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우성은 그저 잘생긴 미남 배우였었다." 

이 문장만큼 배우 정우성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한데, 자세히 보면 어딘가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한때'와 '그저'가 붙었고, '였었다'는 과거형이 눈에 들어온다. '정우성이 만난 난민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란 책의 저자 소개다. 

저자 소개는 대체로 저자 본인이 쓰거나, 저자의 의견을 반영해 출판 편집자가 작성하기 마련임을 감안하면, 최근 출간된 이 에세이집의 저자 소개 역시 정우성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터. 나머지 문장들에서도 '다른' 무엇이 감지된다. 이를 테면, 그의 필모그래피 중 '변신'이란 표현과 함께 영화 <똥개>의 주인공 '철민'을 꼭 집어 설명한 대목이 그랬다. 

"<비트> <태양은 없다> 등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던 젊음과 생기, 자유로움 등의 이미지를 가진 그야말로 '스타'였으나 그는 2003년 곽경택 감독과 함께 큰 변신을 하게 된다. 지저분한 옷차림과 어리숙한 표정, 걸지게 나오는 사투리의 철민을 통해 낯선 정우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연기자'로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또한 틈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 현장에서 연출 감각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며 감독의 꿈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정우성이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던 영화 <똥개> 속 철민은 확실히 '잘생김'으로 대변되는 그의 '스타성'을 버린 첫 번째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던 시골/뒷골목/건달이자 청춘인 '철민'은 아마도 정우성이 연기한 첫 번째 (남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KBS


'정우성이 만난 난민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일종의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쓴 에세이에서 정우성이 이 <똥개> 속 철민을 연기하면서 변신하고 성장했음을 강조한 것은 확실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처럼 그저 방황하는 액션영화나 청춘영화 속 아웃사이더가 아닌 사회의 주변부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 철민을 연기하며 성장과 변신을 경험했다는 정우성. 그런 그의 어제와 "우리도 과거에는 난민이었다"고 말하는 정우성의 오늘은 분명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돼 있는 듯 느껴졌다. 

마침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 9뉴스 >에 출연한 정우성의 인터뷰 역시 그러한 정우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문에 현답", 이어진 정우성의 진중한 답변들 

앵커가 "불편한 질문"이라며 던진 질문에 정우성이 잠시 "글쎄요"라며 숨을 골랐다. 편하지 않을 순 있지만, 정우성이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정우성씨가 난민 옹호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 스타 배우로 편한 소리, 멋진 소리만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 즉 악플을 봤느냐는 질문에 정우성은 "멋진 소리…, 멋진 건 좋죠"라며 답을 이어갔다. 꽤나 진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남편이 집 앞에서 총을 맞아서 쓰러지고 그 남편의 주검을 집안에서 아이들과 바라보고. 용기를 내서 남편의 주검을 집안으로 들인 다음에 집안에서 나흘 동안 남편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엄마와 그 아이들.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덮이고 머리카락도 다 잃어버린 청각장애를 가진 그 꼬마아이의 사연. 그 사연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듣고 그걸 제 멋을 위해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전달한다고 하면 제가 천벌을 받을 사람이겠죠."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KBS

 
"우문에 현답"이라는 앵커의 '댓글'이 돌아왔다. 이렇게 5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정우성에게 줄곧 이어진 질문은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인식들이었다. 그에 대해서도 정우성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잘못된 인식들을 정정해 나가고 있었다. 예컨대 이런 식. 

"글쎄요. 저는 꼭 그렇게만은 생각 안 하고, 또 느낄 수 없거든요. 사실 지난 1년 동안 난민에 대한 여러 담론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후원은 늘어나는 추세거든요. 어떻게 보면 난민에 대한 이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지가 않죠.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오고, 인터넷에 부정적인 소식들, 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 이런 것들이 온라인에 휘몰아치면서 여러분이 귀기울이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모르기 때문에 이해 부족으로 염려를 같이 하신 것 같아요. 염려의 지수라고는 얘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반대지수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KBS의 카메라에 잡히자마자, 예의 그 '잘생긴' 미소를 날렸던 정우성. 그러나 이어진 고강도 질문에 잠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우성은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난민, 새로운 이웃의 출현'이란 주제로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정우성은 확실히 지금, 여기에서 난민이란 다소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에 나서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친근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누구보다 쉽고 친절하게 대한민국 국민들이 '난민'에 대해 가진 선입견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바로 이렇게.   

