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더 다크> 포스터

<맨 인 더 다크> 포스터 ⓒ UPI

 
6월 말부터 시작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에 몸도 마음도 푹푹 찌는 여름이면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 공포영화나 쫄깃하고 서늘한 긴장감을 선보이는 스릴러 영화가 사랑받기 마련이다.

순수하게 '긴장감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손에 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영화 <맨 인 더 다크>이다.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으며 관객들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넣는 이 작품은 소용돌이처럼 파괴력 있는 긴장감, 서스펜스와 공포의 매력을 담아낸다.
 
'한탕' 노리는 도둑들, 앞 못 보는 노인의 집을 털다가 그만...

<맨 인 더 다크>는 기존 스릴러 영화의 설정들을 교묘하게 붕괴시키며 색다른 느낌을 준다. 첫 번째는 선과 악의 모호한 구분이다. 스릴러 영화는 정확한 선과 악을 규정 지으며 재미를 준다. 악은 선을 공격하고 선은 악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저항한다. 악이 선을 공격하려 할 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고 공격을 가하는 악의 모습에 관객들은 긴장과 공포를 느낀다.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 UPI

 
작품은 10대 싱글맘 록키(제인 레비)를 주인공으로 한다. 극 중 록키와 두 친구, 알렉스(딜런 미네트)와 머니(다니엘 조바토)는 도둑질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한 퇴역 군인(스티븐 랭)의 집을 다음 타깃으로 정하는데, 집 주인이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은 건 물론 시각 장애를 가진 노인이라는 점이 그 이유이다.

세 사람은 '한탕'을 통해 밑바닥 삶을 청산하려고 한다. 록키 역시 이번 도둑질을 끝으로 딸과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 생각을 품는다. 여기까지 진행된 도입부만 보았을 때, 악당은 퇴역 군인 노인의 집에 침입해 도둑질을 하려는 록키 일당이며 무고해 보이는 쪽은 그들에게 돈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노인이다.
 
노인이 잠든 걸 확인하고 수면가스까지 집 안에 뿌린 뒤 돈을 찾던 그들은 자물쇠로 잠긴 방을 발견한다. 돈이 그 방에 있을 것이라 여긴 도둑들은 자물쇠에 총을 쏘고, 그 소리에 일어난 노인은 도둑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앞을 못 보는 노인은 엄청난 괴력으로 몸싸움을 벌이다가 머니를 살해한다.

머니 일당은 그를 혼자 사는 시각장애 노인으로 여겼지만, 그는 사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군대에서 맨손 전투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청각 등 다른 감각이 더욱 발달된 상태이기도 했다. 도둑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된 노인은 집 내부의 문을 모두 잠그고, 무단으로 침입한 도둑들을 하나씩 죽이려 든다. 이 순간 악당이라 생각했던 도둑들은 물에 빠진 생쥐마냥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만다.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 UPI

 
관객은 도둑들을 상대하며 괴력을 과시하는 노인의 입장에서 통쾌함을 느끼기보다는, 제발 도둑들이 노인의 집에서 무사히 탈출하길 바라는 쪽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런 독특한 시각의 감정 이입은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며 스릴감을 강화시킨다.

관객의 심장박동이 요동치게 만드는 절정의 긴장감

기존 스릴러 영화와 <맨 인 더 다크>가 다른 부분 두 번째는 강약이 없는 리듬감이다. 스릴러 영화는 긴장감을 준 뒤 다음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타이밍을 갖는다. 이런 타이밍에서는 보통 인물의 과거를 보여주거나, 두 주인공의 로맨스 형성을 통해 주인공들에게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또한 흔히 등장인물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를 응원하는 관객의 마음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강약의 부드러운 조절은 지나친 스릴감으로 인한 피로와 무뎌지는 긴장감을 방지하는 효과를 준다. 헌데 이 작품은 계속 강하게 줄거리 전개를 밀고 나가면서도 스릴감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이는 감독의 영리한 두 가지 설정에 있다. 첫 번째는 노인 집 마당에 있는 개의 존재이다. 덩치가 큰 개는 날카로운 이빨과 짖는 소리로 공포를 주는 건 물론 빠른 속도와 넓은 활동범위를 통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면서 소름을 유발해낸다.
 
두 번째는 시각장애인이라는 등장인물의 설정이 지니는 특징이다. 극 중 노인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암전 상황을 유지하면서 록키와 알렉스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시각 대신 발달한 청각과 군인이 지니는 강인한 신체와 민첩성 덕분에 그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힘을 통해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암전 상황에서 화면을 어둡게 유지하며 관객들의 시야도 흐리게 만든다. 이런 설정은 노인이 갑작스럽고 등장하고 공격할 때 함께 놀라게 만든다. 또한 극 중 머니 일행뿐만 아니라 관객마저도 함께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는 효과를 보여준다.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 UPI

 
여기에 록키가 미혼모라는 기본 설정만을 둔 채, 영화는 원사이드하게 쉴 틈 없이 밀고 나가며 장르물의 쾌감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드라마적인 감정 이입을 압도적인 공포로 가져오면서 강약의 부드러운 흐름보다는 강하게 몰아치는 힘으로 관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운다. 세 번째는 외부 또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통한 사건해결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세 명의 도둑들, 한 명의 노인, 지하실에 감금된 의문의 여인과 개 한 마리만이 등장하는 규모가 작은 영화이다.
 
이런 등장인물과 세트의 규모가 작은 영화의 경우 극한의 상황을 설정했을 때 이를 해결할 열쇠를 외부에서 찾곤 한다. 내부 인물은 막다른 상황에 몰리고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외부의 힘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다. 또는 이런 상황에서 설득이나 감정적인 약점을 공격하며 악의 감정 변화를 가져오면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의 경우 좀 더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끔 만들며 긴장감을 최고조에 오르게 할 수도 있다. 다만 이후 완성도나 최종적인 감상에서 아쉬움을 가져올 수 있다.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맨 인 더 다크> 스틸컷 ⓒ UPI

 
영화 <맨 인 더 다크>는 노인 집 안의 상황을 바깥으로 크게 확장하거나 외부 인물이 개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직 집 안의 인물들을 통해 모든 사건을 끝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감정적인 선을 건드리거나 신파로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도 않는다. 록키는 오직 딸에게 돌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저항하고, 노인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들을 죽이기 위해 더욱 잔혹해진다. 이런 '강 대 강'의 피 튀기는 사투는 관객의 심장박동을 멈추지 않고 요동치도록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맨 인 더 다크>는 긴장감과 공포의 측면에 있어서는 최고조에 오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제한된 공간, 기존 스릴러 장르 공식의 파괴, 요행을 부리지 않고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강력한 힘은 한 가득 식은땀이 흐르게 만들 정도로 장르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무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을 잠시나마 짜릿하고 시원하게 보내려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맨인더다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