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기존 형사물이나 범죄 누아르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 <비스트>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짐승 같은 본성, 즉 약육강식에 따라 철저히 약자를 누르고 살아남으려는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그 짐승의 성질을 두 중견 경찰을 통해 내밀하게 치고 들어간다. 

연쇄 살인범을 쫓는 형사가 도리어 살인을 저지른다. 영화는 이 간단한 설정을 바탕으로 끊임 없이 자기 분열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배우 이성민이 결과를 위헤 물불 안 가리는 형사2팀장 한수 역을, 유재명이 냉정한 겉모습이지만 끊임없이 한수를 견제하려는 형사1팀장 민태 역을 맡았다. 

특히 태수는 표정의 변화가 적다. 한수와는 오랜 동료인데 왜 이렇게 마음으로 멀리하게 되었는지 영화에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곧 승진을 앞둔 상황만 제시될 뿐이다. 배우로선 상당히 해석하기 힘든 캐릭터였을 것.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막연했다"면서 "그럼에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가) 선명하지 않아서 오는 긴장감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영화 <비스트>의 한 장면.ⓒ NEW

 
질투와 욕망 사이에서

유재명은 <비스트>가 서사 기반의 영화는 아님을 강조했다. 전면에 선 두 캐릭터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영화의 한 축이긴 하지만 오히려 카메라는 두 캐릭터의 지친 표정 혹은 오만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눈빛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처음엔 민태의 과거를 감독님과 상의하려 애썼다. 그가 결혼은 했던 건지, 한수와는 한 팀이었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등. 근데 얘기할수록 과거는 중요치 않더라. 단순히 민태에게 승진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런 파국까지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민태 역시 한수 만큼 뭔가 꼬인 인물이었다. 다만 드러내는 방식이 한수와는 좀 다른 거지.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진심으로 행동하는 척하지만, 정상인 듯 비정상인 인물이다. 영화에 그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서사 기반의 영화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린 주인공의 꺾이는 모습을 눈을 통해 보이려 했다는 거다. 관객분들에게 과연 당신 안에 괴물은 없는지 묻는 거지. 그걸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인물의 눈빛으로 말이다. 사실 개연성이나 동기는 배우가 비빌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인데 그걸 삭제하니 기대할 곳이 없어져버리더라. 그래서 더 강하게 에너지를 넣어 표현하려 했다."

 
 영화 <비스트>에서 민태 역할을 맡은 배우 유재명

영화 <비스트>에서 민태 역할을 맡은 배우 유재명ⓒ NEW


연출자인 이정훈 감독은 유재명에게 민태를 전적으로 맡겼다. "감당할 수 없을 디테일을 주문받으면 힘들긴 하다"며 유재명은 "저 역시 감독님과 논쟁하면서 작업했는데 결국 오기가 생겨서 해내고 싶어지더라"고 당시 소회를 전했다. 

그렇게 하나씩 짚어가며 유재명은 민태를 만들어냈다. 아니 민태가 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동료 형사와 갈등하다 승진의 문턱까지 간 민태를 두고 유재명은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민태를 되게 불쌍하게 볼 수도 있다"며 "스스로 합리적인 척 하는 사람이며, 꼰대다. 이런 사람이 진짜 사회의 악이고 괴물"이라 정의했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형사를 맡아왔던 그였다. 아마도 민태는 유재명이 표현한 가장 '나쁜 유형의 사람'아닐까. 끝까지 자기 욕망을 숨긴 채 아닌 척하며 주변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유형 말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한수처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낫다"고 그가 덧붙였다.

"현대인들의 그런 일부 속성을 민태를 통해 보여준 것 같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 결국 서로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영화가 매력적인 건 그런 메시지를 낯선 접근 방식으로 드러내서라고 생각한다. 친절하게 다 설명하면 그저 서사성 있는 액션물로 끝나고 말 것인데, 우리 영화는 그러진 않았다. 용기있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20년을 버틴 저력,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말은..."

부산에서 20년 넘게 무대 공연을 이어왔다. 마흔이 넘어서야 첫 영화에 출연했으며 이후로 단역, 조연을 거치며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배우로 자리매김 한 그다. 대중에겐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비밀의 숲> 최근의 <자백>, 그리고 영화 <내부자들> <명당>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사이사이 그는 저예산 다양성 영화, 연극 무대를 오가며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다.

"스무살에 연극을 만나서 이제 마흔일곱이 됐다. 항상 지하 소극장에서 연극만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 출연을 하게 됐다. 영상 연기를 하겠다는 계획은 딱히 없었는데 어느날 보니 하고 있더라. 물론 불러주시니 한 것이지만, 산다는 건 이상한 일의 연속이고 전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현장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작품 많이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용기를 주고 싶다. 나도 배우를 하고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힘내라고 한다. 제게 냉정한 비평자는 아내다(웃음). 객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날카롭게 의견을 준다(유재명은 지난해 10월 연극 조연출자인 아내와 결혼했다. 오는 7월 아빠가 된다). 

이젠 더 노력해야 할 시점같다. 주연도 하게 되면서 단순히 제 역할만 잘하고 빠지는 게 아니라 끝까지 작품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됐다. 떨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내는 게 중요해졌다. 그래서 작품을 마칠 때마다 비워내려고 애를 쓴다. 잘 환기시켜서 말린 뒤 새 작품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게 점점 잘 안되는 것 같다. 고민하는 상황이다. 여행을 가든, 취미를 갖든 해야 할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읽을 수 있더라. 폭이 넓어진 것에 감사한다." 

 
 <비스트> 스틸컷

<비스트> 스틸컷ⓒ (주)NEW


늦게 시작한 만큼 스스로에 대한 조급함 또한 있음을 그는 인정했다. "다만" 그는 이 단어를 내뱉고 조금 생각을 정리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영화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게 개운하지 않지만 전 제가 늦게 결혼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꼭 서른 무렵에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잖나. 시기가 되면 하는 거지. 연기도 조급할 필요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젊은 친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공부하는 선배들이 많다. 

결혼했다고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은 작품을 제 시기에 맞게 하다가 어느 순간 지치면 멈춰서 사는 거지. 다만 제 연기에 대해 주변에서 동료나 작업자들이 좋다고 해주시면 기분이 좋지. 그럴 때 행복하다. 좋은 배우? '좋은'이라는 단어를 빼고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릴 때 무수히 토론했다. 결국 자유로움아닐까.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게 배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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