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짝쿵짝 쿵짜짜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지난 14일 오후 9시 서울 삼선동 한성대 입구의 한 건물 지하 1층,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장. 28일부터 3일간 6차례 올리는 공연(서울 대학로 SH 아트홀)을 앞두고 배우들 10여 명이 가요 '네박자' 가락에 맞춰 연극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 연극은 사단법인 한국생활연극협회(이사장 정중헌)가 창립 2주년 기념으로 준비했다. 보릿고개 시절에 피어오른 감동 순애보를 '꽃순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린 작품이다.
 
"꼿꼿하게 서야 인사를 받든지 박수를 받든지 할 거 아닙니까. 자세가 꼿꼿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어떡하겠어요? 자세를 바로 세워 주고 싶을 거 아닙니까. 관객들이 배우에 집중하지 않고 자세에 집중한단 말입니다. 관객들 심리가 원래 그래요."
 
연출가 복진오씨의 호통이 연습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복씨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쫌생이 같이 나와? 딱 서서 2층 발코니 보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발코니 보고 쫙 빠지고, 나올 때도 가슴 펴고 나오랬는데 꼭 쫌생이 같잖아. 쫌생이."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신향식

 
복씨의 지적은 그치지 않았다. 시선 처리부터, 퇴장 동선까지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표정이었다. 가끔 반말도 나왔다. 배우들은 대부분 50~60대였고 70대도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연륜이 쌓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연기에 집중했다.

"한두 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보는 인생사, 소설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


추억 어린 가요와 흥겨운 춤으로 연습장은 1960~70년대 분위기를 풍겼다. 꽃순이는 1인당 국민소득 70불 시대에서 3만불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적 구성에 맞춰 전개했다. 영화 <국제시장>과 시대 배경이 연결되었다.
 
안무 담당 한재영씨는 "때론 울컥하고, 감동 받고, 몰입될 때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연세가 있는 분들이 열정적으로 연기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며 "이것은 아마도 이 극의 시대 배경인 1960~7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들의 진정성에서 나오는 흡입력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리 희끗희끗 연륜 쌓인 일반인 배우들 뜨거운 연기 열정
    
 꽃순이를...' 연습 장면.

꽃순이를...' 연습 장면.ⓒ 신향식


"선생님들, 끝까지 뒷걸음질치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뒷걸음질하고 빠르게 뒤돌아서 퇴장하시면 된다니까요. 어휴."
 
조연출 윤국희씨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 두 명의 미숙한 동작이 윤씨에게 포착된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배우들은 실수를 연발했다. 같은 장면을 되풀이 하며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극의 한 장면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 부분을 또다시 연습했다.
 
"가운데로 오면 조명이 여러분을 비출 겁니다. 제자리에서 크게 움직이면 효과가 커요. 이제는 커튼콜 해 볼게요. 센터 잘 확인하시구요. 시작할게요."
 

노래, 음악이 나오면서 조명이 켜졌다. 그 순간, 배우 한 명이 박자를 놓친 채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가 멈칫멈칫 중앙으로 걸어나오자, 조연출의 꾸짖는 소리가 연습장에 울려 퍼졌다.
 
"위치 제대로 확인하세요. 허둥대면 안 되죠. 노래는 안 하실 겁니까? 연습 때 노래해야 무대 위에서도 하실 수 있잖아요. 선생님들, 조명이 언제 켜지든 반주음악 듣고 시작하시면 돼요. 누가 사인을 주지 않아요. 본인이 외우셔야 해요. 정신 집중해야 합니다. 정신요."
 
공연일이 다가오면서 긴장했는지 배우들은 연속으로 실수했다. 윤씨는 속사포처럼 지침을 던졌다.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연출진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따랐다.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배우들의 노래와 동선 조정이 반복됐다.
 
야단까지 맞아가며 혹독하게 연습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신향식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생활연극이다.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창작활동이다. 연극을 본업으로 하는 프로 연극이 아니다. 주부, 직장인, 기업인 등 다양한 일반인들이 참여한다. 하지만 연기는 빈틈없이 지도 받는다. 계속 지적 받아가면서도 제대로 배우려는 열정이 폭염을 무색케 할 정도다.
 
생활연극이지만 어설프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직업과 환경을 가진 일반인 배우들이다보니 전문적인 지도를 받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권재우 작가, 최영환 예술감독, 복진오 연출가, 윤국희 조연출, 한재영 안무감독, 정중헌 이사장 등이 이들을 돕는다. 다양한 프로들이 모여 생활연극의 완성도를 높여준 것이다.
 