"그러니까 난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선입견 있는 것 같아요. 난민은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요소가 많은 집단이라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우려들이 있고. 거기에는 또 종교적인 시각의 이해 차이도 있는 것 같고. 내국인의 범죄 수치보다 외국인의 범죄 수치는 늘 적잖아요.

특별히 범죄 수치를 적용하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통계를 내는 것 자체가 불평등 요소가 되기 때문에 난민을 절대적인 범죄를 일으키는 집단 이렇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시청자와 국민들이 여러분들 곁에서 응원할 겁니다. 힘내세요!"

지난 2017년 12월,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며 100일 넘게 파업 중이던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새노조)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응원 메시지를 보내 KBS본부 구성원들과 국민들 모두를 놀라게 했던 정우성. 영화 <강철비> 개봉이 한창이던 이듬해 1월, 극장에서 배우 정우성을 만난 KBS 구성원들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우성씨가) KBS 사장님 하면 안 돼요?"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파업 중이던 KBS에 출연해 앵커가 전혀 예상 못했던 "KBS 정상화"를 먼저 언급했던 그 배우 정우성은 이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세계 난민의 날'에 공영방송과 정식 인터뷰를 하는 '변신' 혹은 '성장'이라 하기보다 '변화'가 더 걸맞을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똥개> 속 철민을 연기하던 '잘생긴' 배우이자 '스타' 시절 정우성은 과연 지금의 이러한 변화를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난민' 문제가 외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역사와 맞닿아 있음을 강조하는 강단 있는 모습은 정우성도, 우리도 분명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난민 하면 굉장히 멀리 떨어진 지역의 일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작년 제주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실질적인(실질적으로) 국제사회 안에 있는 우리의 일이다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사실 우리나라도 6.25 그 전에 일제시대, 임시정부도 난민정부였고, 6·25 때도 국내 실향민 발생했고 그때 유엔군, 유엔에서 만든 유엔한국재건기구 라는 곳에서 저희 한국의 재건을 많이 도왔고. 재건기구가 하는 일이 결국에 유엔에이치시알 난민 보호하는 일의 연장선입니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씨ⓒ KBS


지난 5월, 정우성은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증인>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확실히 놀라운 수상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정우성의 사회적인 활동과 영화의 주제, 그리고 배우 정우성의 연기가 잘 어우러진 수상 결과라는 평가와 함께 영화 외적인 활동에 대한 평가가 곁들여진 것 아니냐는 평이 공존했다.

이처럼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 외에 KBS를 향한 응원과 같은 외적인 발언과 행동들에 대해 정우성의 소속사는 어떤 반응을 나타내고 있을까. 최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답이 있었다. 농담으로 출발해서 웃음으로 끝난 대답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회사가 힘들어 해요.(웃음)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일은 대부분 제 선에서 알아서 처리했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들이 종종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한 번은 직원들이 '왜 소속 배우 일을 기사로 봐야 하죠?'라고 하길래 이젠 웬만하면 다 공유하려고 해요. 요구하고 원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요. 조율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무서워요 아주. 하하."

공유와 조율. 확실히 정우성은 한국 배우 중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랜 꿈이었던 감독 데뷔를 앞두기도 한 그는 영화 <강철비2>에서 대통령을 연기할 계획이다. 덕분에 "중졸 주제에 니가 무슨 대통령을?"이란 댓글도 받았다고 한다. 배우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두 가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공유' 중인 정우성은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소셜 미디어에 글을 게시했다. 

"지난해 7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1분마다 25명의 사람이 모든 것을 -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 남겨둔 채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피신했습니다. 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 난민의 날 난민과 함께 걸어주세요."

정우성의 미래가, 밝은 내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우성의 '내일'이 "한때 정우성은 그저 잘생긴 미남 배우였었다"로 끝나지는 않으리란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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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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