기에서도 9회까지 압도적인 공으로 승부하면서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결국 우승 트로피는 유신고에 넘어갔다.
 
 많은 인파가 몰렸던 강릉고 응원단

많은 인파가 몰렸던 강릉고 응원단 ⓒ 김동현

  
마지막까지 최선 다했던 두 팀, 74회 청룡기의 피날레

유신고의 우승으로 청룡기는 막을 내렸지만 양 팀은 경기 내내 최선을 다했다. 또 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 동안 큰 사투를 벌였다.

개인상 시상도 이어졌다. 대회 MVP 격인 최우수 선수는 유신고의 허윤동 몫이었다. 허윤동은 5경기에 등판해 4승 0패, 21이닝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우수투수 역시 그에게 돌아갔다. 수훈 선수는 유신고의 김주원이었다. 이어 타격은 신동수(개성고), 타점은 김주범(강릉고), 도루는 강동훈(신흥고), 홈런은 장규빈(경기고), 득점은 홍종표(강릉고) 등이 수상했다.

경기가 끝나도 대부분의 관중들은 경기장을 바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동문들은 모교의 교가와 응원가를 제창했다. 강릉고 동문으로 경기장을 찾은 이승현(27기)은 "엊그제 일요일 개성고와의 경기에도 와서 응원했는데, 졌지만 오늘 선배님들과 재학생들이 많이 와서 함께 응원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했다.

재학생으로 경기장을 찾아 경기 내내 북을 두드린 김남유(재학생)는 "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잘 싸웠고 결승전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동문과 재학생, 가족 등은 그라운드를 밟아 선수들을 맞이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수고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즐기는 모습이 훈훈했다.

강릉고 4번 타자인 김주범은 청룡기 대회 소감에 대해 "이번 대회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기뻤고 마지막까지 다치지 않고 마무리해서 기분 좋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강릉에서 여기까지 응원 온 친구들에게 "강릉에서 여기까지 와서 끝까지 열심히 응원해줘 고맙다"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응원가 제창하는 강릉고 선수단

경기가 끝나고 응원가 제창하는 강릉고 선수단 ⓒ 김동현

  
졌지만 잘 싸운 선수들에 감동, 즐거웠던 응원전(강릉고 학생 시점)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를 밟고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경기 내내 학교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선수들을 보며 자신 모르게 열심히 응원했다. 비록 경기는 0-7로 패배했으나 응원도, 경기도 최선을 다했다.

또 12년 만에 결승에 올라 이렇게 재학생이 응원 올 수 있는 날을 만들어준 선수들에 고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응원전도 즐거웠다. 수많은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은 강릉고에 있어 큰 행운이기도 하다.

버스에 탑승하고 돌아가는 길은 아쉽기보다 후련하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함께 영상을 보았던 야구부를 응원할 수 있어 모두들 만족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청룡기 강릉고 유신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