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경기 모습... 2019 VNL 한국-러시아 (2019.6.11)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경기 모습... 2019 VNL 한국-러시아 (2019.6.11) ⓒ 국제배구연멩

 
한국 여자배구가 잘하다가 갑작스럽게 '연속 대량 실점'을 내주고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11일 자정(아래 한국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2019 VNL 4주차 첫 경기에서 러시아에 세트 스코어 1-3(23-25, 25-15, 20-25, 17-25)으로 패했다. 12일은 홈팀 이탈리아에 1-3(17-25, 21-25, 25-23, 13-25)으로 졌다. 한국은 1승 10패를 기록하며, 16개 참가국 중 15위에 머물렀다.

러시아는 한국과 경기에서 1군 주전 멤버 상당수가 출전했다. 레프트 공격수는 파루베츠(25세·183cm), 이리나 보론코바(24세·190cm), 아나 코티코바(20세·185cm) 등 주전 멤버가 모두 출전했다. 세터도 스타르체바(30세·185cm), 로마노바(25세·180cm)가 모두 합류했다. 리베로 갈키나(27세·178cm)도 주전 멤버다. 라이트 공격수로 나선 루린스카이아(23세·195cm)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신의 높은 타점과 위력적인 공격력을 선보였다.

이탈리아는 1군 주전 멤버가 모두 출전했다. 세계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인 에고누(21세·190cm)를 비롯, 레프트 피에트리니(19세·190cm), 루시아 보세티(30세·178cm), 센터 다네시(23세·198cm), 파르(18세·194cm), 세터 말리노프(23세·185cm), 리베로 드젠나로(32세·174cm)가 한국과 경기에 나섰다.

모두 지난해 열린 2018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이다. 이탈리아는 세계선수권 준우승에 이어, 최근에는 전력이 한층 강화되면서 세계 최정상급 팀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6일 VNL 중국과 경기에서도 비록 패하긴 했지만, 풀세트 혈전을 벌였다. 

김연경, 정상 궤도 진입 중... 최강 이탈리아전 '최고 활약'

러시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가장 큰 소득은 김연경이 정상 궤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대영이 중앙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김연경은 러시아전에서 17득점으로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올렸다. 공격성공률은 41.2%였다. 이어 김희진 12득점(공격성공률 35.5%), 표승주 12득점(29.4%), 정대영 11득점, 이주아 4득점을 기록했다. 러시아는 파루베츠가 16득점으로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렸다. 공격성공률은 37.8%였다.

김연경은 러시아보다 강력한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16득점을 올렸고, 공격성공률도 52%에 달했다. 수비에서도 에고누의 강서브를 받아내는 등 많은 부분을 책임졌다. 지난 5일 VNL 미국전에 첫 출전한 이후 계속 경기력이 올라가고 있다.

이탈리아전에서 김희진은 11득점(공격성공률 21.9%), 강소휘는 5득점(23.8%), 표승주는 3득점(18.2%)을 각각 기록했다. 센터진에서는 이주아 6득점, 박은진 3득점이었다.

'전위 공격수 의존' 탈피... 세터 경기 운영, 더 과감해야
 
러시아와 이탈리아전에서 한국은 똑같은 1-3 패배를 기록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과 평가는 크게 달랐다. 러시아전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아쉽게 패했다. 이탈리아전은 세계 최정상급 팀을 상대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

러시아전은 진행 과정으로 볼 때, 한국이 이길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1세트와 3세트에서 승기를 잡아놓고도 갑작스럽게 흔들리며 허무하게 역전패를 당했다.

특히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었던 3세트, 15-10으로 앞서다가 16-20으로 역전당하는 상황은 한국 대표팀의 현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연속 실점의 긴 시간 동안, 김연경은 계속 후위 자리에 있었다. 전위에 있는 레프트, 라이트 공격수가 득점을 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테이션상 전위로 올라갈 기회가 없었다.

