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 <그린북>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인 김현경씨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은 인간의 존재와 환대에 대해 탐구한다. '사람, 장소, 환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갖는 자리는 장소들에 대한 권리, 또는 우리의 몸이 장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장소에 대해 권리를 갖고, 손님이자 주인으로서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어떤 곳에 위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장소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 자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는 예민한 감각이 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서 상대가 나와 우리에게 환대를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특정한 장소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만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은 배려의 대상이 된다.
 
그런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취급을 당해야 할까. 적이라면 당장 내쫓아야 한다. 단순한 공격의 대상이 될 뿐이다. 환대받진 않지만 적이 아닌 사람 중엔 기계와 같은 대접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는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기능을 제공할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기계를 대하듯이 걸맞은 작업을 수행하라 명령한다. 
 
집이라는 장소는 사람이 자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잘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환대받는 사람이어야 그 곳에서 잘 수 있다. 나와 닮은 점이 없는 사람은 집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닮지 않았어도 친구라면 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린북

그린북 ⓒ 피터 패럴리

 
영화 <그린 북>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섬세한 상류층 흑인 피아니스트와 거칠고 터프한 백인 운전기사가 인종차별이 잠재한 남부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피아노 연주를 위해 남부로 향하는 그들을 기다리는 건 흑인의 존재에 분노할 수 있는 극단주의자와 흑인은 사람취급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찰관이다.
 
한편 이 영화는 '집'과 '환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집도 절도 없는 외로운 인간이 누구에게 환대받는 사람이 되어 타인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남을 이해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이 그려진다.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그린 북'에는 남부에 위치한, 흑인을 받는 숙박업소가 적혀 있다.
 
주인공 돈 셜리는 흑인 최상류층이다. 그는 카네기 홀에 자신만의 위한 공간을 마련했을 정도의 재력가다. 그의 본 직업은 음반사와 계약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엄청난 재능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을 지녔기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의 방은 상아와 왕좌와 같은 고급 의자로 꾸며져 있다. 그는 동시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어법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은 미국 남부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찾은 사람은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운전기사다. 그래서 허세로 가득 차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토니가 고용된다. 그는 이탈리아계 백인으로, 재산이 없어 물건을 주고 전당포를 이용해야 할 만큼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영화의 씨줄은 인종이고 날줄은 계층이다. 두 주인공은 미국 남부로 향한다. 영화가 진행되고 미국 남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인종 차별은 극심해진다. 처음에는 피아노에 쓰레기가 버려지는 정도였지만, 가면 갈수록 인종차별이 심해져 지나가는 백인들이 돈 셜리를 쳐다보고 묘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가게에서는 냉대를 당하기도 한다. 모욕적인 욕설은 당연히 예상했겠지만 공권력과 경찰도 돈 셜리를 위협한다. 일부 지역에서 흑인 통금이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운전기사 토니는 백인이라 인종 차별을 당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모시는 돈 셜리를 직접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계층이 다르기에 돈 셜리와 토니의 문화는 다르다. 돈 셜리는 토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돈 셜리는 도덕적으로 엄격해서 물건 하나 길에 버리는 일조차 용납을 못 하고, 상류층이 연회에 오는 상황에 적합한 발음과 어법을 못 쓰는 것도 싫어한다.
 
돈 셜리는 쉬는 시간 동안 주사위 도박을 하는 토니를 경멸하고 불쾌하게 여긴다.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 대한 차가운 냉대가 그대로 토니에게 전달된다. 또한 돈 셜리는 토니에게 좀 더 적합한 발음의 영어를 쓰고 이탈리아식 이름인 '발레롱가'도 소개자가 소개하기 쉽도록 줄이라고 말하지만, 토니는 분노할 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돈 셜리는 인종과 계층이라는 두 가지 실에 모두 닿아 있지만 어느 실도 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흑인이지만 매우 부유한 음악가다. 농토를 일구고 서빙을 하는 대다수 흑인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는 음악으로 먹고 살지만 서민들이 즐기는 노래는 알지 못한다.

어떤 흑인들은 아예 그와 같은 성공한 흑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상아로 치장된 방에서 왕좌에 앉은 그는 공감할 사람이 없다. 백인 상류층은 그의 공연을 즐기고 건물에 그를 들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돈 셜리가 자신과 같은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연주 기능을 제공하는 기계에 가깝다. 
 
백인답지도 않고, 흑인답지도 않고, 남자답지도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분노해도 공감할 사람이 없다. 그에게 문을 여는 장소는 '그린 북'에 등록된 한정된 곳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곳이 그를 환대하는 것도 아니며, 부유하지 않은 흑인들은 그를 환대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공통점이 없는 타인도 환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운전기사 토니는 어려운 말도 전혀 모르고, 심지어 몇 가지 간단한 단어는 철자도 모른다. 잘나고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해를 할 줄 안다. 흑인이라고 무시당하는 흑인이 화가 날 거라는 사실, 음악가가 옷장에서 지내야 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안 된다는 사실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흑인이라고 비오는 날에 비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를 낼 줄 안다. 그리고 남의 자아를 존중할 줄 안다. 자신의 집에 들어온 타인을 받아들일 줄도 안다.
 
돈 셜리는 토니의 이해를 받으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 걸음 나아간다. 남부에서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기에, 그는 용기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인종 차별을 참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그의 인생은 토니의 이해를 끌어냈다. 여행의 마지막에서, 돈 셜리는 유색인종이 사는 한정된 숙소만을 찾으며 고생했던 과거와 달리 백인이 사는 토니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는 환대를 받는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지만, 인종차별이라는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인종과 계층, 문화에 대해 다루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대해야할지에 대해 논한다. 돈 셜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고뇌하는 주체이고, 토니는 허세와 진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기에 사람과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곳이 적힌 그린 북을 들고 환대할 곳을 찾기 위해서는 타인의 이해와 나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영화가 전하는 사실은 담백하고 무겁다.
그린북 흑인 백인 인종차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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