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미드소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예인 아리 애스터 감독의 신작 영화 <미드소마>가 극장 상영 중이다. 지난 2018년 장편 데뷔작 <유전>을 선보이며 새로운 스타일로 호러 장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만큼 기대가 촉망되는 감독이다. <미드소마>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라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리고 소문 만큼 영화는 인상적이다.
  
 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동생의 비극적인 자살 사건으로 부모까지 한꺼번에 잃은 주인공 대니(플로렌스 퓨)는 마음을 추스르고자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잭 레이너)과 그의 친구들을 따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기간에 특별한 축제를 여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을 방문한다.

인류학도인 크리스티안과 그의 동료들 목적은 단순한 여행에 있지 않고 이 마을공동체와 하지제(Midsommar)에 대한 현장연구에 있다. 딱히 대니를 데리고 올 마음이 없었던 그들은 은근하게 그녀를 소외시킨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결말에 가서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방문자들은 마을 구성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들의 주검 앞에 넋을 잃고 절규하던 대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정면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클로즈업되어 프리즈 쇼트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끝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사실 기괴한 장면은 결말부까지 가지 않고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나온다. 영화의 장르는 '고어물'로 분류된다. 고어 장르답게 등장인물들에게 가해지는 신체훼손을 상상력에 맡기지 않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다. 보기 불편한 장면들로 넘쳐 이미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성인물이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 갔다가 벌어지는 일들

생명경시와 같은 주검에 대한 묘사가 시니컬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영화가 냉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안사회에 있다. 영화에서 가족과 남자친구, 동료 모두를 잃은 주인공 대니는 마을공동체에 의해 선택된 유일한 생존자를 넘어 공동체사회의 가족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말하자면 그녀의 입장에선 새로운 대안가족을 만나게 된 셈이다.
 
주인공 대니가 스웨덴을 방문하기 전,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설 힘도 없었을 때 남자친구는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다. 반면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의 관계는 매우 공고해 보인다. 일종의 남성 중심의 아카데믹한 학술연대에 공연히 대니가 끼어든 꼴이다. 불행한 것은 그녀가 크리스티안과 그 친구들에 의해 멸시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에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 무리가 보여주는 '남근성'은 대니는 물론 마을공동체에 대해서도 대상화한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을의 괴이한 의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연구대상으로서 먹잇감이 생겼다는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하다못해 서로 연구 과제를 선점하려는 경쟁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한마디로 약탈적 인류학자의 전형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이라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스웨덴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 중 복지국가로 일종의 후기자본주의의 대안모델이 되기도 한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의 남근적인 일부일처제에 비해 영화 속 마을공동체 역시 가족주의의 대안이다.

공동체를 지속하게 하는 출산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여성적 연대와 같은 대안적 방식으로 남성을 선택한다. 소규모 마을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근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비록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수평적 공동사회라지만 건강해 보일 리 없다. 폭력과 희생제의의 메커니즘은 주류사회와 매한가지다.
 
중심주의에 대한 날 선 시선


사실 이미지의 은유와 디테일로 넘치는 영화의 미장센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이 영화가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막연히 <미드소마>에 대해 대안사회를 비판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반동의 영화로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모든 중심주의를 반대하며 응집하는 또 다른 형식의 중심주의에 대해 날 선 시선을 견지한 채, 카메라에 피범벅이 되어가는 주검들을 담아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안이라는 이름을 단 비뚤어진 근본주의에 매스를 댄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을 응시하는 주인공 대니의 미소 띤 시선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약탈적 인류학자와 같은 남근성에 대해 '카운터'를 날리는 것 같다. 시니컬한 느낌을 주는 '썩소'라는 말이다.

반면 정반대의 관점에서 '당신들이 원하는 대안의 모델이 이런 것인가요'라는 질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로써 남근적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왜곡된 대안의 방식에 성찰을 유도한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배제와 폭력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맹목적 종교적 신념과 같은 뒤틀린 공동체주의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위와 같이 <미드소마>는 영리하게도 남성 중심의 남근주의에 한방을 날리면서도, 동시에 그 대안의 형식이 아무리 순환을 따르는 생태주의이거나 혹은 공감과 생산에 기초한 여성적 연대라도 그 자체가 중심주의가 되는 순간 그 어떤 것도 남근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회의적인 방식은 늘 그렇듯이 우리를 아이러니에 빠지게 한다. 아니면 우울하거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작성한 이황석 시민기자는 문화평론가이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입니다.
중심주의 희생제의 배제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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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문화정치에 관한 칼럼을 아시아투데이에 연재중입니다. 출판한 저서로는 영화로 읽는 우리시회- 역설과 아이러니의 대한민국, 문화정치로서 영화읽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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