세터의 경기 운영도 미숙했다. 연속 대량 실점을 하는 상황인 데도 공격 결정력이 약한 전위 레프트나 라이트 공격수에게 의존하는 토스를 했다. 반격 기회를 얻은 2단 연결 상황에서도 대부분 전위 공격수에게 공을 올려주었다. 반면, 파이프 공격이나 후위 공격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날 TV 생중계를 한 SBS Sports의 김사니 해설위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해설 멘트에서 "리시브가 아주 안 된 것도 아닌데, 공격에서 결정이 나지 않고 있다"며 "특히 가장 큰 문제는 김연경 선수가 후위에 있을 때 전위 선수들이 조금 더 힘을 내줘야 한다. 아니면 김연경을 서브 리시브에서 빼주고 후위 백어택을 시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스피드 배구 핵심 '파이프 공격'... V리그만 '정반대'

실제로 상대 팀인 러시아는 그렇게 해서 역전에 성공했고 승기를 잡았다. 러시아는 16-16 동점 상황에서 레프트 파루베츠의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22-18에서도 러시아는 2단 연결 상황에서 코티코바의 중앙 후위 공격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이날 승부에 쐐기를 박은 장면이었다.

스피드 배구에서 파이프 공격은 가끔 양념으로 하는 옵션이 아니다.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핵심 공격 기술이다. 실제로 세계 배구 강팀들은 모든 레프트, 라이트 공격수가 파이프 공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러나 한국의 세터와 공격수들은 평소 V리그에서 파이프 공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의 오픈 공격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국내 프로 리그에서 하지 않는 걸, 국제무대에서 하려다 보니 자신감이 없고 단조로운 전위 공격수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기 일쑤다.

그나마 이탈리아전에서는 러시아전보다 파이프 공격 시도가 늘어났다. 문제는 파이프 공격을 시도할 때, 세터와 김연경의 호흡이 아직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라이트 공격수의 후위 공격 성공률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서브 리시브, 더 잘하기 어렵다... '공격 결정력' 높여야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 2019 VNL 4주차 이탈리아 대회 (2019.6.11)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 2019 VNL 4주차 이탈리아 대회 (2019.6.11) ⓒ 국제배구연맹

  
서브 리시브가 흔들리는 문제도 계속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서브 리시브를 지금보다 더 잘하기도, 더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계 배구 추세가 갈수록 서브가 강하고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리시브를 잘한다고 평가받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 아시아 국가들은 리시브, 디그 등 수비력을 앞세워 세계 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비 배구'로는 국제무대에서 상위권 팀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세계 강팀들이 스피드 배구, 장신화, 강서브 3대 요소를 갖추면서 모든 면에서 아시아 팀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브 리시브마저도 세계 강팀의 장신 선수들이 더 잘하고 유리하다. 이는 남자배구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 여자배구가 세계 최정상에 있는 것도 '최장신 군단'이라는 핵심 바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배구가 올림픽에 2번 연속 출전하고 국제대회에서 선전한 것도 김연경(31세·192cm)이라는 세계적인 장신 공격수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아울러 대표팀의 주전 평균 신장도 세계 강팀들과 엇비슷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1~3위를 차지했고 현재도 세계 최강인 세르비아, 이탈리아, 중국의 공통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보스코비치(22세·193cm), 에고누(21세·190cm), 주팅(25세·198cm)이라는 '어려운 볼 처리'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주포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주전 멤버 대부분이 장신은 기본이고, 강력한 파워와 높은 득점력을 갖추고 있다.

결국 세계랭킹 9위인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신화에서 밀려나서는 안된다. 동시에 퍼펙트 리시브가 아니거나 2단 연결 상황에서 공격 결정력을 높여야 한다. 때문에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시대가 됐다.

시간과 싸움, '인내' 필요 

라비라니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한국 배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돌파하기 위해 '스피드 배구 완성도 높이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스피드 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충분한 전략과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여러모로 악조건이다. 라바리니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VNL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기간이 고작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양효진, 박정아, 이재영, 이소영, 김해란 등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부상 재활 때문에 VNL 대표팀에서 빠졌다.

당연히 아직 부족하고, 더 발전시켜야 할 과제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터와 공격수들의 호흡이 매끄럽고 정교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공격과 수비 조직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래야 '범실성 플레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센터진의 블로킹 능력과 활용도도 더 높여가야 한다.

한국 대표팀은 13일 오후 11시 50분 불가리아와 VNL 4주차 마지막 경기를 한다(TV 생중계 시작 기준). 국내 스포츠 전문 채널인 SBS Sports가 생중계한다. 승리를 추가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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