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다큐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DMZ다큐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클레어함

 
지난해 11월 전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IDFA영화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생존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명"으로 칭송받으며 회고전을 했던 체코의 헬레나 감독이 오는 9월 한국을 찾는다.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Helena Třeštíková) 감독은 주인공의 삶을 긴 세월에 거쳐 담아내는 타임랩스 (time-lapse) 스타일로 잘 알려진 인물로 9월 20일 개막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미니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헬레나 감독은 1974년 아이의 출산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기적 The Miracle>로 데뷔한 이래, 동시에 최대 15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현재 그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50여편이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35년간 한 커플의 결혼생활을 기록한 <결혼 이야기 A Marriage Story>(2017), 체코의 역사적 격동기를 배경으로 자유상태와 감옥생활을 오가는 르네를 20년간 화면에 담은 <르네 René>(2008), 마약중독 재활원에서 나온 19세 소녀 카트카가 희망찬 미래와 마약의 세계에서 혼란을 겪었던 14년을 기록한 <카트카 Katka>(2009) 등 다수가 있다. 이 중, 영화 <르네>및 <카트카>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어 한국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르네씨는 현재 작가로 활동중이며, 헬레나 감독은 내년에 르네 후속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장 시간 동안 촬영한 작품으로는 37년에 걸친 한 체코 가족의 대서사시, <그들만의 세상 Private Universe>(2012년)이 있다. 이 작품 속 주인공 남성 혼자(Honza)가 태어나는 장면은 1974년 <기적>이란 작품의 카메라에 담기기도 했다. <그들만의 세상>은 심오하고 인간미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2012년 EBS국제다큐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대상을 차지했다. 헬레나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체코의 평범한 서민들과 아울러 아웃사이더의 삶을 진솔하게 담고 있으며, 이들의 삶에 애정어린 따뜻한 시선을 지닌 감독의 감성이 잘 느껴진다.  

"우리의 삶 자체가 세상의 어느 작가보다 더 훌륭한 스토리를 쓴다"고 믿으며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 영화로 만들어온 헬레나 감독은 자신을 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에 영향을 받은 "60년대의 아이 (Child of the '60s)"라고 소개한다.

"밀로스 포만, 어렸을 적부터 우러러 본 감독"

헬레나 감독은 작년에 타계한 체코의 대표적인 감독, 밀로스 포르만의 일대기를 그린 신작 < Forman vs. Forman 포만 vs. 포만 >(공동연출 야콥 헤이나 감독)을 54회 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체코의 거장 다큐멘터리 감독이 만든 체코의 거장 극영화 감독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2일 헬레나 감독과 만나 신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포만 vs 포만>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체코 티비와 아르떼(ARTE)에서 내게 제작 제의를 해왔다. 물론 이 영화는 내가 평소에 만드는 타임랩스 스타일이 아니고, 아카이브 영상을 모아 편집한 영화다. 이전에 내 영화의 편집을 맡았던 야쿱 헤이나(Jakub Hejna)와 함께 공동 연출하게 되었다. 우리는 백곳이 넘는 곳에서 영상을 찾아냈는데 그 분량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포맷도 다 제각기여서 편집작업이 쉽지 않았다. 또한, 다른 시대의 영상 가운데, 최고를 골라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해내는 작업은 정말 도전적인 모험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존경하는 인물에 관해 편집실에서 했던 친밀한 작업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밀로스 포만 감독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러러 본 감독으로, 오랫동안 그를 관찰해온 나는 그가 체코와 미국에서 만든 영화를 사랑한다. 그의 삶과 작품들, 그에 관한 영화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내게 축복이었다." 
 
- 밀로스 포만 감독은 감독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한마디로, 밀로스 포만 감독은 내겐 영웅이다. 아마 다른 체코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특별히, 내겐 그는 은사같은 존재다. 내가 연출한 모든 영화들을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맘에 든다고 직접 답신도 해주셔서 무척 기뻤다."
     
- 영화 제목을 '밀로스 포만'이라고 하지 않고, <포만 vs. 포만>으로 정한 이유는.
"체코인 포만과 미국인 포만, 아웃사이더 포만과 성공한 포만, 아버지 포만과 영화감독 포만 등, 그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색깔과 성격,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초반에 포만 감독은 자신에 대해 분석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80분가량의 영화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웃음)"

항상 '아웃사이더'였던 밀로스 포만 감독
 
 DMZ다큐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편집실에서 작업중인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과 야콥 헤이나 감독ⓒ Negativ


- 이 영화는 밀로스 포만 감독에 관한 다큐영화인데 체코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도 든다. 포만 감독이 2차 세계대전을 비롯, '프라하의 봄',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와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가져온 '벨벳혁명' 등  체코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변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체코 티비와 아르떼 방송국의 공동제작인지라 처음부터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체코를 포함한 유럽의 역사는 포만 감독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의 욕망을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포만 감독이 전쟁고아가 된 사실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 자신도 나는 '아웃사이더'라고 말했듯이, 이는 그를 특정짓는 주요한 정체성이자 위치다.

그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과 자유,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또 미국에 이주한 뒤에도 이 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질적인 문화에 놓여진 가난한 예술가로 다시금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로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하게 된다."
 
