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경찰 야구단의 해단 전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경기를 치르기 위해 고양에서 서산까지 134km를 달렸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는데 하늘이 구름으로 자욱했다. 경기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자욱한 하늘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경기장 도착 후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한숨을 쉬며 땅에 시선을 보냈다. 바닥이 질퍽하다. 곧 전광판에 알림이 떴다.

"우천으로 인하여 금일 경기가 취소되었습니다."
 
 우천 취소 안내 멘트

우천 취소 안내 멘트 ⓒ 최진호

 
지난 7월 10일 경찰 야구단은 한화와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서산으로 향했다. 서산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려 이날 경기는 취소됐다. 추가 경기 없이 이제 경찰 야구단은 의경 제도 폐지에 따라 오는 8월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월 해단 전, 경찰 야구단 구원 투수 한승지 선수를 만나 그의 야구 얘기를 들어봤다.

해단 전 마지막 경기, 한승지 선수를 만나다
 
 한승지 선수의 모습

한승지 선수의 모습 ⓒ 최진호


"커브와 슬라이드를 주로 쓰며 직구 최대 구속은 149km/h까지 나옵니다. 최근엔 포크볼 또한 연습하고 있죠. 지난 시즌 구원으로 나서 누적 평균자책점이 좋지 않습니다. 올 시즌은 지난해보다 잘 던지고 있지만 퓨처스리그 정식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어 기록이 없네요. 그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1997년 5월 19일 서울 미아동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봤고 직접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4년 이상 늦게 시작했지만 좋아했기에 즐겁게 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깨달았습니다. 야구가 쉽지 않다는 걸. 잘하는 선배들이 프로에 지명되지 못한 채 대학 가는 것에만 절절 매는 상황을 보면서 내 미래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메이저리그보단 1군에 올라가는 것이 꿈입니다."


다음은 한승지 선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불확실한 미래, 많고 많은 스포츠 중 왜 하필 야구였나요?
"그럴 듯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티비를 보다가 야구를 보게 됐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축구 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레알마드리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근데 실제로 제가 잘 할 수 있어 보였던 게 야구였습니다. 축구를 하기엔 발을 심각하게 못썼습니다. 그래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야구선수를 꿈꾸진 않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걸 보면서 야구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넘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야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요?
"야구 시작하고 6개월 만에 쳤던 홈런입니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하고 6개월 정도 만에 처음 홈런을 쳤습니다. 그때는 여러 포지션을 해보면서 자신에게 최적화된 위치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타자도 몇 번 했었어요. 그 홈런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습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이에요. 어쩌면 그 강렬한 기억이 야구를 지금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 마운드에 섰을 때 보통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공을 던지나요?
"있어 보이는 생각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이긴다'는 생각만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래야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전략적으로 봤을 땐 너무 승부욕이 넘치다 보니 예전엔 힘만 가지고 공을 던지려 생각했는데, 이제는 타자의 타이밍을 뺏고 방망이 중심에 맞지 않을 생각으로 공을 던집니다. 그래서 제 생각보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지를 생각합니다."

- 2군에서 바라보는 1군은 좀 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통계상 프로선수들의 1군 진출 확률이 낮은데 희망고문 아닌가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냥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덕업 일치' 자체가 행운이고 제가 잘하고 있으면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희망고문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있겠죠."

끝까지 야구의 꿈 놓지 않은 한승지, 경찰야구단 이후에는...

한승지 선수의 부모님들은 처음부터 운동이란 게 그 자체로도 힘들고 먹고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야구를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다. 끝까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는 한승지 선수. 부모님이 마음을 바꾼 뒤론 옆에서 수행기사 역할을 해주셨다며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 야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팔꿈치가 너무 아팠습니다. 의사가 뼛조각이 발견됐다고 말했어요. 의사는 치료로 재활이 가능하다 말했는데 6개월의 재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팠고 그만둘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방법이었던 수술대에 올랐는데 여전히 너무 아픈 겁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 왜 계속 야구를 했을까요. 저라면 그렇게 힘들었다면 그만뒀을 텐데요.
"'현실'입니다. 제가 학창시절부터 제가 계속해왔던 게 야구입니다. 이거를 놓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붙잡았습니다. 보강운동도 계속하고 집착하듯 야구를 잡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이 현실에 지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었고 아프지만 계속했어요. 이를 악물고 버티다 보니 나중엔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뻔하지만 야구가 잘 될 때입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느끼는 걸 텐데, 운동이 안되면 진짜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화가 날 때가 있죠. 반대로 야구가 잘되면 모든 일이 행복합니다. 결국 야구가 잘 돼야 합니다."

야구선수로서의 목표를 묻자 한승지는 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MLB보다 1군에 가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또 잠깐 반짝하는 것보다 꾸준히 잘 던 지고 싶어요."
 
 한승지 선수

한승지 선수 ⓒ 최진호

  
대한민국 병장 월급 40만 6000원. 금액과 상관없이 그는 야구를 업으로 삼으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이곳에서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시대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경찰청 야구단은 이제 더 이상 필드에서 볼 수 없다. 선수는 1~2년 더 운영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빨리 없애지 않았느냐며 아쉬워했다. 이제 프로에서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 상무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미래를 걱정하던 한승지 선수.

많은 선수들과 달리 그의 꿈은 MLB 진출에 있지 않았다. 야구 자체를 즐기는 것, 그리고 KT로 돌아가 1군으로 올라가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허황된 꿈보다는 명확한 현실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승지 선수.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는 8월 12일 경찰 야구단 전역 후 kt 2군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1군으로 올라가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앞으로 32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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