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테레즈 라캥> 공연 장면.

뮤지컬 <테레즈 라캥> 공연 장면. ⓒ 한다프로덕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부부가 있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은 서서히 미쳐가며 죽어간다. 그들이 죽인 전남편의 집 안에서.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한다프로덕션의 첫 제작 공연으로 오는 9월 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된다. 테레즈 역에 정인지, 나하나, 강채영, 로랑 역에 고상호, 백형훈, 노윤, 카미유 역에 박정원, 최석진, 박준휘, 라캥부인 역에 오진영, 최현선이 출연한다.

원작 '테레즈 라캥'은 어릴 때부터 불행과 억압 속에서 자라난 한 여성이 금기를 넘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백한 문체로 풀어낸 작품이다. 국내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잘 알려져있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원작이 갖고 있던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더욱 집중했다. 테레즈와 로랑의 시점에서 주로 전개되던 이야기를 넓혀 새로운 삶을 꿈꾸는 로랑과 테레즈, 안정된 삶을 원하는 카미유와 라캥부인 4명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들이 바라는 '새로운 삶'과 '안정된 삶'은 제각각 또 다르다.

예컨대 '새로운 삶'을 꿈꾸는 로랑과 테레즈는 각자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 로랑은 '집 안'을, 테레즈는 '집 밖'을 꿈꾸는 것이다. 카미유와 라캥부인 역시 서로 '자신이 주인공인 집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라캥부인은 일견 카미유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비쳐지나 그 역시 '희생하는 엄마'라는 포지션에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이렇게 네 명의 욕망이 충돌하는 과정을 쉴 새 없이 무대 위에 쏟아낸다.

담백한 문체로 서서히 미쳐가는 인물의 심리를 묘사했던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계속해서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심리가 극적으로 표현된다. 스릴러 장르에 가까울 정도로 관객의 긴장감을 꽉꽉 채우는데 담담하게 묘사하더라도 독자의 내면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과 달리 무대는 의자에 앉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렇게 과격한 접근법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공연 장면.

뮤지컬 <테레즈 라캥> 공연 장면. ⓒ 한다프로덕션

 
그런 결과 원작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기도 해서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더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반면 무대 공간 자체는 원작의 정서를 아주 잘 반영했다. 요즘 말로 '투머치'하다 싶을 정도로 무대에 가득 담아낸 2층집은 테레즈가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또 2층 집을 좌우와 중앙으로 3등분해서 총 6개 정도의 구역으로 나눠 해당 인물이 갖고 있는 입장이나 힘의 위치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극에서 가장 볼만한 지점은 테레즈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연기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질감이 다소 평면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쉽지만, 극 초중반에 선보이는 '집에 갇힌' 테레즈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전까지 우울함에 지배당하던 테레즈가 로랑과 밤에 만나서 처음으로 생기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장면은 극 전체의 서사와 관계 없이 배우 개인의 힘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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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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