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양한 전략을 세운다. 이때 투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종과 궤적을 예상해 공략하는 방식을 '게스 히팅'이라 부르는데, 류현진의 경우 게스 히팅 타자들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5개의 다른 구종이 8개의 다른 속도와 궤적으로 존의 구석구석을 공략하니, 구종을 예상하는 게 15~20% 내외 확률의 러시아 룰렛을 돌리는 것과 같아진다. 타자들의 전략 설계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류현진은 지난 6월 10일, LA 에인절스 경기부터 6월 23일 콜로라도 로키스 경기까지 3경기 연속으로 같은 전략을 준비해온 상대를 만났다. 그 전략이라는 건 체인지업은 정타를 노리되, 패스트볼 유형은 공이 배트에 맞는 히팅포인트를 최대한 뒤로 두고 컨택을 노리는 것이다. 이게 한 번이면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3번 연속 반복되면 전략의 결과로 봐야 한다.
 
지난 한 달간 류현진의 피안타율은 0.243인데, 이는 리그 4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류현진은 현재 평균자책점에서 단순히 리그 1위를 떠나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으며, 지난 한 달간 평균자책점 또한 0.91로 맥스 슈어져(1.03)를 제치고 넉넉하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피안타율은 왜 이렇게 높아진 걸까? 또 이렇게 피안타율이 높은데, 어떻게 리그 1위의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 할 수 있었던 걸까? 정답은 장타율에 있다. 장타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SLG에서 류현진은 0.309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9위를 기록하고 있다. 피안타율에 비해 준수한 성적이다.
 
LA 에인절스 이후 3경기만 놓고 봤을 때, 상대팀은 류현진에게 장타를 뽑아내는 걸 아예 포기 한 것으로 보일 정도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이안 데스몬드가 뽑아낸 유일한 장타였던 1회 2루타는 수비 실책성 플레이였다. 이를 포함한다고 해도, 류현진이 3경기 동안 허락한 장타는 2개의 2루타와 1개의 홈런이 전부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류현진은 무려 20개의 피안타를 허락한다.
 
류현진에 대한 현미경 분석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좌완 선발 류현진이 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방문경기에서 7회를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좌완 선발 류현진이 지난 6월 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방문경기에서 7회를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류현진은 현재 평균자책점 1.27로 기록적인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은 류현진에 대한 현미경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는 전략은 곧 다른 팀으로 퍼져나가 진화한다. 리그 에이스의 숙명이다.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메이저리그의 전력분석팀이 도달한 결론은 단타생산이었다. 개성있는 전략이다.
 
상대팀의 공략 구종은 체인지업으로 보인다. 그런데 단순히 체인지업만을 노리는 건 말이 안 된다. 류현진이 체인지업을 던지는 비율은 전체의 26.1%. 나머지 73.9%를 버리는 전략이 가능할 리 없다. 이 전략의 핵심은 노렸을 때 장타의 가능성이 높은 체인지업을 노리되, 패스트볼을 단타로 컨택 할 수 있게 폼을 조정한 것이다. 대신 궤적이 다른 하이패스트볼은 포기한다. 구종가치가 낮은 커브도 포기한다. 컷패스트볼과 투심패스트볼과 같은 패스트볼 유형은 가능한 컨택하려 노력해본다.

이런 방식이면 타자들의 공략범위에 42.1%의 포심이 포함되어, 총 68.2%의 공을 공략 할 수 있게 된다. 해볼만해진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메이저리그의 야구가 작전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다. 야구를 빅볼과 스몰볼로 거칠게 나눌 수 있다면, 류현진의 대응법은 스몰볼이다. 메이저리그가 빅볼을 좋아한다는 건 편견이다. 이들은 이길 수 있다면 뭐든 다 한다. 
 
최근 메이저리그가 장타를 추구하는 이유는 이론적으로 장타의 득점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퍼 스윙'과 '풀스윙'과 같은 타격폼이 리그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어차피 최근 투수들은 구종의 다양함보다는 빠른 구속과 복잡한 무브먼트로 타자를 압도하려 한다. 예측을 하기도 쉬워졌다. 투구 이론은 '구위'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타격 이론은 장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20년 전의 야구를 호출해 버렸다.
 
이 단타 전략은 수비부담을 증가시킨다. 땅볼 생산이 주특기인 투수에게 대놓고 땅볼을 공략하는 전략을 들고 나오니, 과거와 타구 궤적이 달라진다. 누적된 수비 데이터의 교란이 일어나며, 이는 수비 시프트의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 류현진의 높은 피안타율의 비밀이다. 또한 LA 다저스는 플래툰과 멀티포지션을 즐겨쓰는 구단이다. 수비수가 고정적이지 않고, 한 명의 선수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다. 장타를 위주로 한 경기 운영에서는 수비의 부담을 약간 줄여서라도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써볼 만한 전략이다.

하지만 류현진이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는 약점을 보이는 전략이다. 최근 류현진 공략법은 단순히 류현진만 공략하는 게 아니라, 다저스의 전략과 수비역량까지 파고든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단타에 집중하는 전략은 어느정도 성과를 보인 것 같다. 류현진은 지난 3경기 동안 2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5점을 실점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그동안 류현진은 뚫을 수 없는 방패였다.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2개월이 지나, 창의 반격이 시작 된 것이다. 류현진은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무서운 기세, 그러나...

류현진 대응책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단타'라는 점에 있다. 득점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볼넷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반면, 안타에는 무덤덤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실제로 지난 3경기 동안 류현진은 20개의 안타를 내주면서도 2점의 자책점밖에 주지 않았다. 다저스가 류현진의 경기에서만은 멀티포지션을 자제하고, 수비를 강화시킨다면 실점 또한 줄어든다.

류현진은 여전히 7~8회 이상을 1~2실점으로 소화 할 수 있는 리그 최고 에이스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단타전략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상대가 이런 극단적인 작전을 쓴다는 건 그만큼 최근 류현진의 기세가 무섭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경기가 반복될수록 새로운 수비 데이터가 생산되며, 스탯캐스트의 정밀한 분석으로 다시 수비 시프트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나면 류현진의 피안타율은 다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류현진은 콜로라도 전에서 체인지업이 공략당하는 걸 파악하자, 곧바로 더욱 느린 '커브'의 구사율을 늘리며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렇게 동네 마실 나가듯 주력 구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전 세계에 류현진 한 명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커브는 류현진이 구사하는 여러 구종 중 유일하게 플러스 피치가 아니며, 로케이션 또한 일정치 않은 편이다. 만약 커브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우리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피네스 피처(기교파 투수)의 정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사실 류현진이 지금 기량을 리그끝까지 유지하면, 이미 그는 피네스 피처의 정점이다).
 
지난 콜로라도 로키스와 LA 다저스의 경기는 여러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를 남기며, 창과 방패의 대결을 선언한 것 같았다. 류현진의 다음 경기는 가벼운 단타도 장타로 돌변하는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 필드다. 이 경기에서 류현진은 과연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까? 레전드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류현진의 여름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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