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7월 17일 오전 8시 50분]
 
 <배심원들> 포스터

<배심원들>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법원이 구속 만료 전까지 재판을 마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석 석방을 시사하면서 검찰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법농단'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 2019년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에서는 '법원'은 5.9%로 6위에 올랐다. 대통령·시민단체·대기업·언론에 밀린 결과다. 또한 2018년 <시사IN>에서 실시한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는 대법원이 10점 만점에 3.42점으로 경찰·검찰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신뢰도 하락은 현재 사법부에서 이뤄지는 판결이 국민의 상식,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국민들이 판사의 판결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만 살펴봐도,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정하고 정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첫 배심원제 도입 재판을 소재로 한 <배심원들>
 
 <배심원들> 스틸컷

<배심원들>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2008년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배심원들>은 재판부에 영역에 발을 내민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배심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법이 지녀야 될 자세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조명하는 영화다. 극 중에서 대한민국의 첫 국민참여재판을 앞두고 재판부의 신경은 곤두선다. 처음 시도되는 배심원제가 과연 국내 재판에 정착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이번 한 번의 재판으로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높은 언론의 관심과 국민참여재판을 향한 강한 찬반 여론 때문에 재판부는 판결이 어느 정도 결론이 난 사건을 배정한다. 재판부와 배심원들의 의견이 심하게 갈리거나 배심원들이 사건을 깊게 파고들 경우 배심원제가 오히려 재판을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생애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들은 어머니를 죽인 혐의로 재판에 선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원칙주의자 재판관 준겸(문소리 분)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이끌어 나가고 분위기는 많은 이가 예상했던 대로 유죄 평결 쪽으로 굳어간다. 그런데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 분)가 반대되는 의견을 드러낸다.
  
 <배심원들> 스틸컷

<배심원들>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남우가 반대 의견을 표하고, 다른 배심원들의 의견도 남우의 의견 쪽으로 점차 기울어질수록 준겸과 재판부는 속이 타들어간다. 유무죄 여부가 거의 확정되었다고 여겨지는 사건을 두고 배심원들에 의해 평결이 지연되자, 여론은 '배심원제는 아직 한국 국민 수준에는 무리'라는 의견을 내비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남우와 배심원들이 사건 평결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대사의 의미

재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렇기에 한 점의 의혹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그것을 밝혀내려 노력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에 많은 이가 알고 있던 법에 대한 인식과는 다른 법사상이 등장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영미법적 법사상이다. 이는 무죄추정주의와 증거재판주의에 근거한 법사상으로, 피고는 유죄를 선고받기 전까지 무죄로 간주되며 재판은 확실한 물적 증거 없이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법이 지닌 성격과 지향점을 보여준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극 중 준겸의 대사는 재판부가 지향해야 할 자세를 보여준다.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으려는 재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들여다 보는 광경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각 배심원들은 그들이 맡은 배심원이라는 임무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피의자를 바라보게 된다.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리기에 급급하기보다, 피고의 내면과 사건의 동기에 집중하면서 재판의 흐름이 지닌 모순을 발견해낸다.
  
 <배심원들> 스틸컷

<배심원들>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흔히 생각하기에 재판에는 세 가지가 존재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첫 번째는 국민의 상식에 맞춘 판결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사람 대 사람'으로 피고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현 대한민국의 사법부 그리고 재판부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작품 속 배심원들의 자세로 사건을 봐달라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적용 받는 법은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영화 속 배심원들의 생각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도 있는 매우 무거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사법부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112분이란 시간에 꼼꼼하게 담아 보여준 아주 인상 깊은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배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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