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센던트>(2012) 스틸컷.

영화 <디센던트>(2012)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종종, 어른스러운 태도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자랑한다. 혹은 물질적으로 풍부한 환경이나 교양 그리고 교육을 통해 어른스러운 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각과는 달리, 어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년 많은 이들이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어른스러운 태도는 어떻게 함양될 수 있을까. 사랑일까, 희생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라면 알렉산더 페인의 <디센던트>를 꺼내볼 만하다.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원작 소설이 있긴 하지만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있기에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영화 <디센던트>는 돈, 명예, 지식, 뜨거움이나 진정성 따위가 어른스러움의 조건이 아님을 관객에게 직관시킨다. 되려 관조, 배려, 차분함과 참을성이 배어있는 자세를 갖춰 미처 준비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을 향해 악수를 건낸다.
 
영화 <디센던트> 속 맷, 아내의 불륜 알았음에도 묵묵히...

<디센던트>는 감독의 전작 <어바웃 슈미트>에서 가장의 꼬장과 허세 가득한 가면을 벗겨낸 버전의 영화다. <디센턴트>에는 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맷이라는 변호사가 있다. <어바웃 슈미트>에는 잭 니콜슨이 연기하는 슈미트라는 은퇴한 보험설계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내를 잃었거나 잃기 직전이며 이 계기를 통해 자식과의 관계를 보듬어 회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영화 개봉 시기 기준으로 9년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더 늦게 개봉했지만 더 젊은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가 더 성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2003>스틸컷.

영화 <어바웃 슈미트>(2003>스틸컷.ⓒ 콜럼비아트라이스타

 
맷의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요트사고를 당했다.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변호사이자 하와이 땅의 신탁관리인이기도 한 맷은 아내 대신 자식들을 돌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작은 딸 스코티는 수없이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 사립학교에 보낸 큰 딸 알렉산드리아는 아내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아내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맷과 알렉산드리아는 아내이자 엄마가 바람을 피웠던 그 작자를 찾아가 장례식 참여를 권유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자베스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의 지난 영화들에 등장했던 남자들과 맷은 다른 부류다. <어바웃 슈미트>와 <사이드 웨이>, <일렉션>에 등장했던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소란스러운 루저'스러웠던 남자들과는 달리 맷은 차분하다. 아내의 위독에 두 손을 입에 모으고 덜덜 떨며 주저앉기보다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알렉산드리아에게 전한다. "엄마는 못 깨어난대. 확실하게. 그러니 보내줘야 해."

그렇다면 그는 냉정한가. 아니다.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은 스코티는 엄마가 단지 '자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사려 깊은가. 아니다. 그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족을 보호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함을 지르며 애원하거나 흐느끼며 호소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관객에게 믿음과 신뢰를 살 수 있는 건 맷의 그런 자세 때문이다.
 
그렇다면 맷은 어른스러운가. 나는 그가 어른스러운 태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어느 한 장면 때문이다. 맷의 장인어른은 영화에 등장하는 매 장면마다 딸의 죽음이 맷의 행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모른다. 단지 맷이 너무 딸을 방치했기 때문에, 새 요트를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넉넉히 돈을 쥐여주며 쇼핑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딸이 저렇게 누워있다고 질책한다. 그리고 맷의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렇게 말한다. "헌신적인 아내였는데 더 잘해줬어야지." 고개를 숙인 맷이 대답한다. "맞아요. 더 잘해줬어야 했어요."
 
<디센던트>는 아내의 불륜에 분노한 남편이 불륜의 대상을 찾아 도끼를 휘두르고 총을 쏘아대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아내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굽히고 아내의 뒤처리를 묵묵히 처리하는 남자, 자신의 슬프고 황량한 감정은 아내와 단 둘이 있을 때에만 조용히 흘리고 마는 남자의 이야기다. 스물 여섯 살의 나는 가까운 미래 비슷한 상황에서 아내의 귀에 주인공 맷처럼 속삭여줄 수 있을까. '안녕 엘리자베스, 안녕 내 사랑, 내 친구, 내 고통, 내 기쁨, 안녕, 안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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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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