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포스터

영화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포스터ⓒ 찬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을 꿈꾸던 체 게바라, 그는 왜 혁명의 아이콘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일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체 게바라>는 상영시간 총 257분의 대작이다. 영화는 총 2부로 나뉘어 국내 개봉했다. <체 게바라: 1부 아르헨티나>는 그의 저서 <쿠바 혁명 전쟁의 기억>을 바탕으로 2부 '게릴라'는 저서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의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8개월간 남미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접한 가난한 농민들이 겪는 고통과 참상은 체 게바라가 혁명의 길로 뛰어드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가 진보적인 생각을 지녔고 외가 쪽 조상이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했던 것, 여성 혁명가 일다 가데아를 동지며 아내로 만난 것, 진보정권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무너지는 장면 등을 목격한 것이 그를 무력 혁명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1부 '아르헨티나'는 체가카스트로와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출발한 게릴라, 운동으로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민주주의 혁명을 이뤄내는 데까지 담았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것은 민중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군들은 민중의 고통을 직시했고 자신들이 보았던 참혹한 농민들과 민중의 삶을 외면하지 않는다. 혁명군들은 문맹인 민중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다. 혁명군은 가는 곳마다 제일 먼저 병원과 학교를 세워 병자를 치료하고 글자를 깨치게 했고 인쇄소와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을 일깨운다.

민중 스스로 자본과 권력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힘, 자유와 정의를 쟁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혁명군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닌 탐욕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쿠바가 혁명 성공 후 , 미국과 자본주의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주의 국가로 설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더 크고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폭넒은 인간 해방을 꿈꾸지 않았다면 체는 쿠바 혁명 성공 후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않는 진짜 혁명가였다. 라틴 아메리카 곳곳은 문맹, 빈곤, 빈부의 격차로 민중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사랑의 본질을 깨우친 체는 안락함을 버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다시 게릴라의 길을 나선다.
 
체 게바라는 말한다. "진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에 의해 인도된다. 인간에의 사랑, 정의에의 사랑, 진실에의 사랑, 사랑이 없는 진짜 혁명가를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무력 게릴라전을 통한 해방을 꿈꾸고 실천했던 체게바라가 '혁명을 사랑' 이라고 정의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목표가 없으면 개인의 안락과 이기심을 버리고 힘든 고난의 길을 스스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1부 '아르헨티나'가 끝난다.
  
 영화 <체 게바라: 게릴라> 포스터

영화 <체 게바라: 게릴라> 포스터ⓒ 찬란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는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바탕으로 그가 볼리비아의 한 농가에서 체포되어 총살당하는 순간까지를 담았다.
 
쿠바 혁명에 성공한 뒤 체 게바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쿠바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는 '혁명가는 승리하거나 죽거나'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혁명의 길에 오른다. 당의 지원도 없고, 지역 농부와 민중의 지지도 없는 게릴라 전투는 지치고 힘든 상황의 연속이다.
 
공격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부상당한 동지를 절대 버리지 않는 것, 문맹인 군인에게 글씨를 가르치는 것,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장면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감동을 준다.
 
총살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체 게바라는 혁명의 길에 나선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체에게 있어 혁명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시몬 볼리바르와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예수로 비유된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면서 혁명의 길에 나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수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기득권과 맞서 '사랑의 혁명'을 실천한 혁명가의 전형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예수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는 어떤가. 그는 스페인에서 유학한 부유한 귀족 출신 기득권자였다. 그런 그의 눈에 가난한 민중의 삶이 들어 온 것은 '사랑과 연민'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체 게바라의 행동도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추구하던 이상과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혁명의 길에 나섰던 체 게바라도 쿠바에서 높은 정치적 위치와 안락함을 스스로 내려놓고 더 어려운 나라로 떠났다. 체 게바라도 시몬 볼리바르처럼 불타는 인간의 대한 사랑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완전한 해방을 이뤄낸 뒤 사회주의 대연정을 꿈꿨던 것은 아닐까?

사랑 때문에 혁명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두고 혁명의 길에 나섰던 체 게바라는 인간의 본성은 착하고 정의롭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지. 그가 꿈꾸던 사회주의 평등 세상이 인간 안에 잠재된 사랑의 불씨를 일깨우면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는 아닐지.
덧붙이는 글 동학실천시민행동 소속' 서울평화영화제 추진기획단'은 매달 1회 시민과 함께하는 영화관람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0년에는 시민들의 힘으로 여는 '서울평화영화제'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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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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