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에서 또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 안전망이 유약한 곳에서는, 시도하는 것 자체가 생존을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 지하창고에 살던 근세(박명훈 분)도 '대왕 카스텔라' 사업이 망하고 사채에 허덕여 업자들에게 쫓기다 못해 숨어들었죠. 그가 다시 사회 구성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던 건 누군가를 죽이려 했을 때뿐이었어요.

반지하에 살던 기택(송강호 분)도 밝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지 못해요. 기택은 '계획을 하면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게 계획'이라고 아들 기우(최우식 분)에게 말하죠. 하지만 기택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망할 걸 예상하고 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기택도 한 때는 '치킨집'과 '대왕 카스텔라' 가게의 어엿한 사장님이었던걸요. 물론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어요. 그는 '대리기사'와 '발레파킹'으로 만회하려 했지만 기택네 가족은 반지하에 사는 처지가 되죠.

삶에 스며있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뭘 해도 자꾸 안 되니까요. 그런 기택도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어요. 온 가족이 함께 '피자박스'를 접을 때에요. 열린 창틈으로 들어온 소독약 냄새에 온 가족이 신음할 때도 그는 눈을 빛내며 아들이 보여준 '피자박스 접기 달인 동영상'을 보며 따라 하기 바빠요.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건 가정에 어떻게든 더 도움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기택은 이마저 성공하지 못해요. 피자가게 직원은 완성된 박스가 25%의 불량률을 보여준다며 가족을 질책하는데요. 가족 구성원이 모두 4명이니 정확히 그 중 1명이 제대로 접지 못한 거죠. 영화는 기택이 불량품을 생산한 것으로 암시하고 있어요.

영화 제목인 '기생충'은 누구에 해당하는 말일까
 
 왜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는지 모르겠어요.

왜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는지 모르겠어요.ⓒ CJ 엔터테인먼트

  
가장 체면이 말이 아니죠. 뭘 한들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힘들게 만드니까요. 기택 부인 충숙은 노골적으로 기택을 무시해요. 충숙(장혜진 분)은 자식들 앞에서 기택에게 쌍욕을 퍼붓는 것도 서슴지 않아요. 참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택은 집 앞 전봇대에 노상 방뇨하는 사람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아요. 뻔히 냄새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기택이 항상 견디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한 방 크게 날렸거든요. 무말랭이 냄새가 난다며 자신을 은근 무시하는 부잣집 바깥양반 박 사장(이선균 분)에게 칼을 꽂은 거예요. 뭐 그것 때문에 기택은 부잣집 지하창고에 숨어 살던 근세처럼 살게 되지만 말이에요. 기택은 가정부 몰래 냉장고에서 음식을 훔쳐 먹는 것조차 근세와 똑같이 행동해요.

영화 제목이 <기생충>이라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그러면 영화에서 '기생충'은 누구를 칭하는 걸까요? 부잣집 사람들이 채워놓은 음식을 먹고, 그들이 사는 곳에 숨어 살며, 그들이 내는 전기와 수도를 이용하니까 기택은 '기생충'일까요?

기생충 뜻을 포털 한자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다른 동물 체내의 양분을 흡수하여 사는 벌레' 혹은 '남에게 의지하여 사는 사람'으로 나와요. 국어사전에는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먹고사는 벌레'.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네요.

기택은 부잣집 사람들의 재화에 의지하고 있으니 기생충일까요? 그런데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어찌 되었건 기택은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몰래 냉장고 문을 열기 위해 가정부와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센서등을 밝히기 위해 계단을 거니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죠. 이건 노력이 아닌가요?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기택이 운전기사로 일했던 때는 어떤가요? 기택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수행해요. 피곤해하는 박 사장을 위해 운전 중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을 끄는 센스를 발휘해요. 물난리 통에 살던 집이 잠긴 다음 날은 쉬는 날임에도 사장의 부름에 군말 없이 달려가죠. 물론 추가 수당을 더 주겠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애초에 운전기사 임무가 인디언 분장을 하고 뒤뜰에 숨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부잣집 사람들이 휴일에 돈을 얹어주면서까지 기택을 부른 건 그 없이 생활할 수 없어서예요. 그들은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에게 이벤트를 해주려 할 때도 누군가 필요해요. 그들 혼자 하는 일 처리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에요. 입주 도우미 문광이 없었을 때 부잣집 사모님 연교를 생각해봐요. 박 사장이 예언한 것처럼 연교는 집안 꼴을 엉망으로 만들어요. 연교의 음식 솜씨 역시 좋지 못해 박 사장은 아예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려 해요.

