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영화 <미드소마>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태어나자마자 가족인 부모형제와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며 그것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끊어진다. 유아기를 벗어나 나이가 먹으면서 친구를 만들며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관계는 서로 간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어느 정도는 지속되리라고 생각한다. 서로 같은 것과 다른 것, 주변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 관계라는 것이 이어지는 데에는 개인의 노력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의견이 맞지 않아 헤어지거나, 친구관계가 오랜 시간 속에서 제3의 요인에 의해 단절되기도 한다. 각각의 개인들은 관계를 지속시키려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멀어지는 상대방을 붙잡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저 멀리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상대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과 슬픔을 같이 공유할 수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오열하게 된다. 개인에게 관계의 단절은 억장이 무너지는 감정을 불러온다.

관계의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싹한 영화

영화 <미드소마>는 관계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대니(플로렌스 퓨)가 겪는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니는 여동생과 부모님의 자살로 본인이 태어나면서 맺은 관계가 급작스럽게 단절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진정한 공감을 받지는 못한다.

꽤 오래된 커플인 둘의 관계는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이어진다. 크리스티안의 친구들 중 일부는 그들의 이별을 종용하고, 망설이는 크리스티안에게 다른 여성과의 데이트를 추천한다. 그래서 영화 전반에 걸쳐 대니와 크리스티안 커플의 태도는 서로 상반된다. 대니가 크리스티안과의 관계가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손을 내밀고 있는 인물이라면, 크리스티안은 그 손을 마지못해 잡고 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두고 있는 인물이다.

대니가 몇 번이고 통곡을 해도 크리스티안은 그 감정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겉돈다. 결국 대니는 우울한 감정이 안에서 솟구칠 때마다 화장실이나 아무도 보지 못할 공간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그저 혼자 그 모든 감정을 쏟아낼 뿐이다.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대니와 친구들은 일원 중 한 명인 사이먼(아치 매더퀴)의 고향 스웨덴에서 진행되는 하지제인 미드소마에 초대받고 모두 그곳으로 향한다. 미드소마는 스웨덴에서 한 여름, 낮이 가장 긴 날 열리는 축제다. 해가 굉장히 길고, 어두운 시기는 몇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밤 9시에도 대낮처럼 환한 시기다. 그래서 영화 내내 주인공들이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는 장면은 적은 대신 환하게 밝은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장면은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더욱 이질적으로 보이게 한다.

밝고 따뜻한 낮에 거행되는 기괴한 축제

영화가 시작되는 도입부는 차가운 눈이 펑펑 내리는 어두운 밤의 모습이다. 주인공 대니가 심리적으로 어두운 겨울 속에 잠겨 있다고 묘사하는 것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검은 어둠과 하얀 눈이 대비되어 더욱 차가운 느낌을 준다. 그 후 대니의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고, 친구들과 스웨덴으로 떠난 이후부터는 밝고 따뜻한 낮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는 대니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전환점이며, 기존의 관계들과 혼란스러운 상태가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이렇듯 영화는 전개 내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은연 중에 암시한다. 또한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실제 화면 속에서 벌어졌을 때, 이미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공포감은 더욱 고조된다.

마을의 초입에 도착해서 처음 환각을 유발하는 어떤 차나 물질을 먹는다. 대니는 흥분을 느끼며 자신의 발을 바라본다. 자신의 발을 뚫고 솟아나 있는 풀잎들을 본 이후 대니는 메스꺼움을 느끼고 화장실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영화 내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통곡으로 쏟아낸다. 영화 후반부 또다시 같은 환각제를 먹게 되는 대니는 이전에 나온 것과 비슷한 풀잎 장면을 다시 한번 보게 되는데, 이는 결국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길 원하는 대니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엔 이와 같은 강제적인 연결에 대해 메스꺼움을 느끼고 올라오는 감정을 쏟아냈던 대니였지만, 후반부에는 같은 상황임에도 조금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실제 축제가 벌어지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복장과 행동은 과거 중세시대를 사는 이들처럼 고전적이다.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축제가 완벽히 준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특히 주인공들이 과거 축제의 사진들을 보는 장면을 통해 그 축제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것이고 완벽하게 준비된 것인지를 천천히 알려준다.

결국 이방인인 대니와 친구들은 새로운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하나하나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행동양식들은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극 중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 크리스티안과 친구들은 마을 축제 자체를 논문 주제로 삼으려고 한다. 일방적인 호기심과 관심에서 시작된 그 연구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뤄진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또 다른 비극으로 주인공들을 인도한다. 그들은 그 마을 자체를 신기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탐구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이 그들 간의 관계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다.

등장인물들은 상대방을 연구한다는 명목하에 몰래 마을의 비밀에 침투하여 정보를 얻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능숙하게 그들을 처단한다.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를 탐했던 사람들은 눈과 입, 얼굴 등은 기괴한 방식으로 그들의 축제의 꽃인 '제사의 제물'로 활용된다.

축제가 완성한 관계의 파국

마을 축제에 참여하게 된 대니와 친구들은 뭔가 꺼림칙한 부분들도 차례로 만난다. 마을 사람들은 밥 먹는 것부터 자기 전까지 모두 괴상하게 보이는 규칙을 따르는데, 한 편으로는 그 장면들이 꽤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관계의 순환이라는 미명 하에 일정 나이가 된 노인들이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데, 이 장면은 마을의 많은 규칙들이 일반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영화 속에서는 이렇게 하나하나 마을 축제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주인공들과 새롭게 맺은 관계들이 하나둘 끊긴다. 마치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 <유전>과 마찬가지로 영화 <미드소마>는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점차 파국의 끝까지 나아간다. 극 중 주인공 대니는 마을 사람들을 제치고 5월의 여왕으로 등극하고 크리스티안은 마을의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대니가 자신의 남자 친구의 외도를 관계의 파국으로 인식하며 오열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대니와 똑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같이 오열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이 성적인 희열을 맛볼 때,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똑같은 표정으로 그 희열을 표현한다. 결국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지면서 대니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가족, 친구 등 모든 관계는 다 끊긴다.

대니는 기존 세상에서 맺어왔던 관계들이 불에 타 사라질 때 다시 한 번 오열한다. 그 옆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를 따라 오열한다. 대니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던 남자 친구는 대니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제물로 바쳐진다. 현실의 삶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가 끊긴 대니는 결국 그의 감정을 공유해주고 공감해주는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 대목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한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기존에 맺어오던 관계가 깨졌을 때 다음의 새로운 관계를 맺기까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폭풍과도 같은 감정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순간 당사자의 마음속에 폭풍처럼 일어나는 기이한 감정과 고통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단절시켜야만 조용해지곤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면 다시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수도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겪는 개인이 얼마나 큰 혼란을 겪는지를 기이하고 잔인한 파국의 제사로 표현한다.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영화 <미드소마>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유전>과 마찬가지로 잔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전작과 같이 악마의 존재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축제의 규칙을 천천히 보여주며 어떤 일이 벌어질 거란 암시를 지속적으로 줄 뿐이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는 140분의 시간 동안 쭉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직접적으로 묘사된 잔인한 장면을 제외하면 공포스러운 요소가 극 자체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느낌은 내내 지울 수 없다.

완벽하게 잘 짜인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 <미드소마>는 배우 플로렌스 퓨의 얼굴을 통해 상황의 공포감과 절망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전작의 토니 콜렛의 허망한 표정 묘사가 그랬듯이, 점점 넋을 놓아가는 플로렌스 퓨의 얼굴은 각 상황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도구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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