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토이스토리 4 > 포스터

영화 < 토이스토리 4 >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의! 이 글은 영화 <토이스토리4>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장면에 버즈 대사가 울려 퍼진다. 정말, 우디는 무한한 공간 너머로 갔다. <토이스토리4>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디는 가 버렸다고. 우디는 진짜 자기 스스로의 공간으로 가 버린 것이라고. 지금껏 봐 왔던 <토이스토리> 시리즈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작별을 한 것만 같았다. 그간 봐온 <토이스토리>라는 영화와, 그리고 어른이 된 나를 책임진 내 유년들과.

우디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인이 크는 만큼 우디를 비롯한 다른 장난감들도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의해서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존재를 키우는 건 스스로가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그 이상의 몫을 하는 이야기를 매번 늘 보여줬다는 것.
 
버즈부터 우디까지... <토이스토리>서 성장한 장난감들
 
 영화 < 토이스토리4 >의 한 장면

영화 < 토이스토리4 >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초반 <토이스토리1>에서 장난감 '버즈'는 장난감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한다. 자신이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어린이들에 의해 소비되는 '제품'이라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 자신에게 있는 멋진 '날개'가 실제로 제 역할을 해주지 않아 상심했지만 마지막엔 우디를 안고 날며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해낸다.

또한 <토이스토리2>에서 새롭게 등장한 장난감 '제시'와 '불스아이'는 무력하게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을 따르려다가도, 다시 버려질 지도 모르는 주인에게 귀속된 삶으로 회귀한다.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조금 더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곳으로의 길을 따르던 장난감들이었다.

그리고 <토이스토리3>에서, 모든 장난감들은 첫 번째 주인과 작별을 함과 동시에 새롭게 만난 주인에게 적응할 힘까지 갖춘다. 즉, 자신들을 사랑해주던 주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정도까지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토이스토리>는 장난감들이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에 불과할 지라도 스스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다른 장난감 친구에게 질투하면서도 동시에 그 친구를 도울 줄 알며, 자신보다 커 보이던 주인과의 의리를 지키고 그런 주인과 아름다운 작별도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진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마침내 <토이스토리4>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주인 즉, '사람'을 떠난 삶을 사는 것이다. 스토리 면에서 보면, 이제 '사람'을 활용한 이야기는 더 이상 뽑아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장난감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장난감은 결국 2인자에 불과하며 사람이 없을 때는 자기들끼리 왁자하게 떠들다가도 이내 웃는 얼굴로 정지해야 한다. 장난감의 운명이자 '제품'으로서 수준을 결국엔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4편에서 픽사는 그 틀까지 깨버렸다.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도, 사람에게 귀속되지 않고도, 장난감 스스로 미지의 세계를 선택하게 했다. 오히려 사람과 공존했던 삶보다 더 두렵고 어두울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 다시 만난 보핍의 삶만 봐도 느껴졌다. 주인을 떠나 사는 삶도 그렇게 녹록지 않을 것이란 걸.

하지만 <토이스토리>는 주인공 우디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물론 마음의 소리로. 무한한 공간을 넘은 곳으로 가보고 싶지 않느냐고. 더이상 누군가에게 속해있는 부속품의 삶이 아닌, 스스로 주체가 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세상으로 가보고 싶지 않느냐고. 우디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런 마음의 소리를 무시한다. 새롭게 등장한 장난감 포키에게 주인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당연하고 즐거운 일인지 설파한다. 장난감은 주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고, 그게 바로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태어난 모습을 뛰어넘는 삶... 우디의 선택
 
 영화 <토이스토리4>의 한 장면

영화 <토이스토리4>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난 포키는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했지만(초반 버즈의 모습과도 겹친다) <토이스토리1>의 장난감들처럼,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장난감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물론 포키가 장난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아주 납득하기 쉬운 건 아니었다. 우디와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얘기하는 중에 곧바로 마음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행시켜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걸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우디가 포키를 찾으며 떠난 여정엔 여러 가지 장난감들이 있었다.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늘 그래왔듯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장난감들이었다. 한 번도 주인의 손을 타 본적 없는 불량품 개비개비도, 개비개비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장난감도 있었고 독특한 인상을 줬다. 오랜만에 만난 보핍에겐 이미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주인과의 즐거웠던 한때를 그리워하는, 버려진 장난감도 있었다.

사는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가진 장난감들이었다. 늘 그래왔듯 우디는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하며 포키를 무사히 데려가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만난 장난감들이 자꾸만 우디에게 말을 건다.

장난감으로 태어났지만 반드시 장난감으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그런 기준은 사실 없을지도 모른다고. 어린아이들은 장난감을 수시로 버리거나 잃어버리니, 우리가 반드시 그들의 제품이 될 필요는 없다고. 우디는 사실 장난감으로서의 역할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혼란스럽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장난감이라는 역할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사는 게 맞는 건지 알 수 없다. 태어난 모습을 뛰어넘는 삶이란, 얼마나 두려울지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듯 보인다.
 
난 영화를 보며 우디가 결국 어떤 '자리'를 떠날 것이란 걸 짐작했지만, 한 편으론 떠나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디가 떠나버린다면 정말로, <토이스토리>가 끝나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관객을 즐겁게 해주던 영화도, 어른이 된 내가 종종 기대던 유년의 내 모습도 정말 끝이 나 버린다는 뜻이었다. 그런 지나버린 시간을 구체적으로 상기시켜 줄 영화가 사라진다는 건, 사실 꽤 큰 상실감이 될지도 몰랐다. 물론 지금까지의 시리즈를 때때로 돌려볼 순 있겠지만, 무언가 새롭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나올 것이 없게끔 완벽하게 마무리를 짓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영화 < 토이스토리4 >의 한 장면

영화 < 토이스토리4 >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물론 픽사가 더 많은 시리즈를 만들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토이스토리4>를 보고 나오면서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는 떠났고,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마음에 더해 씁쓸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3편보다 진심으로, 작별한 것만 같아서 자꾸만 영화를 곱씹게 되었다. 나만큼 성장한 우디, 나만큼 성장한 장난감들,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었을지도 모를 그런 친구들.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돌아온 보핍도, 사람의 사랑을 한 번이라도 받아보길 바라던 개비개비도, 장난감으로서 천천히 성장할 포키도, 새롭게 보안관 뱃지를 달게 된 제시도, 의지하던 친구를 보낸 버즈도, 그리고 새롭게 자신의 사랑과(보핍)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난 우디도, 모두 놓아주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견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선물해 주었던 유년에 대한 기억들을 자꾸만 돌아보게 됐다.
 
긴 4편짜리 메시지를 단순한 주제의식에서 끝내지 않고 감정까지 묵직하게 전달해준 픽사가 고맙다. 캐릭터에도, 스토리에도, 대사에도, 제작진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울린다.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1편부터 4편까지 매끄러운 성장을 입힐 수 있었던 건, 그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 '장난감'들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사물'들. 어릴적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놀아봤을 법한 '장난감'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자기들끼리도 조금씩 성장해왔구나 하는 대견함 때문에 말이다.
 
물론 정말 작별하는 순간엔, 다른 장난감들에 대한 분량이 조금 아쉽긴 했다. 햄이나 슬링키, 렉시, 포테이토 부부와 외계인 삼 형제 인형, 이런 캐릭터들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너무나 오래 되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장난감들. 어디서 어떤 곳에서 지내든, 내 유년시절 장난감 '곰자'와 <토이스토리> 친구들 모두, 그리고 그들을 거쳐 어른이 된 나와 앤디, 보니,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진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모습으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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