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를 다룬 OCN 드라마 <구해줘2>가 3.6%의 자체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물론 두 자리 수 시청률의 케이블 드라마가 종종 나오는 시대에서 <구해줘2>의 시청률이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목 오후 11시라는 불리한 시간대와 썩 화려하지 않았던 캐스팅에도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3.3%)와 SBS <절대 그 이>(2.8%)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구해줘2>가 가진 최고의 매력은 역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였다. 천호진은 인자한 법대 교수 출신의 최장로와 전과 10범의 사기꾼 최경석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조용한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신실하고 순수한 성품의 목사가 타락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연기한 김영민의 열연도 돋보였다. 이 밖에 임하룡, 조재윤, 장원영, 서영화, 우현 같은 중견배우들도 실제 마을 주민을 연상케 하는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구해줘2>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는 역시 주인공 김민철 역의 엄태구였다. JTBC <방구석1열>에서 변영주 감독에게 "물 속에서 어린 아이를 구해내도 나쁜 생각 때문일 것 같아 보이는 배우"라는 평가를 들었던 엄태구는 <구해줘2>에서도 변함없이 불량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모두가 싫어하던 김민철은 끝내 마을을 사이비 종교의 마수에서 구해냈고 김민철을 연기한 엄태구는 자신의 첫 주연작을 멋지게 끝마쳤다.

<밀정>으로 주목 받은 엄태구, <택시운전사>로 '미친 존재감' 과시
 
 만약 엄태구가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했다면 1980년 광주의 참상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엄태구가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했다면 1980년 광주의 참상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 (주)쇼박스

 
강인하다 못해 험악해 보이기까지 한 인상과 달리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고 성경을 읽으며 발음연습을 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태구는 중학시절 교회에서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를 처음 접했다. 물론 엄태구의 친형이 <숲>, <유숙자>,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연기자가 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 있긴 했다(실제로 엄태구는 형이 연출한 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연출부와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엄태구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데뷔 후 10년 가까이 무명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런 엄태구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4년에 방송됐던 KBS 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때 부터였다.

비록 <감격시대>는 작가의 중도교체와 제작사의 출연료 미지급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엄태구는 사사건건 신정태(김현중 분)의 발목을 잡는 악역 도꾸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1300만 관객을 모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는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의 분풀이 상대가 되면서 다리를 다치는 수행원으로 짧게 등장했다. 그리고 엄태구는 2016년 가을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첫 번째 '인생작' <밀정>을 만났다.

<밀정>에서 일본경찰 하시모토를 연기한 엄태구는 대배우 송강호에게도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성당 앞에서 연계순(한지민 분)을 놓친 후 분노를 참치 못하고 부하의 뺨을 때리는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엄태구는 <밀정>을 통해 2016년 대종상과 2017년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차지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밀정> 이후 또 한 번 많은 관객들에게 엄태구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였다. 엄태구는 <택시운전사>에서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만섭(송강호 분)이 지나간 샛길을 지키는 검문조장으로 출연해 트렁크에서 서울 번호판과 필름가방을 발견하고도 통과를 시켜준다. 그토록 잔인했던 1980년 광주의 계엄군 중에도 양심과 정의에 따라 신념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엄태구의 진중한 연기를 통해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구해줘2>로 주연 신고식 마친 엄태구, 영화 <뎀프시롤>에서 복서 변신
 
 김민철의 개인적 원한에 의한 억지라고 무시 당했던 주장은 드라마 후반부에  대부분 '진실'로 밝혀졌다.

김민철의 개인적 원한에 의한 억지라고 무시 당했던 주장은 드라마 후반부에 대부분 '진실'로 밝혀졌다. ⓒ <구해줘2> 홈페이지

 
엄태구는 작년 영화 <안시성>에서 용맹함으로 무장한 안시성의 기마대장 파소를 연기했다. 물론 <안시성>은 215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제작비와 웅장한 전투신에 비해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당초 기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 540만 관객을 동원했다(<안시성>은 1000만이 매우 유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엄태구는 영화에서 설현과 연인으로 등장해 기마대장의 강인한 모습과 한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부드러운 모습을 조화롭게 잘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보다는 영화 위주로 활동하던 엄태구는 올해 자신의 첫 주연작(독립 및 단편영화 제외)으로 드라마를 선택했다. 지난 2017년 서예지, 옥택연, 조성하 등이 출연하며 5%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구해줘>의 두 번째 시즌 <구해줘2>였다. 시즌2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조금산의 웹툰 <세상 밖으로>를 원작으로 했던 시즌1과 달리 <구해줘2>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편과의 접점은 전혀 없다.

엄태구는 <구해줘2>에서 가정 폭력을 막다가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고 폭력과 비리를 일삼는 유도 코치를 불구로 만들어 감옥에 가는 전 유도 유망주 김민철을 연기했다. 극 초반에는 구제불능의 인간 쓰레기로 묘사되지만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최경석(천호진 분)의 꾐에 넘어가면서 홀로 최경석과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구해줘2>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그런 것처럼 개인의 복수가 '정의구현'으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김민철이 월추리 파출소 벽에 걸려 있는 현상 수배 포스터에서 최경석을 발견한 후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흥분하는 연기는 엄태구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맞물려 묘한 쾌감을 준다(물론 당시만 해도 김민철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경찰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싫어하던 김민철이 마지막회에서 마을 사람들의 토지보상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을 보면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구해줘2>를 통해 인상적인 드라마 주연 데뷔에 성공한 엄태구는 상업영화 주연 데뷔도 앞두고 있다. 지난 2014년에 제작된 단편영화 <뎀프시롤 : 참회록>의 장편 버전 <뎀프시롤>이다. 뇌손상을 입은 복서의 재기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병구 역의 엄태구 외에도 걸스데이 출신의 혜리와 김희원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지만 오랜 기간 추운 겨울을 보낸 엄태구의 연기인생에는 드디어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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