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자신이 성장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어떤 때일까. 한 단계 성장한 시기를 자신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목표를 하나 이루었을 때,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선 순간 혹은 단순히 신체에 변화가 있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 조금은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 성장이라는 것이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을 명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성장의 이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상황의 성장이든지 한 걸음 내딛는다는 것은 많은 고통과 인내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나를 지켜주던 부모님이나 내 편이 되어주던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걸음 성장하게 된다. 절망 속에서 한동안 괴로워하면서 남은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그들의 자리를 누군가 대체할 수 있을지 수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 속에서 한동안을 보내는 남은 사람들은 다시 본인의 삶으로 돌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건 남은 사람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벤져스> 이후 개인이 겪는 심리적 위기 담은 <스파이더맨>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지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특히 아이언맨의 죽음 이후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반응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페이즈를 마무리하는 이번 영화가 <어벤져스>의 에필로그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거시적으로 전 우주의 위기 상황에 집중하던 마블 시리즈는 미시적으로 한 인간의 심리적 위기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극 중 피터는 청소년기인 현재 시점에 아버지의 존재가 없다. 과거 벤 삼촌이 있었으나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와 같이 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잊었다기보다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원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지냈을 뿐이다. 그때 피터 앞에 나타난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존재는 피터 파커의 빈자리에 정확히 내려앉았다. 피터에게 열망의 대상이었던 토니의 등장은 피터가 목표로 하고 바라볼 수 있는 우상이 나타난 것과 같았다. 그래서 지난 시리즈에서 피터는 영웅으로 인정받는 토니를 따르고, 자신도 토니와 같이 훌륭한 영웅이 될 것을 다짐한다. 

어쩌면 피터는 늘 그가 가진 아버지의 빈자리가 채워지기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리즈 내내 그는 자신보다 훌륭해 보이는 영웅을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그를 쉽게 믿고 따른다. 특히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솔직한 토니를 바라보며 그 자신도 그런 영웅이 되길 꿈꾼다. 

말하자면 토니는 피터 파커의 꿈이었다. 비록 아직은 피터는 어리고 가족이 재벌도 아니지만, 아이언맨이 공중을 활공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꿈꾼다. 그래서 전작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토니가 준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세상을 구하려 무리한 악당 추적을 감행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무모하고 어리숙한 그를 다시 청소년의 본 궤도로 돌려놓는 건 바로 토니 스타크다. 그렇게 그들은 '유사 부자' 관계가 된다. 

우상 아이언맨의 죽음으로 목표를 잃은 스파이더맨

하지만 토니는 전 우주적 위기 상황에서 세상을 구하고 사라져 버린다. 피터가 롤모델로 삼고 따라가야 할 위치에서 자신을 끌어주던 '유사 아버지' 같은 존재가 다시 한번 그를 떠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동력을 상실한다. 게다가 '블립'(<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핑거스냅'을 설명하는 단어)을 당한 이들, 즉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세상에 복귀한 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게 된다. 

핑거스냅으로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은 몇 년 동안 늙거나 성장했고, 그 사이 세상의 모습도 변해있다. 하지만 '블립'을 경험한 이들은 여전히 과거의 생각과 모습 그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여기엔 피터 파커도 포함된다. 그 역시 돌아온 세상에 적응 중이며, 여기에 자신의 우상인 토니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더 이상 히어로로 활동할 동기를 찾지 못한다.  

아직 어린 나이인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하다. 히어로가 되는 것을 잠시 잊고 멀리 떠나는 것인데, 마침 학교에서 가는 여행에 그가 동행하면서 미국 뉴욕을 떠나 먼 유럽으로 향한다.

다만 떠나는 상황에서도 피터의 머릿속에는 아이언맨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걷는 길 옆 벽보에도, 그가 보는 TV에도 아이언맨의 유산이 가득하다.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아이언맨의 그림을 보지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옆에 없다. 아버지, 벤 삼촌 그리고 아이언맨 토니까지 그가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존재들은 다시 그의 곁을 떠났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장면 ⓒ 소니 픽쳐스

  
그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괴수 엘리멘탈들과 대항하기 위해 나타난 미스테리오는 어떤 면에서 아이언맨과 비슷해 보인다. 그는 피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위로를 해주면서 피터에게 다시 새로운 아버지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희망을 준다. 이번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등장하는 퀜틴(제이크 질렌할, 미스테리오 역)의 활약을 보던 피터는 아주 쉽게 그를 자신의 빈자리로 넣는다. 그가 토니를 따르거나 미스테리오인 퀜틴을 따르는 것은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따르는 것과 같고, 그래서 피터에게는 그 존재가 무척 중요하다. 

피터의 성장기가 그대로 담긴 영화

영화 내내 줄거리에는 피터의 혼란이 그대로 담긴다. 그는 어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주변에 등장하는 온갖 엘리멘탈들은 그에게 일종의 사명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피터의 앞길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피터는 퀜틴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에게 많은 역할을 넘겨주지만 결국 스파이더맨으로서 피터의 앞길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그 과제와 해결방법을 알게 해주는 존재는 역시 퀜틴이다. 그의 방법이 옳든 그르든 결국 피터를 성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성장을 극 중 피터 자신도 느낀다. 영화는 정확히 피터가 성장하여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콕 짚어 보여주고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전작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비해서 스파이더맨의 활공 액션이 더 담겨있다. 전작이 높은 빌딩이 있는 도심지가 아닌 평평한 마을이나 하늘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많았다면, 이번엔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좀 더 스파이더맨다운 액션이 빠르게 펼쳐진다. 그래서 기존 스파이더맨의 팬들을 좀 더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쿠키에서 퀜틴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앞으로 마블 유니버스가 나아갈 방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건 피터가 해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보게 될 상황을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궁금증은 다음 페이즈에 이어질 마블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그래서 더욱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어벤져스>의 에필로그인 것이 분명해진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포스터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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