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신보는 완성도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한차례 구설에 오른 지난 2016년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세 번째 정규음반은 신곡 없이 공연으로만 활동을 이어오던 그룹에게, 또 대중에게 안정적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탄성 있는 기타 리프, 쫀쫀한 멜로디 라인, 길을 찾을 수 없는 가사가 뒤섞여 <계몽>은 쏜애플 만의 색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조준했다.
 
기존 노선을 따라가는 와중 곳곳에 뿌려진 음악적 욕심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5분이 넘어가는 러닝 타임은 물론이고, 악기 간의 연주 호흡을 많이 등장 시켜 짧고 강인한 인상 대신 강인하고 몽롱한 사운드 스케이프 제작에 집중했다. 각 절 사이로 종잡을 수 없이 기타 솔로가 들어가는 '기린', '검은 별' 등이 대표 트랙이다. 타이틀 '2월'은 또 어떤가. 굳이 마침표를 찍어도 될 극 후반부에 악기를 꺼내와 곡을 늘이고 이는 '로마네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자주 사용하지 않던 신시사이저도 전면으로 들여왔다. 과거 밴드가 종국에는 탕탕 치는 듯한 사운드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인상을 주었다면 이번에는 다르다. 전위적이고 사이키델릭하게 음을 조합해 한 손에 잡히질 않는 세계관을 그려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짐과 비정형으로 일관하는 '물', '배를 바짝 붙이고 엎드려라 / 우리는 하나 같이 너의 왕이니'라는 알 수 없는, 그러나 곡의 어렴풋한 배경을 그리게 하는 가사의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가 그렇다. 흐릿하게 만들고 광폭하게 내리찍는 포스트 록의 기조를 띤 '넓은 밤'도 이 경계 안에 속한다. 
 
 밴드 쏜애플이 정규 3집 <계몽>을 발매했다. 서늘하고 건조한 음반 커버와는 달리 신보에는 종종 대중적인 선율도 감돈다. 얼마 전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밴드 쏜애플이 정규 3집 <계몽>을 발매했다. 서늘하고 건조한 음반 커버와는 달리 신보에는 종종 대중적인 선율도 감돈다. 얼마 전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 해피로봇레코드

  
그들에게 열광하던 요소들,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목청 높여 따라 할 수 있는 선율과 그 와중 놓치지 않던 음악적 열망들을 꼼꼼히 가져왔다. 특히 초반 '마술', '수성의 하루', '2월', '로마네스크'로 이어지는 밀도는 훌륭하다. 구태여 악기를 더 부각해도, 간결한 3분 팝에서 벗어나 더 오랜 집중도를 요구해도 마음을 내줄 파워풀한 시너지가 담겨있다. 평균 5분가량의 곡에 팽창하듯 채워 넣은 조밀함은 '수성의 하루' 같은 노래에 튀어나오는 단체 코러스를 마주하는 순간 일종의 전율을 건넨다.
 
대중성과 욕심. 이 두 개의 진자 운동의 접합은 마치 오페라 같이 노래하는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를 끝으로 어긋난다. 자주 쓰지 않던 전자 사운드, 작정하고 뭉개버린 노이즈들이 형성한 쏜애플 월드는 앨범의 후반부에 이르러 급격히 중심을 잃는다. 계속해서 힘을 주고 밀고 끌어버려 짜릿함은 무뎌지고 중점은 흐려진다. 6분이 넘는 '넓은 밤', 극강의 모자이크를 주조한 '뭍', < Kid A >를 만들던 시절의 조금은 연성화된 라디오헤드처럼 느껴지는 '검은 별'까지. 끝없이 압박해오는 사운드 장벽은 그사이 음반 내 가장 대중적 가사를 지닌 수록곡 '은하'의 종적을 감추고 결국 초반의 살기를 무력화했다.
 
인디 씬에 작은 충격을 안긴 1집 <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의 성공에서 보다 체계적 완성과 대중 감을 보여준 2집 < 이상기후 > 너머로 밴드만의 성장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후반, 범위를 벗어난 과호흡에 응축된 에너지의 벨트가 풀렸지만 그룹이 하고 싶은 대로 음반을 지었다는 점에서는 반갑다. 물론 이 부분은 내가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적나라한 영합만은 하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달게 듣고 쓰게 뱉어질 음반. 좋은 의미로 과도기를 걷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쏜애플 리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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