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스> 영화 포스터

▲ <아쿠아리스>영화 포스터ⓒ FILMIRAGE


1960~1980년대는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전성기였다. 당시 이탈리아 호러 영화는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1963),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1977), 루치오 풀치의 <비욘드>(1981),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1985) 등 주옥같은 걸작을 남겼다. 미쉘 소아비 감독의 <아쿠아리스>(1987)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쿠아리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올빼미 가면을 쓴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밤부엉이'를 준비하던 극단이 근처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진짜 연쇄살인마와 극장에 갇히게 되고, 극단원들이 그의 손에 하나씩 죽는다는 내용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한 명씩 사라지는 전개에선 애거사 크리스티 작가의 소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영향이 느껴진다. 그 즈음 할리우드를 휩쓸던 가면 살인마가 벌이는 학살극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할로윈>(1978) < 13일의 금요일 >(1981)을 참고한 흔적도 엿보인다.

할리우드에도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호러 영화
 
<아쿠아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리스>영화의 한 장면ⓒ FILMIRAGE


얼핏 보기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쿠아리스>가 지금껏 회자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탈리아의 '지알로'라는 스타일과 할리우드 '슬래셔 영화'가 가진 고어함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1960~1980년대 이탈리아 호러 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지알로'다.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뜻하는 지알로(giallo)는 1930년대 이탈리아 서점가에 노란색 표지에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나오는 범죄, 추리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장르를 통칭하는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장르 소설에 쓰던 지알로는 마리오 바바 감독의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1963)부터 영화의 용어로 발전했다. 영어권 국가에선 이탈리아에서 만든 특정한 스타일의 영화, 예를 들면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 장갑을 낀 의문의 살인자, 강렬한 원색과 조명, 과도한 유혈 장면, 아름다운 희생자 등의 요소를 갖춘 범죄, 스릴러 작품을 지알로라 불렀다. 지알로는 이야기의 개연성보다는 이미지와 폭력성을 앞세웠다.
 
<아쿠아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리스>영화의 한 장면ⓒ FILMIRAGE


<아쿠아리스>의 연출을 맡은 미쉘 소아비는 <수정 깃털의 새>(1969), <인페르노>(1980) 등으로 지알로의 대명사가 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제자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샤도우>(1982)와 <페노미나>(1985)에 조연출로 참여하며 실력을 다진 미쉘 소아비는 자신의 데뷔작인 <아쿠아리스>에서 지알로 문법을 적극 활용한다. 색감, 조명, 카메라, 소품 등 <아쿠아리스> 곳곳엔 아르젠토의 스타일이 가득하다.

<아쿠아리스>가 보여주는 잔혹함은 스승 다리오 아르젠토뿐만 아니라, 여타 지알로 영화를 가볍게 넘어선다. 극 중 도끼로 머리를 자르고, 드릴로 몸을 뚫어버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전기톱으로 등장인물의 몸을 절단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아쿠아리스>는 엄청난 살육 묘사 덕분에 1990년대 한국에선 <이블데드>(1981), <데몬스> <지옥인간>(1986)과 함께 호러 영화 마니아의 필수 감상작으로 명성을 떨쳤다.

<아쿠아리스>의 고어함은 할리우드 슬래셔 영화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할로윈> < 13일의 금요일 > 등 1970~1980년대에 유행하던 할리우드 슬래셔 영화가 이탈리아의 마리오 바바 감독의 <블러드 베이>(1971)를 원전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호러 영화를 할리우드가 참고하여 호러 하위 장르인 슬래셔를 창조하고, 이것을 다시 이탈리아 감독 미쉘 소아비가 가면을 쓴 살인마와 살인 묘사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쿠아리스>로 지알로와 슬래셔는 하나로 수렴되고 이탈리아 호러와 할리우드 호러의 경계는 사라진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호러영화, 한 시대 풍미한 고전으로 남은 이유
 
<아쿠아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리스>영화의 한 장면ⓒ FILMIRAGE


<아쿠아리스>는 영화의 바깥에서 이탈리아 호러와 할리우드 호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면, 영화의 안에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는 거리의 성매매 여성이 올빼미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살해를 당하는 장면을 도입부로 보여준다. 살인사건이 진짜로 일어난 게 아니라, 뮤지컬 '밤부엉이'의 리허설임은 이윽고 밝혀진다. 현실과 허구를 무너뜨리는 멋진 연출이다.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영화 전체의 전개도 논리를 따르진 않는다. 개연성도 강하진 않다. 마치 다리오 아르젠트가 허구와 현실을 뒤섞는 환상성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극 중 뮤지컬 연출자는 "당신이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고 관중의 공감이 문제요"라고 이야기한다. 미쉘 소아비 감독은 뮤지컬 연출자의 입을 빌려 <아쿠아리스>에서 중요한 건 논리가 아닌 공감이라고 강조한다.

<아쿠아리스>의 후반부에 조각난 시체들로 꾸며진 무대 중앙에 연쇄살인마가 앉아 있는 장면은 호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초현실적인 연출이다. 이후 20여 분간 살인마와 주인공은 한마디 대사도 없이 사투를 펼친다. 장면이 뿜어내는 긴장감은 대단하다.
 
<아쿠아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아쿠아리스>영화의 한 장면ⓒ FILMIRAGE


많은 이탈리아 호러 영화는 편집이 다른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곤 한다. 하지만, <아쿠아리스>는 예외다. 미쉘 소아비 감독은 각기 다른 러닝 타임, 더빙, 음악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원한 편집 방향으로 진행한 필름에 영어 음성과 음악을 넣어 하나의 판본으로 통일시켰다.

<아쿠아리스>는 판본은 하나이나 제목은 제각각이다. IMDB에 올라온 제목의 숫자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이탈리아의 오리지널 타이틀은 '환각'의 복수형인 < Deliria >다. 미국에선 '무대 공포증'을 의미하는 < Stagefright >가 붙여졌다. 갇힌 상황을 암시하는 < Aquarius >는 스페인에서 쓰였고, 독일에서는 부제 '죽음의 극장'을 붙인 < Aquarius - Theater des Todes >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올빼미 가면을 쓴 살인자를 지칭하는 < Bloody Bird >, 무대 아래에서 일어난 학살을 겨냥한 < Sound Stage Massacre >도 있다.

<아쿠아리스>는 분명 설정은 익숙하고 각본은 단조롭다. 그러나 시각 스타일, 예술적인 감각, 팽팽한 서스펜스, 상상을 초월하는 고어함,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깬 환상성을 덧붙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호러 영화이자 고전으로 남았다. 호러 영화가 예술의 경지에 오른 드문 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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