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13년의 공백> 메인포스터 영화 <13년의 공백> 메인포스터

▲ 영화 <13년의 공백> 메인포스터영화 <13년의 공백> 메인포스터ⓒ 디오시네마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정확히 하나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사람은 그런 모습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이 사람은 이런 모습이 있어서 항상 가까이 두고 싶고요. 물론, 실제로는 그럴 수가 없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밀도 높게 엉키어 있는 것이어서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지요. 한 발짝 더 나아가 두 사람이 감정이 뒤섞이는 '관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배우자와 같이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기억을 나누는 이들과의 사이에서는 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똬리를 틀게 되겠지요. '애증'이라는 단어도 그렇게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 감정의 근원이 되는 대상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거나, 완전한 이별을 맞이하기 전에 어느 정도의 해결을 이루어냈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우리 주변에는 분명히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분명히 어떤 '화해'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질 수밖에 없는 잔여 감정의 회색빛까지 모두 씻어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그런 표현이 실제와 닮아 있어서 더욱 마음에 깊게 스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온 사이토 타쿠미가 처음으로 연출에 뛰어든 영화 <13년의 공백>은 앞서 표현했던 '회색빛의 감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타이틀에서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13년의 공백은 남겨진 가족과 그런 가족을 떠나 소식 한 번 없었던 아버지 사이의 거리를 의미합니다. 다만 타쿠미 감독은 이 관계를 어설프게 화해시킨다거나 봉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공백의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올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냅니다. 그것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거나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지, 발생한 이후에 어떻게 응집하고 흩어지는지를 따라갈 뿐입니다.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디오시네마


02.
영화 <13년의 공백>은 형식상 크게 2부로 나뉩니다. 먼저, 한 가족의 가장이자 요시유키(사이토 타쿠미 분)와 코지(타카하시 잇세이 분) 형제의 아버지였던 마츠다 마사토(릴리 프랭키 분)가 어느 날 밤 가정을 떠난 뒤에 남겨진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1부에 설명됩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버텨야 했던 삶과 그런 삶을 지켜보며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미움과 증오를 만들어가는 두 아들. 몸을 아끼지 않던 엄마가 쓰러지던 날, 그 빈자리를 대신하던 요시유키가 왜 자신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소리치는 모습이 1부의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하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으로 제시됩니다. 앞선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장례식장의 분위기와도 다소 어울리지 않는 밝은 내용들인데요. 이는 1부에서 계속되어 왔던 무거운 분위기를 급격히 전복시킴과 동시에 13년의 공백 사이에서 가족들이 알 수 없었던 마사토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화의 엔딩부. 이 지점에서 요동치는 둘째 아들 잇세이의 복잡한 감정을 극도로 고조시키기 위한 포석이 되기도 하죠.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면, 1부와 2부 사이, 그러니까 총 71분으로 마크되어 있는 이 영화의 총 러닝타임의 중반부 지점에서 이 영화의 타이틀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기존이 형식을 파괴한 연출이라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더욱 의아한 건 타이밍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이미 아버지 마사토의 죽음은 확정된 바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과거와 현재의 공백, 13년의 거리감을 주기 위해 이런 형식을 구현할 수 있겠구나. 하고는 예상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두 구간이 명확히 분절되어 있는 목적은 '시선의 전환'에 더욱 가까운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미 언급했던 남겨진 가족과 떠나버린 아버지, 두 지점 사이의 전환입니다. 물론, 2부로 들어와 시점이 전환된다고 해서 1부에서 들여다보던 가족들의 이야기와 감정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몽글거리는 크림 위에 또 하나의 크림을 얹듯 이야기 위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얹는 느낌이죠. 하나로 통합되지는 않지만, 맞닿아 있기에 그 간극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03.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 마사토가 떠난 뒤에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회상'을 통해 전개됩니다. 특히 1부에서 그렇습니다. 코지의 회상을 통해서는 어린 시절 그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가 사라진 뒤에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여야 했던 때의 모습은 아내인 요코(칸노 미스즈 분)의 기억을 통해 그려집니다. 물론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야구공을 던지며 행복해하던 기억도 코지는 잊어버리지 않았죠. 그 기억을 꽤 오랫동안 그런 아버지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 일에 소비해버리고 말았다는 일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러니까 13년의 공백 이전에 형성된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가족들의 기억을 통해 퍼즐 조각을 맞추듯 주조되고 있는 것은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불분명하고 당시에 형성된 감정의 방향에 따라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형체를 바꿔가기 마련이니까요. 미워하는 마음은 행복한 기억조차 부정적으로 전락시키고, 좋아하는 마음은 약간의 흠집도 긍정적으로 미화시킵니다. 기억을 통해 되살아나는 가족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모습은 이 영화의 첫 장면과 결을 함께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 바로 옆에서 장례를 치르는 또 다른 '마츠다'라는 인물을 찾아온 - 그는 '마츠다 마사토'가 아니라 '마츠다 소타로'라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 조문객들이 착각하고 '마츠다 마사토'의 장례식장으로 찾아오는 장면입니다.

