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 SBS

 
누구를 위한 생존이며 무엇을 위한 생존일까? SBS <정글의 법칙>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도전정신이 강한 족장 김병만에겐 새로운 경험일 테고, 인지도를 높이고 싶거나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은 연예인들에게는 좋은 무대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방송에서 '왜 저런 곳까지 가서 자연을 훼손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물론 그 자연의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관광 자원을 홍보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하고 있으니 누굴 탓하기도 애매하다. 

<정글의 법칙>은 '병만족의 정글 생존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김병만을 위시한 여러 방송인들이 세계의 여러 오지로 떠나서 일정기간 머무르고 돌아온다. 오지는 단지 정글에 국한되지 않고, 사막, 섬, 숲, 동굴 등으로 확장된다. 병만족은 그 과정에서 현지의 먹거리를 채집(또는 사냥)하고, 다양한 생존 방식을 뽐내게 된다.

관광이 된 생존
 
물론 많은 시청자들이 <정글의 법칙>이 보이는 '생존'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리얼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것이 날것일 거라는 환상(혹은 기대)은 이미 오래전 깨졌다. 과거 진정성 논란이 여러 차례 불거졌고, 오지 문명 체험은 관광 상품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또, 안전 불감증 등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연 훼손에 대한 지적이다. '정글 훼손의 법칙'이라는 조롱을 가벼이 넘겨서는 곤란하다.

지난 6월 29일 방송된 <정글의 법칙>에는 태국 남부 꺼묵섬에서의 병만족 생존기가 그려졌다. 방송 말미 멤버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 사냥에 나섰고, 배우 이열음은 바닷속에서 대왕조개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제작진은 자막으로 대왕조개 3마리를 획득했다고 전했고, 예고편에서 멤버들이 대왕조개를 함께 시식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었다. 평소와 비슷한 편집과 예고였다. 

그러나 이번엔 문제가 발생했다. 병만족이 먹어치운 그 대왕조개가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개로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이란 것이다. 평균 수명 100년 이상인 대왕조개가 병만족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국 농림부는 해당 대왕조개를 희귀 동물 또는 멸종 위기에 놓인 수생 동물로 지정해 두었다. 만약 불법으로 채취하게 되면 2만 바트(한화 약 76만원)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논란이 됐음에도 SBS 측은 "<정글의 법칙> 팀은 현지 공기관(필름보드, 국립공원)의 허가 하에 그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촬영했다"면서 "촬영 때마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동행했고, 불법적인 부분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SBS 측의 해명은 안일한 것이었다. 물론 <정글의 법칙>이 현지 코디네이터로 고용한 태국 업체를 통해 국립공원과 야생동식물 보호국에 촬영 허가를 받은 건 사실이다. 

사과 후 또 사과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 SBS

 
그러나 핫차오마이 국립공원 나롱 대표는 "<정글의 법칙> 제작진은 대왕조개 사냥 장면을 촬영할 때 국립공원 관계자들에게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촬영할 때마다 관계자들에게 알려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 업체 관계자들은 대왕조개를 채취해선 안 된다는 규정과 법률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법을 저지른 것이라 밝혔다. <정글의 법칙> 제작진 측에도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정글의 법칙> 제작진은 5일 태국 대왕조개 채취와 관련 현지 규정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촬영한 점에 깊이 사과드리며, 향후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제작하겠다"며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태국의 핫차오마이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정글의 법칙> 제작진에 대해 경찰 수사를 요청한 상태이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선, 논란이 벌어진 이후의 대처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류의 문제 제기가 한두 번도 아닐 텐데, 더 신중하게 입장표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난 뒤에 해명했더라면 우스꽝스럽게 뒤늦은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촬영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오로지 방송에 내보낼 '그림'에만 치중하다 보면 이런 사고를 치게 마련이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이런 방송을 계속해야 하냐는 의문 말이다.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족의 입장에선 '생존'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선 명백히 '훼손'에 가깝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 자체가 반 자연적이라지만, 굳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잘 보존된 해외 곳곳을 누비며 인간의 때를 묻힐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생존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진지하게 프로의 존폐를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정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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