- 포만 감독이 체코를 떠나지 않았다면 다른 성격의 영화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아마 그럴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포만 감독은 미국에 거주할 당시, 자신의 체코 태생과 양육-교육방식으로 인해 체코에서 과거 만들었던 영화를 반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코에 머물렀다면 아마 그의 영화 세계는 달라졌을 것이다. 포만 감독은 체코에서의 삶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잘 혼합하며 영화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 영화 속 화자는 항상 밀로스 포만 감독 일인칭이다. 감독의 가족이나 지인, 영화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넣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우리는 그의 관점과 위치에서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전에 전 부인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전체 영화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주인공 포만 감독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려고 했다. 다행히 그의 아들이 포만 감독과 비슷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서 일부 장면에서 보이스오버를 해줬는데 대부분의 외국 관객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하다.
 
- 헬레나 감독도 영화계에서 훌륭한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엇이 훌륭한 감독을 구성하는 자격요건이라고 여기나? 재능, 열정, 끈기 또는 정직함? 
"다 중요하다. 나의 주요한 관심사는 체코공화국에 사는 평범한 이들의 삶이다. 그 계기를 설명하자면... 내가 영화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 체코는 완전히 폐쇄된 사회였고 우리는 외국으로의 여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외부적 요인으로, 나는 이 작은 체코 땅덩어리의 적은 인구가 겪는 평범한 삶의 문제들, 사소한 일들을 영화의 소재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다른 나라와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체코인의 사고방식이나 심리 상태는 이해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내 영화의 소재는 국내에서 얻는다. 예를 들어, 중동지역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시리아에서 영화를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밀로스 포만 감독도 비슷한 경우 같다. 그는 자신의 체코 뿌리로 인해,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예술가의 태생과 문화는 영화작업에 중요한 결정요소다. 앞으로도 내 영화작업의 소재와 방식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체코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여행이 허용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같은 느낌인 건가.
"내 타임랩스 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대략 10년 전부터 영화제 참석을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엔 과연 외국 관객들이 내 체코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 매번 그들에게 내 영화가 이해되는지 묻곤했다. 다양한 외국 관객들이 지역성이 강한 내 영화에 공감하는 것을 목격하고 무척 기뻤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감독과의 대화시간(Q&A)에 관객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영화 속 내용과) 유사한 문제들을 내게 공유하기도 했다.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다."
 
- 밀로스 포만 감독에 대해 (한 시간 분량의 영화가 아니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카리스마적인 강한 남성으로, 영화에 대한 독특한 비전이 있는 감독.' 전쟁 고아였던 그는 인생의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내며 '아웃사이더'에서 '킹'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난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에 영향을 받은 60년대의 아이"
 
 DMZ다큐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DMZ다큐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 클레어함

 
- 밀로스 포만 감독이외에도, 감독님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나 시네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한마디로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에 영향을 받은 '60년대의 아이'다. 이 뉴웨이브가 시작될 무렵 나는 12살의 소녀였다. 이리 멘젤 (Jiri Menzel), 파벨 유라첵 (Pavel Juracek), 베라 히틸로바 (Vera Chytilova), 밀로스 포만 감독 등이 이끄는 이 뉴웨브 영화들에 큰 영향을 받았고,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기도 하는 열정적인 팬이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감독으로는 베라 히틸로바(Vera Chytilova)라는 여성 감독이 있다. 이때의 영향으로 감독이 되고자 결심했던 것 같고, 내 연령층인 영화인들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는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영화들에 대한 저항운동이었고, 우리는 당시 우리가 처했던 현실과 아울러, 그 시대를 살아가던 현실적인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 예로, 이탈리아에서는 '백색전화 영화 (White Telephone Films (Telefoni Bianchi)'라고 불린 부르주아의 멜로드라마와 코미디가 1930~40년대 영화계를 장악했다. 이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비싼 흰 전화가 화면에 자주 등장해 붙여진 명칭으로 (헝가리 작가의 극본을 각색한 경우가 많아 '헝가리 스타일 코미디로도 불린다) 혼인 및 가족같은 관습의 중요성, 계급의 위계성과 국가기관의 권위 존중 등 당시 보수적 파시스트정권의 이념을 선전했다. 무솔리니의 아들이 시작했다고 알려졌는데, 스토리가 재미없고 영화적 가치도 없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 감독들이 이전의 이상화된 '백색전화 영화' 스타일을 거부하고, 스튜디오 촬영에서 벗어나 현지촬영과 (비전문배우를 활용하며) 현실의 고뇌를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물론, 프랑스 뉴벨바그의 작가주의 감독들도 영향력있는 작품 활동을 했고, 영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다.
 
아울러, 당시 기술적인 발전도 중요한 요소다. 일상을 관찰하기 위해 소형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스튜디오 카메라나 인공조명이 불필요해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 과거에 문화부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사실이다.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정치계의 부패를 깨닫곤 일찌감치 사임했다."

밀로스 포만 감독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인물이다. 당시 사회주의 체제의 체코 사회에선 개인적 자유 및 예술적 표현의 제약으로 영화 작업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로스 포만 감독은 <블랙 피터> (1964), <금발 소녀의 사랑> (1965), <소방수의 무도회> (1967) 등 작품활동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포만 감독은 1968년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옮겨온 후 할리우드에 진입해 영화 작업을 이어가려 했지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아마데우스>(1984)로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큰 영예를 얻기까지 몇 년간 월세도 못낼 정도의 극도의 가난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무의미한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 영화 <포만 vs 포만>에서 "영화는 교육의 직접적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와 삶에 대한 그의 열정과 강인한 의지를 아는 전세계의 시네필에게 그는 아름다운 영감을 전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직 그를 모르는 이들에겐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의 야심작, <포만 vs. 포만>을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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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함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칼럼니스트및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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