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곤 '누군가의' 자리에 '나의'라는 말을 넣어 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죽음은 그다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삶은 그다지 즐거운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태어나 살고 죽는 건,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섞여 있어도, 존재는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무력하다는 것 말이다. 심지어 스스로 만든 사연조차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인간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도 못하다. 작은 감정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봤다. 이 영화엔 내가 생각했던 '죽음'이 나온다. 주인공 여자의 죽음과 더불어, 장면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죽임당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죽진 않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삶이 뒤틀린 남자도 나온다. 남자는 누군가의 죽음 만큼이나 무력한 삶을 산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주)노바미디어

 
10대 소년인 남자 주인공 마이클(배우 데이빗 크롯, 랄프 파인즈)은 비 오는 날 몸이 아파 거리에 구토를 한다. 주인공 여자인 한나(배우 케이트 윈슬렛)는 마이클을 모른 척하지 않고 그의 토사물을 치워준다. 딱딱한 규율이 있는 집에서 자란 마이클은 자신의 토를 아무렇지 않게 치워주고 자신을 챙겨주는 한나에게 호감을 느낀다. 

둘의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마이클은 30대 여자인 한나에게 곧바로 빠져든다. 병이 낫고 한나에게 감사를 표하러 찾아간 마이클은 한나에게 애정적으로 끌려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된다.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엔 장면이나 시간적인 할애를 크게 하지 않았다. 감독은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집중을 하지 않은 듯 보였다(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이 작품은 둘의 '사랑'만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둘이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두 인물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갑자기 사라진 한나, 마이클이 그녀를 다시 만난 곳은...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주)노바미디어

 
마이클은 한나와의 연애를 소중히 여겼다. 다른 누가 어찌 보든 둘이 사랑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나는 왠지 모르게 마이클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이클에게 항상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한나는, 단순히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어떤 필요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이클도 분명 느꼈을 테지만 그것을 파헤쳐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비밀스러운 향과 자신을 알게 모르게 밀어내는 경계심 같은 것, 그런 것조차 마이클은 그녀와 사랑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항상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쪽도 마이클이었고 그녀와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 한 것도 마이클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마이클 또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린 듯했다. 점점 성의 없게 책을 읽는 마이클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걸까.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 제안을 받은 한나는 마이클에게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고 짐을 챙겨 돌연 사라져버린다. 사라진 그녀의 집에 간 마이클은 상실감에 주저앉는다. 그 후 몇 년, 마이클은 그녀를 그리워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입학해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학교 수업의 연장으로 재판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몇 년간 그리워했지만 한 번을 볼 수 없었던 가장 사랑하던 한나. 그녀는 피고인으로서, 허름하게 나이든 중년의 모습으로 서 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변론하며 말이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사실 원작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한 장면이다) 삶에서 잘못한 부분이 '사랑'과 어떻게 연관 지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치를 더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그래야만 하는 것과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은 어떤 궤를 같이 하는지. 어찌 됐든 한나는 잘못을 저지른 입장이었고, 법에 무지했든 아니든 그녀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명백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시 법을 따라 수행했다 하더라도) 수백 명을 죽인 사람이었고 누구도 함부로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공감해선 안 됐다.

그나마 작품을 보는 입장에서 그녀의 상황에 조금 안타까움을 표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녀가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것, 그렇게나 타인의 입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그녀의 모습, 그녀가 문맹이었다는 점이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한나에게 가장 큰 치부는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글'에 대한 무지는 그녀를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격을 뺏어버리는 치부였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그 치부는 그녀를 옭아맸다. 심지어 그녀는 재판에서조차 다른 이도 동참했던 죄를 스스로 모두 떠안을 만큼 그 치부가 노출되기를 꺼렸다. 그녀는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 안에서 삶을 보낸다. 

마이클은 한나가 재판에서 제대로 변론을 하지 못한 이유가 그녀 스스로 문맹인 것을 밝히기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을 안다. 한나가 그만큼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했다는 것을 안 마이클은 그녀를 대신해 증언을 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일정 부분 은폐한 것이다. 한나는 마이클 보다 거의 20년은 더 나이 든 사람으로, 남은 시간마저 완전히 사회와 단절된 곳에서 지내다보니 어쩐지 더 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 녹음해 보낸다. 한나는 테이프를 받고 마이클이 자신을 잊지 않고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한나는 마이클의 도움으로 감옥 안에서 글을 한 자씩 공부해 깨우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글을 알게 된 한나는 처음으로 마이클에게 편지를 한다. 답장을 달라고. 하지만 마이클은 자신이 읽어줄 책을 다 녹음한 후에 더이상 한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마이클이 평생을 가지고 살던 사랑에 대한 숙제와도 같은 짐을 털었다는 것을 표하기 위한 의식처럼.

