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의 전봉준(최무성 분).

<녹두꽃>의 전봉준(최무성 분).ⓒ SBS

   
동학혁명을 다루는 SBS 드라마 <녹두꽃>은 최근 방송에서 동학혁명이 청일전쟁으로 비화되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동학농민군의 기세에 눌린 조선 정부가 청나라를 불러들이고, 청나라가 파병을 준비하자 일본도 덩달아 나서고, 그로 인해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벌이게 되는 과정이 14일(30회) 방송에서 묘사됐다.
 
이 시기 역사를 다루는 사극들이 항상 빠트리는 것이 있다. 대다수 사극들은 이 문제를 동아시아 국제정치 차원에서만 다룬다. 동학혁명이 청일전쟁으로 비화되는 과정에 세계 정치의 역학 구도가 작용했다는 점은 전혀 취급되지 않고 있다. 당시 청나라나 일본 어느 쪽도 동아시아 최강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청나라가 가장 강했지만, 그렇다고 청나라가 동아시아 최강은 아니었다. 
 
1894년 당시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세계 최강인 동시에 동아시아에서도 지역 최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타 국가들이 마음대로 전쟁을 벌여 두 나라의 이익을 침해하기는 힘들었다.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이려 해도, 양국의 의중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국과 러시아는 저 멀리 유럽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지만, 당시 그들은 동아시아에도 전진 기지를 두고 있었다. 영국은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승리의 대가로 청나라로부터 홍콩을 할양받았고, 러시아는 1856년 제2차 아편전쟁의 평화협상을 중재해준 대가로 청나라로부터 두만강 위쪽 연해주를 할양받았다. 오늘날의 미국이 미군 기지를 발판으로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과 약간 비슷한 방법으로, 1800년대의 영국·러시아가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1871년 신미양요가 서둘러 종결된 이유

1800년대 세계 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영국과 러시아의 전 세계적인 대결이다. 따뜻한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펼치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의 대결이 그야말로 세계적 범위로 전개됐다. 터키 서쪽의 발칸반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에서 이 같은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다. 동아시아 경우에는, 일본 북쪽 캄차카반도에서 1854년에 두 나라의 정면 대결이 있었다.
 
그런데 이 대결은 1860년대부터 소강 국면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양국은 가급적이면 직접적 대결을 자제하고 숨 고르기를 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틈을 타서 2진급 국가들인 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2진급 국가들은 영국이나 러시아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경쟁을 펼쳤다. 세계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힘을 행사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의 조선 침공인 1866년 병인양요, 미국의 조선 침공인 1871년 신미양요가 전면전이 아닌 제한전 양상을 띤 채 서둘러 종결된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영국과 러시아가 이 시기에 특히 주목한 곳이 바로 조선왕국이다.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가 인접한 조선 땅에서 보다 나은 부동항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이때부터 세계 각국이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동아시아인들의 머릿속에 입력돼 있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로서의 한반도'는 1860년대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전략적 관념이다.
 
이 시기에 영국과 러시아는 한반도가 예측 불허의 땅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자신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뜻밖의 사태가 조선에서 벌어지면 자신들의 패권에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제3국의 안정적 관리를 선호했다.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제3국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이 나라에서 벌어질 예측 불허의 사태를 막아주기를 기대했다. 그것이 자신들 상호간의 직접 대결을 회피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의 대외정책에 '훈수' 두기 시작한 청나라
 
1882년에 한양 주민들과 하급 군인들의 반란인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청나라는 고종 임금의 요청을 받아들여 군대를 파견해 군란을 진압했다. 그런 뒤, 고종의 의사를 무시하고 내정간섭을 실시했다. 청나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과 러시아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1869년부터 1882년까지 청나라에 근무한 영국공사 토마스 웨이드(Thomas F. Wade)는 '러시아가 조선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청나라가 조선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청나라 정부에 전달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청나라를 대리인으로 삼아 한반도를 관리하고 싶어했다. 이 같은 영국의 제안에 따라, 청나라는 1879년부터 조선의 대외정책에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러시아도 청나라가 조선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한러관계 100년사>에 실린 임계순 한양대 교수의 논문 '한러 밀약과 그 후의 한러관계'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영국과 정면 대결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러시아는 '차라리 청나라가 조선을 장악하는 편이 한반도를 안정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 대체하는 새로운 대리인 되고자 했던 일본
 
 청일전쟁 당시의 서해해전(황해해전)을 묘사한 일본 판화.

청일전쟁 당시의 서해해전(황해해전)을 묘사한 일본 판화.ⓒ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그 같은 영국·러시아의 계산에 힘입어 청나라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로 12년간 조선 문제에 간섭할 수 있었다면, 1894년에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동학혁명을 진압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러시아의 계산이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이 청나라를 대체하는 대리인이 될 만하다는 양국의 판단이 그런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드라마 <녹두꽃>에서는 일본군이 조선에 상륙한 뒤부터 청일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사이에 일본의 활발한 국제 외교전이 있었다는 점이 소개되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보낸 뒤부터 세계 각국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쳤다. 조선 땅에서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을 묵인해달라고 세계 각국에 요청했다. 청나라를 대체하는 새로운 대리인이 되고자 그런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한러관계 100년사>에 실린 역사학자 김원수의 '청일전쟁 및 삼국간섭과 러시아의 대한정책'에 따르면, 무쓰 무네미쓰 일본 외무상은 '어떻게든 전쟁 구실을 찾아내라'고 조선주재 공사관에 지시해놓은 상태에서, 영국·러시아 및 미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을 상대로 중립과 묵인을 부탁하는 외교전을 펼쳤다.
 
그런 외교전의 결과로 일본은 영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묵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영국은 '러시아가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한, 우리도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러시아는 '영국이 움직이지 않는 한, 무리하게 나설 필요는 없다'는 판단 하에 암묵적 응원을 일본에 보냈다.
 
당시 국제사회가 저지른 오판

영국·러시아는 '청나라를 대신해서 일본이 조선 정부를 장악해도 우리나라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동학혁명을 진압한다 해도 동아시아 질서가 바뀌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판단은 10년 뒤에 오판으로 드러나지만, 이 당시에는 그것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정치에까지 일대 타격을 주게 된다.
 
조선에 군대를 보내놓은 일본 정부는 세계 각국이 청일전쟁을 묵인한다는 확신이 생기자, 한양의 궁궐을 장악해 조선 정부를 자기 편으로 만든 뒤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이처럼 동학혁명이 청일전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단순히 청나라·일본만의 개입이 아니라 영국·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묵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의 국제사회는 일본군이 청나라군 및 동학군을 진압하는 것이 머지않아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다. 이 일이 러일전쟁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러시아의 패전 및 체질 약화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레닌의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본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만 봤던 것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