'남에게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기생충'의 사전 뜻에 따르면 여기서 기생충으로 불려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부잣집 사람들이에요. 기택네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없다면 그들 생활 전체가 흔들리니까요. 그들은 돈을 지급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빨아먹고 살고 있어요. 심지어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고 뚜렷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죠. 그들은 돈을 낼 뿐이에요. 반면 기택네 가족은 부잣집 없이도 살 수 있어요. 예전처럼 피자박스를 접고, 전단지를 붙이며 생계를 유지하면 되니까요.

'갑의 지시는 당연한 것'이라는 세상에서, 을의 분노는...?
 
 잘 살 수 있어요.

잘 살 수 있어요.ⓒ CJ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와 노동력의 교환은 정당한 일이에요. 그렇기에 부잣집 사람들을 쉽게 '기생충'이라 부를 수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같은 이유로 기택 역시 '기생충'이라 불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기택이 받은 임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였어요. 그럼에도 기택은 죽은 박 사장을 '좋으신 분'이라 칭하며 눈물을 흘려요. '사모님을 사랑하시니까요'라는 기택의 평이한 말에 박 사장이 발끈하며 '나한테 선 넘지 말아라'는 면박을 줬음에도 말이죠. 그뿐인가요, 박 사장은 '지금 내가 돈 줘서 일하는 것 아니냐'며 당당하게 계약관계 이외의 일인 인디언 흉내를 요구해요. 이게 오히려 노동계약의 선을 넘는 행동 아닌가요? 돈 앞에서는 그 선도 쉽게 지울 수 있는 건가요?

더욱이 기택은 이전 운전기사 처지를 걱정하기까지 해요. 딸 기정(박소담 분)에게 '남 걱정하지 말고 내 걱정이나 좀 해줘!'라며 구박받을 정도로요. 기택은 다른 사람 형편을 살필 정도로 따뜻한 성품을 지닌 거죠. 하지만 정작 운전기사를 해고한 박 사장은 그를 괘씸하다고만 칭할 뿐 그의 상황을 묻지는 않죠.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마지막 난투극은 을(乙)들의 싸움이에요. 지하에서 숨어 살던 근세가 기택의 아들 기우와 딸 기정을 연이어 공격해요. 그는 충숙에게도 덤벼들죠. 근세는 아내 문광의 죽음을 복수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근세는 박 사장을 보고 '리스펙'한다고 말하며 죽어요. 그는 자신의 불행이 기택네 가족 때문이라 생각하고 박 사장 덕분에 지금껏 살 수 있던 거라고 여겼나 봐요. 하지만 애초에 박 사장네 가족이 입주 도우미 문광을 난데없이 해고하지 않았더라면 문광(이정은 분)이 죽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박 사장이나 연교가 문광을 내쫓기 전에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최소한의 배려만 보였다면 누구도 죽지 않았을지 몰라요.

돈을 내는 사람들은 쉽게 자신들이 흔히 갑(甲)이라고 착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요.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선의가 아닌 '노동'이나 '재화'의 교환에 따른 거예요. 돈을 내는 사람도 돈을 받는 사람도 동등해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을 경계해야 해요.

혹시 당장 내 이익을 갉아먹는 것들에만 화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누군가를 혐오하는 말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향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누가 누구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살고 있나요? 누구의 양분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거죠?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생충으로 불려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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