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목 드라마들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일찌감치 9시에 포문을 연 건 로맨스 사극 <신입사관 구해령>이다. 조선시대 연애 소설가 대군과 세상에 관심 많은 여성 사관, 당시 시대상을 뛰어넘은 캐릭터들을 내세워 <솔로몬의 위증> 팀의 강일수 감독과 김호수 작가가 다시 뭉쳤다. 티저만 보면 퓨전 사극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성균관스캔들>과 <해를 품은 달>이 떠오른다.

앞서 종영한 MBC 드라마 <봄밤>이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상황에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가장 유리한 고지 선점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펼쳐보기도 전에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며 시청률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손현주, 최진혁 두 배우을 앞세운 KBS는 장르물 <저스티스>로 돌아왔다. KBS 1TV <추적 60분>에서 10여 년간 일한 정찬미 작가와 KBS 2TV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의 조웅 PD가 손을 맞잡았다.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이후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손현주는 이번에 '악마' 같은 재벌로 변신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악'과 손을 잡은 변호사로 최진혁이 나섰다.

배우들은 믿을 만하지만, 법정을 배경으로 재벌과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더이상 신선하지 않은 게 문제다. 결국 <저스티스>는 첫 방송 6.2%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2회 차에 바로 4.1%로 하락하고 만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닥터 탐정, 산업 안전 의학 장르물의 선방 

뜻밖에도 방영 2주 차 만에 선두 자리를 탈환한 건 SBS <닥터 탐정>이다. 경쟁작에 비해 캐스팅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심지어 전작이었던 <절대 그이>는 시청률 2%를 기록하며 소리 소문없이 종영한 상황. 그러나 <닥터 탐정>은 '웰메이드' 하나로 시청률 1위를 거머쥐었다.

<닥터 탐정>의 선전 뒤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 SBS 스페셜 >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다큐멘터리 연출에 잔뼈가 굵은 박준우 PD의 활약이 있었다. 또한 산업의학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살린 것 또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닥터 탐정>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생생한 현실감이다. 굳이 4회 말미에 덧붙인 '에필로그'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쌓은 현실감각과 산업의학전문의 만이 그려낼 수 있는 디테일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뻔한 재벌 비리'를 다룬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닥터 탐정>은 산업 현장의 현실성을 제대로 그려내며 새로운 장르물의 탄생을 예고했다. 특히 3, 4회 방영된 지하철 하청업체 재해 사망 사고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구의역 사망 사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들을 산업 재해의 피해자로 만드는 하청업체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박진희는 극중에서 한때 재벌그룹 며느리였지만, 이제는 딸조차 빼앗긴 '닥터 탐정'으로 분한다. 천재적인 능력에 놀라운 집중력까지 가진 직업 환경 전문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능력은 기업이 정부의 법망을 피해가고 노조의 반발을 무마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깊은 밤 모두가 퇴근한 현장에 도둑 고양이처럼 등장한 닥터 탐정 도중은(박진희 분)은 산업 안전법의 꼼수를 전파하고 돈을 받는다.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던 도중은을 변화시키는 것은 따스한 이웃이다. TL메트로 하청 업체 직원이었던 정하랑(곽동연 분)은 과도한 업무와 산업 재해로 병에 걸렸다가 결국 사망하고 기업은 이를 은폐하려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도중은은 결국 미확진질환센터(UDC)의 팀장 자리를 수락한다. 

물론 다큐멘터리에 감정만 불어넣는다고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니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같은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신파'를 가미하려 한다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트릴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존재감을 드러낸 곽동연, 언제나 연기로 승부하는 봉태규, 박지영, 류현경 등 배우들의 열연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보완했다.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 

SBS에 돈을 위해 산업안전법을 이용했던 '닥터 탐정'이 있다면 OCN에는 승리를 위해 편법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형 로펌의 간판 변호사가 있다. OCN 수목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에서 변호사 기무혁(윤균상 분)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기간제 교사로 변신한다. 

로펌 대표가 기무혁에게 던져준 사건은 이랬다. 천명고의 한 여학생이 사고를 당하고 현장에서 잡힌 남학생이 유력한 용의자가 됐다. 로펌 대표는 적당한 선에서 형량을 정하고 마무리 하라고 했지만 의욕이 앞섰던 기무혁은 '무죄'를 주장한다. 
게다가 법정에서 뜻밖에 용의자였던 남학생 역시 범행 사실을 부정하고 심지어 옥상에서 뛰어 내리며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무혁은 변호사로서의 윤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까지 당한다.  

보육원에서 자란 기무혁은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자신조차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에 새긴 인물이다. 그가 갖은 고생으로 얻게 된 대형 로펌의 변호사 자리. 하지만 그 안온한 생활은 천명고 사건으로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결국 여학생이 사망하면서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 전환되고, 기무혁은 이 사건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의혹을 안고 찾아간 피해 여학생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천명고 학생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그로 하여금 기간제 교사라는 모험의 계기가 된다. 변호사 출신의 명석한 기간제 교사와 위악적인 학교, 학생들간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장르물의 신선한 지평을 연다. 

알고 보니 천명고에는 로펌 대표의 아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난한 학생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왕따 시키고 있었다. 또한 어른 뺨치게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학생들까지. <솔로몬의 위증>의 암울한 사립고와 < SKY 캐슬 >의 위악적인 교육 현실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미스터 기간제>는 단 2회 만에 2배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 질주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