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트위터를 통해 "나는 독수리가 되고 싶으니 오늘부터 '트랜스 독수리'가 되겠다"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최근 SNS를 통해 '트랜스OOO' 등의 표현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는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고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물이나 동물의 이름의 앞에 '트랜스'를 붙이며 조롱한다는 것을 모르던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는 표현이자 동시에 심각한 몰이해에 기반한 이야기임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저 혐오표현을 한 사람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체성을 가로질러 여성 혹은 남성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한다(그리고 이를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정확한 정의는 아니다.

길어질 설명을 조금씩 나누어 전달하자면, 우선 트랜스젠더는 젠더 위화감 혹은 젠더 경합이라 번역되는 '젠더 디아스포라'를 경험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성별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사회로부터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성별을 지정받고 이에 따른 성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길 기대받는다. 그리고 이 같은 '섹스-젠더'의 연결은 사회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가령 '남성'으로 태어난 아이는 당연히 '남자답게' 자라고 행동할 것이란 믿음 등이 그렇다).
 
에디 레드메인 <대니쉬 걸> 영화 중에서

에디 레드메인 출연작, 트랜스젠더를 다룬 영화 <대니쉬 걸>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선 '생물학적 성(섹스)'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구분이며 반드시 '여성과 남성' 두 성별로만 분류될 필요도 없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던 역사도 있다). 둘째로 누군가 여성 혹은 남성의 성별을 지정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성별정체성 또한 그것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 둘이 항상 일치한다는 믿음은 강력한 성별이분법이 만들어낸 허상이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감조차 오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탓은 아니다. 우리는 성별이분법과 이에 따른 성별규범이 강력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를 통해 인식하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지금의 사회에서 개인이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정받은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게 무슨 의미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 따라 경험하는 불쾌‧불일치‧위화감이 어떤 무게의 감각인지도 미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 의료 행위‧행정 절차(가령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자신에게 편안한 젠더 수행 등을 통해 스스로에게 맞는 성별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때로는 아주 절박한 일임을 상상하지 못하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트랜스젠더의 우울증 비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막연히 차별과 혐오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뿐, '왜 그럴까'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트랜스젠더인 친구들을 주변에 두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쓴 칼럼을 읽고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 '나의 새로운 성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My New Vagina Won't Make Me Happy)' 작성자인 안드레아 롱 추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성별위화감은 아무리 많은 옷을 입어도 따뜻해질 수 없는 느낌이었다. 굶주리지만 식욕은 없는 상태 같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중간에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의 남은 인생 전부를 이 비행기에서 살 거야" 그리고 성별위화감은 슬픔과 같다. 하지만 이는 대상이 없는 슬픔이다."

공영방송의 제작진이 지녀야 할 의무

트랜스젠더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과 감각을 거치며, 사회가 요구하고 때로 강요하지만 자신에겐 맞지 않는 성별정체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모든 과정을 명확하게 알고 이해했을 때만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혹은 조롱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명명하는 단어들은 정확한 의미와 역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수자들은 쉽게 편견과 멸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 이유에서 더 중요한 것이 학교‧방송‧연구 기관 등 공공의 역할이다. 이런 기관들은 개인을 몰이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게 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에 등장한 자막이 논란이 됐다. '트랜스 대한 가나인'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려고 온라인에서 쓰이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성소수자 단체에서 항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에 등장한 자막이 논란이 됐다. '트랜스 대한 가나인'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려고 온라인에서 쓰이는 표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성소수자 단체에서 항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 MBC

 
그런 면에서 지난 6월 28일 MBC의 예능 프로그램 <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에서 출연자인 샘 오취리를 두고 '트랜스 대한 가나인'이라는 표현을 자막으로 쓴 일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미 MBC의 자회사인 MBC PLUS가 트위터를 통해 비슷한 표현을 썼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했던 사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번 <마리텔> 자막이 방송된 후 성소수자 단체인 '트랜스해방전선'은 "트랜스젠더 혐오는 공영방송의 법도가 아니다"라는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대체 제작진들은 왜 굳이 '트랜스 OOO'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SNS에서 돌아다니는 혐오표현을 단순히 유행어로 착각해서였을까. 하지만 공영방송의 제작진들이 어떤 표현이 단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아무런 고민 없이 가져다 썼다면 이는 큰 문제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쓰는 말을 철저하게 검증해서 혐오와 편견 같은 해악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바란다

어쩌면 제작진들이 혐오를 담을 의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가나에서 살았지만 너무도 한국에 잘 적응한 샘 오취리에게 '트랜스(전환)'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는 당사자들이 성별위화감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해 강요된 성별과 성역할을 거부하고 지정 성별에서 벗어나는 모든 과정을 포괄한다. 이는 외국인이 살고 싶은 나라에 가서 잘 적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결도 무게도 다른 상황에 소수자를 지칭하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면 소수자에 대한 인식 또한 얄팍해질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이라면 이런 영향을 막고 소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역사를 제대로 시청자에게 전달해야 하지 않는가. 문제로 지적된 <마리텔>의 자막을 보자면, 제작진들이 공영방송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의 의무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이번 사태를 보며 내가 정말 불쾌했던 것 중 하나는 지금껏 외국인 샘 오취리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모습'이 줄곧 유머의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런 내용을 다루며 손쉽게 '트랜스'라는 단어를 가져온 이유가 무엇일까. 제작진들의 눈에는 여전히 트랜스젠더도, 한국 문화를 잘 체화한 외국인도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존재로만 보였던 것일까.

지난 시간, 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트랜스젠더의 삶은 진지하게 존중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고작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명명을 포함하여 실존하는 당사자들의 삶이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선 안 될 일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하나의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트랜스젠더'라는 말 속에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던 무수한 개인들이 조롱과 억압 속에서 자신이 존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삶을 찾아간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존중을 바라는 바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경의선 숲길서 촛불문화제 열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경의선 숲길공원 일대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경의선 숲길서 촛불문화제 열려 지난 2016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경의선 숲길공원 일대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마리텔 혐오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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