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비스트>의 일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비스트> 스틸컷

<비스트> 스틸컷ⓒ (주)NEW


희대의 살인마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한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 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의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 영화 <비스트>를 소개한 글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한수와 민태의 대립은 영화 전편에서 전개되지만 한 축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여러 축을 동시에 작동시켜 형사물과 스릴러의 재미를 추구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 생각할 거리는 "인생은 원래 X같은 것" 혹은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 키우고 있다"는 영화대사처럼 술안주로 소비될 만한 한담(閑談)이면서 더불어 도덕철학의 근본주제이기도 하다.

관계의 여러 축을, 말 그대로 유기적으로 연결 지으며 동시에 선명하게 작동시켜야 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건의 중심축이 표면상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설정돼 있어, 그 사건이 해결되는 대단원에서 복잡하게 얽힌 다른 이야기가 함께 마무리돼야 한다는 구성상의 과제를 떠안느라 감독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으리라. 그러다보니 영화의 핵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인과율 혹은 개연성이 약해질 수 있다. 그것에 주목하여 누군가는 주변부에서 설명력이 떨어진 것을 두고 영화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스토리의 주변부에서 논리적 디테일의 감소를 목격했다. 하지만 카메라 초점을 중앙에 두다보면 주변이 흐릿해지는 게 세상의 이치이듯이 주변과 핵심 가리지 않고 또렷하게 드러내지 않은 게 큰 흠결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르의 특성상 재미있으면 됐고, 스릴이든 서스펜스든 극적 긴장이 끝까지 유지되면서 어느 정도는 상식적이고 어느 정도는 상식적이지 않은 결말에 도달하게 하는 것. 이러한 유형의 영화에서 그 정도만 성취하면 충분하다 싶은데, <비스트>는 충분히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 부수적으로, 앞서 말했듯 인생과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생각거리를 던지는 데에도 성공했다.

누가 짐승이고 누가 영웅인가

이정호 감독은 "일반 형사가 발로 뛰면서 범인을 잡는다면, 나는 다른 방향으로 기획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얽히고설킨 관계들과 입장,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따른 무게와 책임을 고루고루 다뤘다. 장르적이고 쫄깃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여러 건의 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 살인범으로 치면 두 명이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여 영화 전체의 발화점이 되는 여고생 살인범(이 살인범은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두 차례 중요한 반전을 보여준다)과 이 살인범 체포를 원하는 형사 한수를 이용해 다른 범죄자를 살해한 마약 브로커가 그들이다. 간단하게 나누면 한수는 여고생 살인범을 쫓고, 민태는 범죄자 살인범을 쫓는다. 정확하게 말해 민태는 범죄자 살인범 수사를 통해 동료 형사 한수를 쫓는다.

<비스트>는 2006년 개봉된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올리비에르 마샬 감독)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기본구도는 같다. 두 명의 형사가 등장하여 범인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 두 사람의 적대가 일어나며 누군가 한 사람이 (관객이 보기에) 허무하고 더러운 트로피를 쥐게 되는 스토리라인이다.

"장르적이고 쫄깃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 감독의 소망은 실현된 듯하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반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결말까지 제시했다. 그렇다면 "얽히고설킨 관계들과 입장,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따른 무게와 책임을 고루고루 다뤘다"는 그의 언명은 어떻게 판정해야 할까.

우선 형사 두 사람. 두 사람과 여고생 살인범은 형사와 범인으로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관계이다. 여고생 살인범을 추적하는 가운데서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다가 영화가 전개되어 감에 따라 상호 적대가 깊어진다. 두 사람 중에서는 한수가, 점차 희대의 살인마로 밝혀지는 이 범인과 선명하게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또 다른 살인범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 분)에 대해선 한수와 민태의 입장이 엇갈린다. 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를 제공하는 춘배와 한수는 오월동주처럼 불편한 한 편이 되고, 민태는 단지 형사의 입장에서 춘배를 쫓다가 한수와의 관계에서 처한 수세를 뒤집을 카드를 이 사건에서 찾아낸다.
 
 <비스트> 스틸컷

<비스트> 스틸컷ⓒ (주)NEW


이 네 명이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영화를 끌어나간다. 형사물이 어쨌거나 선악의 대치 없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할 때 이 영화도 그러하다. 선과 악의 이분법은 연쇄살인범이라는 절대악의 설정으로 일단 성립된다. 그러나 선과 악의 구분선은, 절대악을 빼고는 흐릿하다.