아버지의 조문객인 줄 알았던 이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향하자, 두 아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조문객으로 넘쳐나는 옆 장례식장을 보며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 같더라' 하는 대화를 나눕니다. 지난 아버지의 13년이 어떤 삶이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 다시, 그들의 추억을 통해 '아버지라는 사람이 떠난 뒤 책임져야 했던 빈자리가 도무지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점차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디오시네마


04.
그런 아버지의 연락이 13년 만에 가족들에게 전해진 것은 이 영화에서 유일한 사건입니다. 다만, 하나만으로도 극의 흐름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그 크기는 어마어마하죠. 게다가 앞으로 살날이 세 달밖에 남지 않은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입니다.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은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갖고 그를 찾지 않기로 합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던 코지만이 그를 찾습니다. 초췌한 모습으로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13년 만에 만나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요.

적어도 영화에서 표현되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지만이 아버지의 병문안을 다녀가게 되는데요. 이 설정에는 동양 문화권의 분위기가 깊게 녹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건 둘째인 코지가 아닌 첫째 요시유키였습니다.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죠. 후에 코지와 마사토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요시유키가 아버지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대사가 명시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형제 모두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랐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첫째와 둘째가 느낀 책임감의 무게는 분명히 달랐을 겁니다. 이 부분은 두 사람이 아직 어린 시절이었을 때, 엄마가 교통사고와 과로로 입원하고 난 후 누가 누구를 돌보아야 했는지만 봐도 명확히 알 수가 있죠. 과거의 마사토가 과연 코지만을 데리고 야구장엘 갔을까요? 이 영화가 중심에 놓고 있는 인물이 둘째인 코지인 이유는 요시유키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어서가 아닙니다. 엄마와 형의 보호 아래 코지가 상대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낮은 적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사이에 놓이게 되는 인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05.

영화의 2부가 시작되면서 마사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지난 13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입니다. 경마장에서 만난 친구, 이단 종교를 통해 알게 된 사람, 마작을 함께 즐기던 친구, 자주 가던 술집 아르바이트생, 파친코 동료까지 말입니다. 심지어는 그 옛날 아버지의 빚을 받기 위해 밤마다 집으로 찾아오던 채권자들까지. 그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마사토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자신들이 알 수 없었던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그릴 수가 있게 되죠.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겨진 가족들이 아버지를 그려나가던 방식인 '회상'과 달리 이들은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마사토를 설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대과거(과거의 과거)와 가까운 과거를 구분하기 위한 형태적 차이가 아닙니다. 1부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2부가 함의하고 있는 분위기의 극적 대비에 조금 더 가까운데요. 이 영화가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지점에서의 '대비'에 주목한다면, 그 의미는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1부의 분위기와 블랙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즐겁고 흥겨운 2부의 분위기는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마사토라는 인물의 정체성과 그를 바라보는 형제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을 발화를 통해 꺼내 놓는 방식이나 기억이나 회상을 장면으로 전환해 보여주는 것이나 형식적 차이를 제외하면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결국 개인의 기억이 가질 수 있는 속성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는 못하니까요. 이 영화 <13년의 공백>에서는 오히려, 한 개인에 대한 어떤 시점의 공통적인 심상이 어떤 것인지를 따라가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입니다. 가족의 기억에도, 조문객의 이야기에도, 그곳에 거짓이 끼어들 틈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죽음 이후에야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13년의 공백 속,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는 형제의 모습은 곧 두 이질적인 기억이 포개어지는 순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 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영화 <13년의 공백> 스틸컷ⓒ 디오시네마


06.
전면에 내세워지지는 않지만, 가족의 이야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죠. 영화가 2부로 접어들고 조문객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또 다른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끌어 갑니다. 아무래도 장례식장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아들들의 예상과는 달리, 상복까지 갖춰 입고 집을 나서죠. 지난 수많은 기억들이 그녀를 덮쳐옵니다. 남편의 역할까지 도맡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던 자리도 분명히 있었죠. 남편이 떠난 뒤에도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려던 코지와의 추억이 대표적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편의 장례식장까지 가지는 못합니다. 대신 아무도 없는 집으로 홀로 돌아와 담배를 꺼내 들죠. 마사토가 생전에 담배를 많이도 피웠습니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그녀만의 의식이라 하겠습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를 떠나보낸다는 의미보다는 그녀가 그에 대한 감정을 놓아주는 의식에 더 가까울 겁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그 대상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막연한 원망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조차 없으니까요. 아직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남 요시유키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07.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마사토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포지션은 더욱 확실해집니다. 그리고 역시,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코지의 대사에는 이 글의 처음에서 말했던 어느 대상에 대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마술을 꾸준하게 연습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조금은 좋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껏 연락 한 번 없었던,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마음입니다.

다시 영화의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영화 <13년의 공백>은 '화장(火葬)' 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됩니다. 인간은 고인을 화장하는 유일한 존재임과 동시에 일본에서는 99% 이상이 화장 제도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다고 설명하죠. 영화가 끝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인간이 유일하게 하는 것은 '화장(火葬)'이 아니라 '장(葬)'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형식을 갖춰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그를 추억하고 기리는 일과 같은 것 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일단 한 번 묶이고 나면, 그 사이에 어떤 공백이 남겨졌든, 어떤 상처와 아픔이 새겨졌든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말이죠. 여전히 아무것도 매듭지으려 하지 않는 고인에 대한 원망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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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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