"생활연극은 배우가 되고 싶어했던 분들이 주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무대를 향한 갈망을 표출하는 열정이 대단하지요. 프로 연극인들이 그들을 지도하는데 대충 연기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윤국희 씨는 "일과를 마치고 피곤할 텐데도 늦게까지 연습한다"면서 "이것은 프로 배우에게는 일상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 배우들이 아니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프로에 비해 연기력에 부족한 점이 있다. 안무를 지도하는 한재영씨는 "'일반인 배우'란 특성을 고려하여 호흡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동작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고급 동작은 아니지만 캐릭터를 연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데 큰 의의를 둔다는 뜻이다.
 
"배우들이 힘겨울 겁니다. 생업을 하면서 연습하니 그렇지 않겠어요.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고, 집에 가면 밤 12시가 넘거든요. 처음에는 살이 통통하다가 공연이 임박하면 홀쭉해질 정도입니다."
 
생업 종사하면서 힘겹게 연습… 공연 임박하면 몸매 홀쪽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복진오 연출가(왼쪽)가 윤국희 조연출(가운데), 한재영 안무 감독(오른쪽)과 함께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복진오 연출가(왼쪽)가 윤국희 조연출(가운데), 한재영 안무 감독(오른쪽)과 함께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신향식

 
이번 공연은 언론인 출신 정중헌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생활연극협회가 주최한다. 2017년에 창립한 이 협회는 연극의 보급과 교육, 생활연극예술제, 경연대회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생활연극은 치유 예술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다. 삶의 활력을 찾아주고, 정서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공통으로 얻는 소득이다.
 
"중년 연배의 일반인들이 연기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부르던 노래도 어떤 규칙이나 정서에 맞게 불러야 하니 쉽지 않겠죠. 하지만 다들 열정적으로 연습합니다. 힘들지는 몰라도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겠지요."
 
복진오 연출가는 "요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치유방법을 찾는다"면서 "노래나 붓글씨, 글쓰기, 미술을 통해 자기 치유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연극을 하는 분들도 연기로 힐링하고, 대리만족하며,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면서 "이러한 생활연극을 치료 목적의 예술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연기로 힐링하고 대리만족… 치유 목적의 예술로 승화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연출가 복진오 씨(오른쪽).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연출가 복진오 씨(오른쪽).ⓒ 신향식

 
"연극으로 사람의 정서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개별 활동과 달리 연극이라는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소통의 장이 중요한 겁니다. 소외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여 주기 때문이지요."(복진오)
 
"혼자 지내는 현대 사회에서 협업을 통해 종합예술을 하는 장르는 흔치 않을 겁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공연하면서 소외됨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관객 앞에 서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도 상승하지요."(윤국희)
 
주인공 꽃순이의 아버지 역을 맡은 김아천(60)씨도 이에 동의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연기하면서 심리 치유 효과도 느낀단다.
 
"저는 평소 대중예술에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체 에너지 부족으로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습니다. 그 미련을 생활연극으로 해소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을 통해 연기 연습도 하고 심리적 성찰도 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유의미한 활동입니다."
 
어린이집 교사로서 생활연극배우로 나선 박금옥(54)씨도 "치유 효과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주인공 '꽃순이'로 출연한 박씨는 교육연극자 자격증을 획득하여 연극으로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며 극에 빠져가다 보면 제3자의 삶에 자신을 반추해 보기도 합니다. 여러 배우들과 함께 극을 완성해 가는 동안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면서 또 다른 작은 사회를 경험하게 되지요.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고 사고하는 폭도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협업 통한 소통의 장… 소외감 극복하고 자존감 향상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복진오 연출가(오른쪽)가 직접 무대에 들어가 배우들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가요극 <꽃순이를 아시나요?> 연습 장면. 복진오 연출가(오른쪽)가 직접 무대에 들어가 배우들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신향식

 
복진오씨는 생활연극을 생활체육과 비교했다. 그는 "체육에서는 예전부터 엘리트와 일반인의 영역을 합치자는 사회적 바람이 불었다"면서 "체육은 생활체육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활성화되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연극도 엘리트 연극에서 생활연극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연극을 향유하는 계층이 확대되면 엘리트 연극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학로 연극도 결국 생활연극을 하는 분들이 더 많이 관람하지 않겠습니까?"
 
이어 복씨는 "탁구나 수영 등의 생활체육처럼 연극도 아마추어들이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정착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생활연극협회의 어려움은 정부 지원과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에요. 최근 들어 문화체육부에서 엘리트 체육에 집중하지 않고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했잖습니까. 이제라도 생활연극 지원정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문화에 신경을 쓰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면 생활연극의 사회적 순기능은 확대되지 않겠어요?"
덧붙이는 글 글쓰기 전문매체 '글쓰기'에도 송고합니다. 이화진(한양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 취재를 도와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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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기사를 써옴.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백석대, 인덕대 등서 강의함.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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