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미인), Baby(유아), Beast(동물).' 대학교 시절 '광고론' 수업에서 '광고의 3B 법칙'을 배웠던 것이 십수년 만에 문득 다시 떠올랐다. '3B'는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쉬운 세 가지 광고의 소재를 가리킨다. 미녀와 어린 아이, 그리고 동물. 처음 이 말을 들었던 20년 전의 나는 "맞아! 정말 그러네!" 하며 시험에 답을 쓰기 위해 3B 법칙을 외웠다.

그러나 최근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광고' 논란을 접하면서 나는 이 '3B 법칙'이 얼마나 위험했던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됐다.

예쁘고, 다루기 쉽고, 애교 많은
 
3B 법칙의 세 가지. 흔히 우리 사회에서 '미인, 유아, 동물'은 예쁘고, 다루기 쉽고, 애교를 잘 부리는 존재로 인식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예쁘기 때문에), 왠지 내가 가질 수 있다는(다루기 쉽기 때문에) 착각을 하기도 한다. 또한, 어린 아이가 예쁜 말투로 '이거 사줘!' 이러면 무시하기 쉽지 않듯, '애교'는 합리적 이유 없이 무언가를 사도록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다.

논란에 휩싸인 배스킨라빈스 광고는 이 '3B' 중 두 가지. 미인과 유아의 요소가 모두 잘 반영된 소위 '좋은 광고'였다. 곱게 화장하고, 귀여운 원피스를 입은 발랄한 여자아이는 미인과 유아 두 요소를 무척 잘 대변했다. 아이는 애교스런 표정과 천진난만하면서도 여성스런 몸짓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이 광고를 보고 발끈했다. 어린 아이의 몸을 담아낸 카메라의 시선이 아이의 성을 상품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아이의 성을 주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성적으로 대상화 하는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판이 무척 반가웠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광고 속에 들어 있는 뉘앙스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점, 이런 시선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사람들의 젠더 감수성이 많이 민감해졌다는 증거였다. 이런 비난에 배스킨라빈스 측도 재빠르게 대응했다. '일반적인 아동모델 수준의 화장을 하고, 아동복을 입고 촬영했지만,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사죄한다'는 사과문을 남기고 광고를 모두 내렸다.

이 사과문대로라면 모델을 일부러 성인여성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중요한 건 '화장을 얼마나 했느냐' '아동복을 입었느냐 입지 않았느냐'라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카메라 워크가 자연스레 이뤄졌다는 건, 어린 아이의 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이 이미 무의식 깊이 배어 있음을 의미했다. 때문에 비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현실이 된 걱정
 
 2일 해당 아동 모델의 어머니가 포스팅한 SNS 메시지.

2일 해당 아동 모델의 어머니가 포스팅한 SNS 메시지. ⓒ 인스타그램

 
그런데 댓글들을 읽다 보니 걱정이 밀려왔다. 바로 이 사태를 어린 모델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었다. 아마도 해당 모델은 평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을 것이다. 아이의 부모 역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셉트의 아이스크림 광고라고 생각하고 촬영을 추진했을 것이다. 비난의 대상은 모델의 연기도, 부모의 선택도 아니어야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을 아이를 '어른 남성의 욕망을 담은 시선'으로 편집한 제작진의 안이한 무의식이 비난의 대상이어야 했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고 댓글의 수가 늘어나면서 본질에서 벗어난 댓글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애가 불쌍하다' '애가 광고에서 성을 팔고 있네' '저런 광고를 찍게 놔둔 부모는 뭐냐' 등 어린이 모델과 그 가족에 대한 비난을 담은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본질을 호도하는 이런 댓글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어린 아이가 이런 댓글들을 본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가족들은 또 무슨 죄로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이런 댓글들이 아이를 담아낸 광고 속 카메라의 시선보다 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며칠 후 걱정은 현실이 됐다. 2일 모델의 어머니는 '한국에서의 이런 반응에 아이가 상처를 받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어머니는 매우 완곡한 표현으로 글을 적었지만, '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표현 속에서 부당한 비난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일을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호소는 정말 뼈 있는 말로 들렸다.

너무나 위험한 아동의 성 상품화
  
사실, 아동 성 상품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에서 긴 다리와 섹시함을 강조한 어린이 모델의 사진을 올려 문제가 되기도 했고, 지난 2월에는 한 유명 아동 쇼핑몰에서 아이가 입는 옷의 콘셉트를 '섹시 토끼의 오후'라고 쓴 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아동 속옷 광고 사진들에서도 자연스런 아이의 모습보다는 엉덩이 등 신체의 특정 부위를 강조한 사진들이 많다는 지적도 계속 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모든 논란 속 광고의 모델은 '여자 아이'라는 점이다. 남자아이도 모델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유독 '여자 아이 이미지'에만 '상품화', '대상화'와 같은 논란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상품화와 대상화의 방향이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주체적인 한 사람을 보기보다는 다루기 쉬운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 특히 어릴수록 더 약하고 다루기 쉬움에 '어린 여성'은 가장 손쉽게 대상화하는 소재가 된다.

반복해서 노출되는 이런 이미지들은 실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지난 5월 매체를 통해 알려진 나탈리 포트만의 고백이 바로 그 증거다. 1993년 13세에 <레옹>에 출연했던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 출연 후 한 어른 남성으로부터 '강간 판타지'가 담긴 편지를 받는 등 끊임없이 강간 테러에 시달려 왔고 밝혔다. 이처럼, '대상화된 성적 이미지'는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배스킨라빈스 광고화면 캡처

배스킨라빈스 광고화면 캡처 ⓒ 배스킨라빈스

 
치명적인 위험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다. 미국심리학회(APA)가 2007년 발표한 '소녀의 성 대상화에 대한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여성들은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한다. 즉, 매체 속 이미지의 비현실적인 이미지에 맞춰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과도한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을 통해 스스로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 대상화'의 늪에 빠졌을 경우 인지와 정체성 발달, 건강한 자존감 형성 등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과업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여성의 성, 특히 어린 여자 아이의 성을 대상화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심리적인 악영향을 미치며, 평등한 사회발전을 저해한다. 사실 배스킨라빈스 광고 논란은 이런 점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중요한 건, 논란의 방향이 특정인을 향하고, 그 가족을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방향이 지금처럼 호도된다면, 이런 논란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결국 아이와 그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것밖에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최근의 논란들을 돌아보니, 'Beauty, Baby, Beast'를 광고에 이용하면 그 효과가 좋다는 이 원칙을 당연한 듯 암기했던 20년 전의 내가 부끄러워진다. "~을 이용해라" 라는 전제 자체가 이 세 가지를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화한다는 뜻 아닌가. 살아 있는 것들을 주체가 아닌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원칙'이 되는 세상. 이런 시각 자체가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끊임없이 대상화 하고, 아동 모델과 그 가족들을 상처 받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이제는 이런 원칙부터 좀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광고를 찍든, 영화를 찍든, 무엇을 하든, 살아 있는 어떤 것을 '수단'으로 삼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고방식부터 점검해 봐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게재됩니다.
엘라 그로스 베스킨라빈스 광고 대상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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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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