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내부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김선아 전 집행위원장이 본인의 SNS를 통해 부당하게 해임되었다고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이사회 측에서는 영화제의 취지와 공동체성을 훼손하여 임기만료에 의한 재신임안이 부결되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이혜경 이사장이 사퇴하였고 새로운 집행위원장에는 박광수님이 임명되어 현재 업무를 진행중이다.

당시 오랜 시간 동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응원하고 매년 기다려온 사람으로서 적잖은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공존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예산 삭감이라는 무거운 상황을 맞게 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이번 계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기를 응원하고 기대한다.

당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매년 5월 말, 6월 초에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는 8월 말, 9월 초에 영화제 일정이 진행된다. 앞서 논란이 되었던 영화제 내부 문제가 영화제의 일정을 뒤로 미루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관객들 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년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을 추억해보고자 한다.

2014년 제16회 개막작
그녀들을 위하여(야스밀라 즈바니치, 보스니아) ; For theose who can tell no tales, 2013

  
 영화 '그녀들을 위하여' 메인 포스터

영화 '그녀들을 위하여' 메인 포스터 ⓒ 영화 '그녀들을 위하여'

 
<그녀들을 위하여>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여성에게 행해진 성폭력, 강간 등 전쟁 폭력을 다룬 영화다. 현재는 관광과 휴양지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보스니아. 그곳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한 숙소에 머물게 된 킴 버르코는 알 수 없는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숙소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무슬림 여성들을 강간했던 일종의 강간 수용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호주 여행자 킴 버르코의 시선으로 해석해낸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영화는 지금도 어느 내전 지역에서는 힘없는 여성을 상대로 강간이라는 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삶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란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2015년 제17회 개막작
마이 스키니 시스터(산나 렌켄, 스웨덴) ; My Skinny sister(Min lilla syster), 2015

 
 영화 '마이 스키니 시스터' 메인 포스터

영화 '마이 스키니 시스터' 메인 포스터 ⓒ 영화 '마이 스키니 시스터'

 
<마이 스키니 시스터>는 어린 자매가 성장하는 일상의 모습을 통해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스텔라는 예쁜 피겨 스케이터 언니를 둔 통통하고 귀여운 사춘기 소녀다. 언니인 카티야는 최고만을 기억하는 경쟁사회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스텔라는 언니의 섭식장애를 알게 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니와의 비밀을 유지해나간다. 관객 입장에선, 카티야를 볼 때는 사회가 만든 심리적 압박감에 얼마나 힘이 들지 공감하게 되고 스텔라를 볼 때는 그의 당차고 솔직한 모습에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아이의 모습을 통해 경쟁과 강요가 가득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2016년 제18회 개막작
서프러제트(사나 개브론, 영국) ; Suffragette, 2015

 
 영화 '서프러제트' 메인 포스터

영화 '서프러제트' 메인 포스터 ⓒ 유니버셜 픽쳐스

 
<서프러제트>는 여성운동의 시작인 '여성참정권'을 다룬다. 영화는 여성운동의 획을 그은 인물이 아닌, 남편과 아들을 하나 둔 지극히 평범한 세탁 공장의 여성 노동자 모드 와츠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모드 와츠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희롱마저 감수하며 노동을 한다. 또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러한 일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여자다. 영화는 그런 그의 의식이 바뀌는 모습, 주권을 찾으려 노력하고 싸우는 모습을 그려나간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무언가가 과거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일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투쟁을, 누군가는 교육을, 누군가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이끌어내야 한다. 영화는 모드 와츠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희생을 통해 현재 많은 여성들이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고 알려준다.

2017년 제19회 개막작
스푸어(아그네츠카 홀란드, 폴란드 외) ; Spoor, 2017

 
 영화 '스푸어' 메인 포스터

영화 '스푸어' 메인 포스터 ⓒ 영화 '스푸어'

 
스푸어(Spoor)는 야생 동물의 흔적, 발자국이라는 뜻을 가진다. 젊은 시절 건축기사로 일을 했던 듀세이코라는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동물을 사랑하고 채식을 하는 듀세이코는 사랑하는 반려견 두 마리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듀세이코의 반려견들이 실종되고 이웃에 사는 밀렵꾼들이 차례로 사망한채 발견된다.

밀렵꾼들의 사체 근처에서는 들짐승들의 자취가 발견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진짜 밀렵꾼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 누군지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지만, 이내 영화의 말미에 관객들은 평화로운 마을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이 주류가 된 사회를 고발하고 있으며, 더불어 생명을 해하는 일들이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8년 제20회 개막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아녜스 바르다 · JR, 프랑스) ; Faces Places, 2017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메인 포스터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메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80대 여성 영화감독과 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30대 남성 사진작가가 함께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대해 전시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바르다 감독은 JR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일상에서, 그리고 타인의 일상에서 그들의 삶을 발견하고 함께 기뻐한다. 영화의 말미에 노년의 예술가는 삶의 끝자락인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오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바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삶은 아름답고 늙음이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임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CI

서울국제여성영화제 CI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 벌써 제21회를 맞이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이번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이다. 개막작은 그 해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주제와 맞물리고 더 나아가 시대적 프레임을 함께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간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월 5일까지 상암월드컵경기장 메가박스에서 개최된다. 상영작, 이벤트, 예매 일정 등 세부 내용은 8월 1일, 제21회 공식 홈페이지 오픈 후 확인 가능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SIWFF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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