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포스터

▲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포스터ⓒ MSFF


<곡성>의 나홍진,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늑대소년>의 조성화,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의 공통점은? 모두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배출한 연출자다.
 
한국 최고의 단편영화제로 이현승 감독을 중심으로 김성수·김지운·류승완·박찬욱·허진호 등 기라성 같은 명감독이 뜻을 모아 설립한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지금껏 10여명의 입봉 감독을 배출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영화계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특별한 개봉작으로 영화팬의 관심을 모았다. 개봉작은 두 편의 단편으로, 김기영의 <나는 트럭이다>와 하길종의 <병사의 제전>을 연달아 상영한 것이다.
 
한국영화 100주년(1919년 연쇄극 <의리적 구토> 일부 장면에 영화를 삽입한 걸 기원으로 침)을 맞아 영화사에 의미 있는 선배세대 감독 김기영과 하길종의 단편 상영을 기획한 것으로 풀이된다. 쉽게 보기 힘든 귀한 자료를 봉준호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온 해에 다시 보니 그 의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영화제 측에서 두 편의 단편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데는 상당한 고심이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부흥이 있기 전까지는 이름을 언급할 감독이라고 해봐야 채 10명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상영할 만한 단편을 구할 수 있는 감독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게 분명했을 테다.

그런 가운데 찾아낸 김기영과 하길종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됐다. 조악하거나 난해한 작품성에도 안에 담긴 의미를 끌어낸 영화제 덕분이다. 작품은 창작자를 떠나 수용자에게 와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영화사의 드문 기둥, 김기영과 하길종
 
나는 트럭이다 영화 한 장면

▲ 나는 트럭이다영화 한 장면ⓒ 김기영

  
사실 김기영과 하길종은 한국영화사에서 특별한 감독이다. 근래의 소위 잘 나가는 영화인이 존경하는 감독을 이야기할 때 1990년대 이전에 활동한 감독을 좀처럼 말하지 않는 건 실제로 영향을 받은 한국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인 대부분이 할리우드 키드로 분류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미국영화에 정서적 기원을 두고 있다는 건 너무나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남은 일부도 한국이 아닌 홍콩과 일본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도 될 테고 말이다.
 
실제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석한 감독 가운데 일부는 뒤풀이 자리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게 수준 낮은 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 한국영화인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1990년대 이전 한국영화를 찾아본 적 있는 영화마니아라면 공감할 말이다.
 
김기영과 하길종이 특별한 건 더없이 후진 작품만 쏟아지던 시대에 그나마 독창적이고 세련된 영화를 찍어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대 할리우드와 일본 등에 비해 크게 후퇴한 수준이었고 일부 표절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트럭이다>는 김기영 감독의 1953년작이다. 김기영 감독이 한국영화가 태동한 1919년생이니, 30대 중반의 나이로 카메라 하나 들고 찍어 편집한 작품이 되겠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놓고 떠난 물자, 그 중에서도 군용트럭을 재생하는 과정을 담아낸 선전물로 보면 적당하겠다.
 
트럭의 시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등에선 1950년대 국방부 홍보영상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참신함이 엿보인다. 물론 21세기 감성으로 본다면 틀에 박힌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코폴라 1년 후배, 주목받던 감독의 괴작
 
병사의 제전 영화 한 장면

▲ 병사의 제전영화 한 장면ⓒ 하길종


<나는 트럭이다>가 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작품이라면, <병사의 제전>은 난해하기가 극한에 이른 영화로 한 번 보고는 표면 아래 자리한 연출자의 뜻을 짐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작품이다. 1969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이 20대 후반의 패기로 밀어붙인 작품임이 그대로 엿보인다.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 영화학과에 입학한 하길종 감독은 졸업작품인 <병사의 제전>으로 MGM 등 내로라하는 유력 영화사에 제 존재를 알렸다. 1968년 혁명 이후 서구 영화학도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풍겨나는 이 영화는 동문이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당시 삽입된 음향이 전해지지 않아 현재는 영상만 볼 수 있는 상태지만, 한국 영화사에 나름의 위치를 확고히 한 하길종 감독의 졸업작품이란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김기영과 하길종의 단편을 개막작으로 선정해 상영한 올해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한국영화사 100년을 맞아 다른 어느 영화제에서도 보지 못한 의미 깊은 시도를 했다. 아마도 이번 영화제 해당 회차를 찾은 모든 이가 이들 영화를, 그리고 김기영과 하길종 감독을 처음으로 만났을 것이다. 한국영화사에 얼마 되지 않는 선배들의 영화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말로만 듣던 무엇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깊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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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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