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이> 포스터

<더 보이>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히어로물에도 다양한 변주가 있다. 히어로 영화 매니아인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 <킥 애스>, 히어로와 싸우던 빌런이 각성한 후 세상을 구하는 내용의 <메가마인드>, 히어로 학교 소속 어린 히어로들의 꿈과 모험을 다룬 <스카이 하이> 등이 기존 히어로물과 다른 재미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개봉한 <더 보이>는 슈퍼맨의 능력을 소유한 소년이 악의 길로 빠지는 내용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더 보이>는 안티 히어로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안티 히어로 장르에는 도덕성이 없는 히어로가 등장하지만 어찌되었건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점에서 히어로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더 보이>에서 슈퍼맨과 유사한 능력을 소유한 소년 브랜든 브라이어는 자신의 힘을 차량이나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 사용한다. 이런 브랜든 브라이어의 캐릭터는 히어로 무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다크 나이트>가 던진 질문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자신과 배트맨의 차이를 '동전의 앞면과 뒷면'에 비유한다. 히어로와 빌런의 능력은 꽤 비슷하다. 둘 다 평범한 인간을 초월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적이 되어 대결을 펼칠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한 명은 선과 공공의 질서라는 사회의 방향성을 따르고 다른 한 명은 지나친 이상과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을 원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히어로가 지닌 능력만 두고 봤을 때 그게 반드시 인류를 위한 힘이라 볼 수는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역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전작에서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전투 후 메트로폴리스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슈퍼맨의 엄청난 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배트맨은 누구도 슈퍼맨을 제어할 수 없는 현실과 그런 슈퍼맨이 타락하고 악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된다.

영화 <더 보이>는 '진짜' 악의 마음을 지닌 슈퍼맨을 등장시키며 관객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크로니클>과 유사한 설정 담은 <더 보이>
 
 <더 보이> 스틸컷

<더 보이>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간절히 아이를 원하던 부부에게 하늘은 아이를 내려준다.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 브랜든은 토리와 카일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똑똑하고 성실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브랜든은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엄청난 힘과 절대 다치지 않는 방어능력, 여기에 하늘을 날 수 있기까지 한 브랜든은 우월함을 느낀다. 이 우월함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특별한 자신에게는 인류를 파괴하고 정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잘못된 마음을 지니게 만든다.
 
이 지점까지만 본다면 <더 보이>는 파괴력 있고 신선하면서 색다른 히어로 무비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국내에 2012년에 개봉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 <크로니클>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크로니클> 역시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초능력을 가진 세 소년 중 한 명인 앤드류가 인류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더 보이>는 15세 관람가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잔인한 수위로만 화제가 되었을 뿐 그 어떠한 파급력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더 보이>는 히어물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움은 물론 장르적인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외면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캐릭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책과 같은 문자 콘텐츠에 비해 인물의 감정을 심도 있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글을 통한 서술과 달리 내레이션이 아니면 행동과 사건을 통해서만 인물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책은 어떠한 인물을 등장시키더라도 오랜 시간을 들여 독자에게 그 심리를 설득시킬 수 있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부족하다.
  
'악의 발현' 설정, 설득력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더 보이> 스틸컷

<더 보이>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극 중 브랜든의 심리는 오직 장면과 행동, 그리고 대사를 통해서만 표현된다. 앞서 브랜든은 남들과 다르긴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로 등장한다. 그런 브랜든이 자신의 능력을 알고 악의 길을 걷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 마치 처음부터 브랜든의 내면에는 오직 악만 있었다는 듯 말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주인공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힘들다. <크로니클> 같은 경우는 앤드류가 악의 길에 접어드는 지점에서 아버지의 학대라는 계기가 있었다. 이 계기로 인해 관객들은 앤드류라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반면 브랜든에게는 그런 계기가 없다. 그저 브랜든은 외계에서 왔고 갑자기 자신의 힘을 알고 외계의 신호를 받아서 악이 된 것이다 라는 설정이 전부이다. 여기에 브랜든이 반복하는 악행은 섬뜩함과 공포를 주지만 이 감정이 재미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주인공이 반복하는 악행에 어떠한 쾌감도 심리적인 공포도 없기 때문이다. 브랜든의 살인은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이뤄진다.
 
문제는 이 이득이 세계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인물이 품기에는 너무나 작은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브랜든은 심리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는 걸 어머니에게 말하겠다는 이유로, 자신의 스토킹에 변태로 취급했다는 이유로 폭력과 살인을 반복한다. 살인 장면이 주는 긴장감과 공포는 느껴지지만,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브랜든에게서 설득력을 느끼기 힘들다. 너무나 개인적이고 사소하며 어린아이 같은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더 보이> 스틸컷

<더 보이>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이는 모든 인물의 심리가 결국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은 영화가 지닌 스토리를 관객이 성공적으로 이해하고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를 통해 재미를 느끼거나 충격을 받는다. 아쉽게도 브랜든이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이입을 주기에는 부족했고, 이런 부족함은 작품 자체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더 보이>는 히어로 영화가 지닌 선과 악의 양면성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던지는 영화다. 그 흥미로운 답까지의 과정을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영화가 지닌 미덕이다. 하지만 <더 보이>는 장르에 어울리는 스릴감과 공포를 가졌지만 이를 이끌어갈 주인공 설정이 심리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사건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심리선을 만들고 그 심리선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실립니다.
더보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