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양궁은 언제나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면서도 1984년 LA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24년 동안 한 번도 개인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여자양궁이 1984년 LA 대회부터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올림픽 개인전 6연패를 달성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 남자양궁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오진혁이 역대 최초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28년 만에 '노골드 행진'을 마감했다.

하지만 한국 '남자양궁의 영웅' 오진혁은 4년 후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대표 선발전에서 구본찬, 김우진, 이승윤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양궁의 경우 까다롭고 공정한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를 선발하기로 유명한 종목으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대표 선발전 통과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 이렇듯 대한양궁협회의 철저한 실력 중심 선수 선발과 대표팀 운영이 세계 최강 한국양궁을 이끌어 온 비결이다.

모든 스포츠 연맹과 협회가 대한양궁협회처럼 모범적이고 공정한 운영을 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스포츠 단체들은 행정미숙, 안일한 운영 등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문제가 지적된 단체는 대한수영연맹이었다. 지난 12일에 개막해 오는 28일까지 진행되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팀을 참가를 지원한 대한수영연맹은 유니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등 안일한 대처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테이프로 상표 가린 유니폼, 펜으로 'KOREA' 쓴 수영모
 
결승선 통과하는 백승호 여수 엑스포 해양공원 오픈워터 수영 경기장에서 열린 오픈워터수영 남자 5km 경기에서 백승호가 터치패드를 찍고 있다. 백승호는 57분 5초 30의 기록으로 총 60명의 출전 선수 중 48위를 기록했다.

▲ 결승선 통과하는 백승호여수 엑스포 해양공원 오픈워터 수영 경기장에서 열린 오픈워터수영 남자 5km 경기에서 백승호가 터치패드를 찍고 있다. 백승호는 57분 5초 30의 기록으로 총 60명의 출전 선수 중 48위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13일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오픈워터 5km에 출전한 백승호의 수영모에는 펜으로 'KOREA'라고 쓰여 있었다. 백승호 선수는 미리 준비한 수영모를 착용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부랴부랴 수영모를 구매해 펜으로 국가명을 적어야 했다.

국제수영연맹(FINA) 규정에 따르면 오픈워터 선수들은 수영모에 국가명만 적을 수 있는데, 대한수영연맹이 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태극기가 그려진 수영모를 선수들에게 지급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나온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백승호 선수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수영모를 착용한 게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수영모가 계속 머리에서 벗겨지더라, 매우 아쉬웠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14일 열린 다이빙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선에 출전한 한국 다이빙 간판 우하람의 유니폼 등 부분에서는 다른 국가의 선수들과 달리 국가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맹이 대회 개막 열흘 전에 급하게 후원사 계약을 하는 바람에 'KOREA'가 적힌 유니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후원사의 상표 로고가 박힌 의류를 입어야 했던 것이다. 선수들은 궁여지책으로 테이프를 사용해 후원사의 로고를 가릴 수 밖에 없었다.
 
'개최국 격에 안 맞는 유니폼' 지난 14일 오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승전에서 테이프로 특정 상표를 가린 상의를 입은 우하람이 입장하고 있다(왼쪽). 국가대표 유니폼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15일 우하람이 임시방편으로 국가명을 붙인 상의를 입고 10m 싱크로나이즈드 결승전에 입장하고 있다.

▲ '개최국 격에 안 맞는 유니폼'지난 14일 오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승전에서 테이프로 특정 상표를 가린 상의를 입은 우하람이 입장하고 있다(왼쪽). 국가대표 유니폼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15일 우하람이 임시방편으로 국가명을 붙인 상의를 입고 10m 싱크로나이즈드 결승전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는 해당 종목의 세계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열리고, 또한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지난 2013년 생애 두 번째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올림픽은 나라마다 출전 선수가 제한돼 있지만 세계선수권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출전한다. 따라서 올림픽 만큼 값진 대회라고 생각한다"며 세계선수권대회의 높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벌어진 수영복-유니폼 해프닝을 보면, 대한수영연맹은 가치가 높은 대회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먹은 셈이다.

사실 이번 '유니폼 해프닝'을 제외해도 수영연맹은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꽤 문제를 많이 지적받은 단체다. 지난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딴 박태환에 대한 포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포상금 지급이 미뤄진 이유는 올림픽 후 연맹이 주관하는 행사에 박태환이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결국 수영연맹은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나서야 박태환에게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끊이지 않는 스포츠 연맹-협회의 문제들, 책임감은 어디로...
 
우여곡절 겪은 노선영 선수촌 입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이 4일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수촌에 도착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이 지난 2018년 2월 4일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강릉선수촌에 도착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당시 노선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창행' 기회를 잡았다.ⓒ 연합뉴스

 
최근 비리 의혹과 안일한 운영을 이유로 가장 많이 도마에 오른 단체는 단연 대한빙상연맹이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ISU)의 출전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 선수 2명의 불참으로 노선영이 극적으로 대회에 출전하긴 했지만, 자칫 올림픽 출전이라는 선수의 꿈이 연맹의 미숙한 대응으로 무산될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또한 평창올림픽 팀 추월 경기에서 '노선영 왕따 논란'이 발생했을 때도 연맹의 대처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선수들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었던 빙상연맹은 사안이 김보름과 노선영의 진실게임으로 번질 동안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결국 '김보름을 국가대표에서 퇴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동의 50만을 돌파할 정도로 사태의 파장은 커졌다. 이어 2019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안을 두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을 특정감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감사 결과 왕따 논란은 '무혐의'로 종결됐고, 팀 추월 선수간 갈등은 전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자배구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 '배구 여제' 김연경(엑자시바시)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인사하고 있다. 2018-2019 터키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을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친 김연경은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VNL 3주 차인 6월 초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 여자배구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배구선수 김연경의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한국 여자배구는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배구계로서는 지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되찾은 소중한 금메달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대한배구협회가 준비한 금메달 축하 회식 메뉴는 '고작' 김치찌개였다. 이에 분노(?)한 주장 김연경이 사비로 선수들과 따로 회식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이야기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트로이카 시대'의 민속씨름은 과거 명절마다 온 국민을 TV앞으로 모이게 하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씨름은 강호동의 이른 은퇴와 김영현, 최홍만 등 거인들의 등장, 그리고 선수들의 이종격투기 전향으로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때 한국씨름연맹은 제대로 된 대안 없이 사태를 지켜 보기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 씨름연맹은 2006년 9월 씨름계의 문제를 지적하던 이만기에게 '연맹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영구제명의 중징계를 내려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국씨름연맹의 징계에 반발하며 자료를 보고 설명하고 있다. 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국씨름연맹의 징계에 반발하며 자료를 보고 설명하고 있다.

▲ 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국씨름연맹의 징계에 반발하며 자료를 보고 설명하고 있다.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국씨름연맹의 징계에 반발하며 자료를 보고 설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스포츠 협회나 연맹의 존재 이유는 선수들이 최선의 조건과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선수들이 가진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는 더욱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나 연맹에 속한 책임자는 물론이고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 대해 더욱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일이다. 더 이상 연맹이나 협회의 안일한 운영과 무지로 선수들이 피해를 보고 팬들이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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