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방도령>의 한 장면.

영화 <기방도령>의 한 장면.ⓒ CJ ENM

 
20년 넘게 연극 무대를 비롯해 매체 연기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온 최귀화의 최근 모습은 '코믹함'이다. 680만 관객이 든 흥행작 <범죄도시>(2017)에서 허술한 형사로 전조를 보였던 그가 <기방도령>에서 제대로 자신의 판을 열었다. B급 사극 코미디를 표방한 <기방도령>에서 그는 뿌리도 근본도 없는 걸인 육갑 역을 맡아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정절을 강요받던 여성이 기방을 찾아다니며 몰래 유흥을 즐겼다'는 상상을 더한 작품이다. 육갑은 기방에서 나고 자란 허색(이준호)을 만나게 되며 색의 진정한 사랑 찾기와 기울어 가는 기방 살림을 살리는 데 일조한다. 

사극의 탈을 쓰고 있지만 영화는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언어유희를 반영한 'B급 코미디물'에 가깝다. <위대한 유산>의 남대중 감독이 작심하고 선보인 차기작으로 최귀화는 "발상과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육갑의 진짜 정체는..."
 
 배우 최귀화.

배우 최귀화.ⓒ CJ ENM

 
2017년 한 예능에서 '악역 전문 배우'로 소개될 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해왔지만 틈틈이 그는 코미디 연기도 보여 왔다. "제 입장에선 오히려 코미디를 너무 많이 한 게 아닌가 걱정이 있었다"며 "저라는 배우가 악역도, 코미디도 할 수 있다고 봐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코미디 연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우리나라에선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로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다. 지금 당장은 웃고 즐길 수 있지만 나중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영화는 감독님의 아버지께서 제가 출연한 KBS 2TV 드라마 <황금빛 인생>을 보시고 절 추천하셨다더라. 아마 제 이름 아직도 모르실 거다(웃음). '그 드라마에서 빵집 사장한 친구 연기 잘하더라'며 절 지목했다고 들었다."

재밌는 캐스팅 일화지만 한번 작품에 참여한 이상 그는 허투루 하지 않는다. 종종 촬영장에서 꺼내는 애드리브도 미리 철저히 준비해서 협의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다. <기방도령>에서 육갑은 우연히 등장해 허색과 콤비를 이루는데 연기자 입장에선 어떤 맥락이 필요했다. '고려 왕족 후손', '도를 닦는 척하며 돈을 뜯는 걸인'이라는 설정은 그가 직접 만들어 온 캐릭터의 배경이었다. 

"시나리오가 구체적으로 잘 쓰여 있긴 했지만 제 경험을 꺼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기에 그냥 저로서 육갑을 표현해보자 생각했다. '최귀화 자체가 그냥 육갑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 평상시 제가 가벼운 모습 보일 때처럼 하자, 연기하려고 노력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몰락한 고려 왕족이란 설정은 영화에선 필요 없는 설정인데 제가 연기하기 위해선 필요한 전사였다. 극에서 시덥잖은 웃음을 주는 캐릭터치곤 너무 많이 나오잖아(웃음). 허색은 화려한 외형이지만 신분은 낮은 예인이고, 전 왕족인데 몰락한 사람이다. 그런 역설에서 오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리운 연극 무대
 
 배우 최귀화.

영화 <기방도령>으로 배우 최귀화는 코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CJ ENM

 
'웃겨도 맥락이 있어야 한다.' 코믹한 캐릭터를 맡을 때 최귀화가 생각하는 연기관이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과 많은 얘길 했는데 제가 꺼내면 감독님이 보태거나, 그 반대거나 했다"며 그는 "코미디 영화 현장에서 여러 치열한 의견교환이 있다고 하지만 우린 긍정적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키워주는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자신의 연기보다 최귀화는 <기방도령>이 묘사한 여성 캐릭터를 강조했다. "기방에서 일하는 남자 기생이 주인공이지만 여기서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적으로 등장한다"며 그는 "감독님이 여성 캐릭터에 힘을 실어주려 했다. 저도 같은 배우지만 요즘 영화들이 너무 남성 위주 캐릭터로 가는 게 건강한 상황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귀화도 어쩌면 개성파 남성 배우의 대거 활용 분위기에 어느 정도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말모이> <롱 리브 더 킹> <기방도령> 등 올해만 공개된 작품이 세 편이다. 물론 배급 상황에 따라 개봉 시기가 천차만별인 요즘이라 영화가 몰려서 개봉하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여성 배우에 비해 남성 배우들이 폭넓게 활용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7년 데뷔 후 최근에야 영화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그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역시 일련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2, 3년 전까진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실제로 많이 출연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줄이고 있다. 큰 역할은 사실 올해 두 작품 정도밖에 안 된다. 이게 참 어렵다. 관객분들은 제가 잠깐 나와도 출연했다고 인식을 하니 (차별성을 두기엔) 좀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선 임팩트도 없는 역할을 왜 하냐는 말도 하는데 제겐 작품도 중요하지만 인연도 중요하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좀 떴다고 무게 잡는다는 오해도 적잖이 받을 수 있기에."
 
 배우 최귀화.

"무대 연기에서 매체 연기로 넘어오면서 잊고 있던 동료애,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어떤 배우로 제가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하는 때다. 그래서 연극 무대가 항상 그립다."ⓒ CJ ENM

 
사실 최근 그는 고민이 많다. tvN 드라마 <미생>(2014)으로 대중에게 본격 알려지기 시작했던 그는 과거 연극 무대를 전전하며 무명으로 지내던 때를 돌아본다고 한다. "제 과거에 비춰보면 절 찾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하면 할수록 더 잘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며 그는 "어떨 땐 (고민하다가) 날을 새고 현장에 나갈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대 연기에서 매체 연기로 넘어오면서 잊고 있던 동료애,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어떤 배우로 제가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하는 때다. 그래서 연극 무대가 항상 그립다. 제겐 엄청난 자양분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연극 무대에 설 계획이 있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대학로에 언젠가는 다시 설 것이다. 제가 성격이 의지하는 걸 싫어해서 매체 연기하면서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없다시피 했는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기방도령> 끝나고는 단체 톡방도 만들고, 촬영 땐 커피차도 보내고 그랬다."

고3 무렵 우연히 단원을 모집한다는 극단 포스터를 보고 홀린 듯 오디션을 본 뒤 지금까지 배우 일을 하고 있는 그다. "말도 없고 꿈도 없던 삶이 무료했기에 스스로 찾아간 것 같다"며 그가 자신의 과거 일부를 살짝 전했다. 첫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고 망친 뒤 자괴감에 빠졌던 날들, 코믹 연극으로 지방 공연을 갔을 때 미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들. "내가 대채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몇 개월 간 집에만 처박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순간을 지나면서도 그는 배우였고, 지금까지도 배우다. 공연하느라 큰아들의 돌잔치도 참석 못했던 그의 큰 소망 중 하나는 아들과 함께 자신의 출연작을 극장에서 보는 것. 다행히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은 <기방도령>이 그 소원을 풀 첫 작품이 됐다. 

"<택시운전사>에선 정말 나쁜 사복 경찰이었는데 댓글에서 정말 심한 욕이 있더라. 사실 기분 좋았다(웃음). <기방도령>에서도 '최귀화 웃겼다'라는 반응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솔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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