한나가 남긴 편지에 오열한 마이클

그 후 한나는 모범수로 조기에 출소될 예정에 놓인다. 간부들은 그녀가 가족도 없고 친구도, 친척도 없는 것을 고려해 매번 테이프를 녹음해 보낸 마이클에게 연락한다. 그녀가 사회에 나가 믿고 살 만한 사람이 없다고. 그녀의 재활을 도와주겠냐고. 마이클은 선뜻 부탁을 받아들이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출소 며칠을 앞두고 면회를 간다. 할머니가 된 한나를 몇십 년 만에 다시 접한 마이클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떼기 어렵다. 어색한 기류가 둘 사이에 흐르고 용기 내 손을 내민 한나의 손을 마이클은 잡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생각을 많이 했냐고 묻는다. 한나는 서로가 만났던 연애시절을 물은 것이냐 되묻지만 마이클은 그녀가 나치 정권 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질문이었다며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한나는 녹음 테이프를 보내주던 마이클과 달리 냉정해진 마이클 앞에서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유대인들을 가둬놓고 몇백 명을 죽이고서도, 법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 말했던 한나의 모습이 무색하게, 마이클의 차가운 태도 한 번에 그간 몰랐던 수치심을 전부 다 느낀 것이다. 한나가 글을 깨우친 것뿐만 아니라, 글을 깨치게 해준 마이클 덕분에 온갖 수치와 후회와 반성을 한 번에 깨달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마이클이 한나의 출소일에 맞춰 꽃을 사들고 오지만 한나는 자신이 공부한 책을 더미로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 목을 맨다. 한나는 유대인 가족을 위해 쓰길 바란다며 얼마 없는 돈을 마이클에게 맡긴다. 죽고 사라진 한나의 방에서 마이클은 그녀가 남긴 편지를 보며 오열한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주)노바미디어

 
사실 한나가 마이클과 마지막으로 만나 나눈 대화에 의문이 많다. 한나는 마이클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죄의식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던 걸까. 한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점에 남에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을까. 그 순간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숨기고 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걸까. 자신을 독려하고 있다고 믿었던 마이클마저 자신을 범죄자로 보고 차갑게 대하는 모습에 그녀의 남은 몇 년의 삶이 무너진 걸까. 많은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서 평생의 숙제였던 '글'을 상징하는 책더미를 밟고 올라 죽은 것이 한나의 마지막 남은 죄의식을 드러내준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극 중 한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가장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는 '살인'을 도왔다. 물론 체제나 규율이 만든 곳에서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체제를 따르거나 그 체제를 벗어나 비참하게 사는 것일 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법과 사회가 만든 것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그렇게 되면, 잘못만 남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사라지게 된다. 무력한 인간이어도 똑같이 그 무력함을 따라간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진 않다. 

다만 한나 같은 캐릭터도 다르게 생각해보면, 배우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엇이든 배우지 못한 채 자랐고 그저 사회가 정한 규율 대로 따라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나가 기댈 곳은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줄 사람과, 다수가 따르는 규율이었을테니 말이다. 

무지는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단순히 배우지 못한 것이 하등하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를 잘못에 대해서 결과를 생각하지 못할 것, 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할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지를 쥐고 흔들 힘은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그렇다. 

마이클은 한나라는 여자를 만나 평생을 사랑에 매여 살았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한나를 향한 마이클의 마음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지와 무지에 대한 수치심으로 뒤틀려간 연인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정상적이지 않을 것 같다. 한나의 죽음은 그녀 자신에게는 속죄일지도 모르지만, 죽음으로 삶에서 있었던 복잡한 일에 대한 끈을 매듭지으려 했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다. 죽어버린 한나도, 이제는 사라진 한나를 그리며 또 다른 죄책감을 안고 살 마이클도 딱 다른 인간들만큼은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씁쓸한 결말이다. 마이클의 사랑에만 집중하며 영화를 보기엔 아련함 말고도 남는 감정이 있다. 사랑도, 살아가는 것도, 감정대로만, 안다고 생각한 대로만 행동해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그만큼 약하고 이기적일 때도 있고, 다면적이라는 것. 

잘못이 있든 없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작품들이 좋다. 인간의 낱낱을 보며 난 또 안도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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