극중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보인 마약 브로커 춘배마저 악한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분명 현행법으론 중범죄를 저질렀지만, 복수(復讐)에 관한 고래(古來)의 견해론 개인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그냥 쓰레기 하나를 치운 것에 불과하기에 그 행위가 처벌받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쓰레기' 살인사건을 묵인한 한수의 관점이다. 만일 춘배가 살해한 사람이 '쓰레기'가 아니었다면, 한수의 선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민태에게서 선악의 구분선은 더 모호해진다. 과장되긴 했지만 보통 사람의 도덕관에 가장 흡사하다. 나머지 주변부 인물에게서도 선악의 구분선이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일까.

영화는 선택의 동기는 생략하고 이 감독의 말마따나 "선택에 따른 무게와 책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였다. 감독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전략적 의도를 관철하였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영화에서 생략된 선택의 동기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악(惡)밖에 선택할 줄 모르는 절대 악인을 제외하고 영화 속 등장인물은 영화라는 속성상 윤리적 선택의 극단적인 사례로 내몰린다.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얼핏 공리주의 윤리관으로 비쳐질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인은 범죄이며 그것이 은폐돼서는 안 된다는 의무론적 윤리관이 아주 잠깐 한수의 전 처의 발언을 통해 제기되지만, 언행이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수의 전 처는 한수의 증거인멸 기도를 알아차리고도 한수를 돕는데 그것은 칸트 류의 윤리관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등장인물 모두는 마음속에 한 마리의 짐승을 키우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도 될까. 그것은 절대가치를 부인하고 선택과 행동에서 상대적 가치와 개인의 효용을 우선한 공리주의 윤리관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해도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결론을 내릴 수는 없어 보인다. 양의 개념이든 질의 개념이든 공리주의는 인간의 행동과 선택의 옳고 그름이 인간의 행복(이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이때 기준이 되는 '인간'은 개인이 아니다. 하나의 추상으로서 인간이다.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전체 인간의 이익과 행복에 기여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공리주의 윤리관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악을 행하지만 전체로서 선을 늘린다면, 공리주의 관점에서 그 악은 권장된다. 혹은 그럴 때의 그 악은 악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윤리적 관점이다. 만일 한수처럼 행동한다면 아무리 살인마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도, 또 아무리 피해자가 쓰레기라고 하여도, 경찰이 살인을 묵인한 것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있기 마련인 (공리주의) 윤리와 실정법 사이의 이러한 간극이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산출하는 근원이 된다.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NEW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한수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가 유일하게 윤리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본능적 도덕판단의 상황으로 내몰려 그만이 일관되이 윤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물론 그 윤리관은 공리주의 윤리관이라는 점은 다시 확인해야겠다. 영화 속 등장인물 가운데 한수만이 유일하게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라면 나머지 인물들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형사 두 명과 살인범 두 명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중에서 한수를 뺀 나머지 인물에선 윤리가 소멸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이기심으로 삶을 헤쳐 나가고 윤리가 증발한 실정법의 세계에서 생존을 도모한다. 그들은 이른 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인 국가의 국민이다.

영화 <비스트>에 근거하면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 키우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짐승이다"라는 말로 변경되어야 한다. 사실 "인생은 원래 X같은 것"일진대 '짐승'으로 살아가는 선택은 매우 합리적이다. 반면 한수는 스스로 짐승으로 변하지 않고 짐승 한 마리를 마음속으로 몰아넣은 뒤 그 짐승이 자신을 장악하는 것에 맞서 싸웠다고 할 수 있다(이야깃거리와 관련하여, "누구나 짐승이다"가 한담의 주제라면 '한수의 선택'은 윤리학의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한수는 인생을 X같은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쓴, 스스로 짐승이 되지 않고 짐승 한 마리를 마음속에 유폐하는 데 어렵사리 성공한 'homo homini lupus' 나라의 영웅이다. 비록 그리스 고전 식의 영웅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웅이 아닌 영웅다운 영웅이라면 직면하게 될 운명을 그는 피하지 못한다.

한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방아쇠를 당기게 할지 말지 제작진이 많이 고민하였지 싶다. 영화 속의 선택은 반전을 위해서나 (공리주의적) 윤리의 일관성을 위해서나 타당했다. 아무리 남루한 시대라 하여도 영웅에겐 영웅에게 어울리는 결말이 있기 마련이다.

26일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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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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