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마루에 앉아 시원한 콩국수를 먹고 있는 혜원(김태리)의 모습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마루에 앉아 시원한 콩국수를 먹고 있는 혜원(김태리)의 모습ⓒ 영화사 수박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에 내려온 혜원(김태리). 하지만 그곳에는 엄마(문소리)가 없다.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다고 집을 떠났다. 하지만 혜원은 어엿하다. 내려온 고향엔 틈만 나면 잔소리를 해주는 고모가 있고, 말벗과 술벗이 되어주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혜원을 살아가게 하는 건 멀어진 시간 속에 엄마가 남기고 간 마법과도 같은 레시피. 아삭한 양배추 샌드위치와 시원한 막걸리, 고소한 밤조림과 뜨끈한 수제비를 만들어 먹으며 혜원은 그렇게 혼자서, 또 한 번 성장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 현장 스틸.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임순례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 현장 스틸.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임순례 감독ⓒ 영화사 수박


임순례 감독은 언제나 우리들의 변두리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데뷔작 <세 친구>(1996)에서는 고졸 청춘의 쓸쓸함을,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4인조 밴드의 애환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에서는 노쇠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변두리 세상을 중앙 무대로 끌어올린 영화다. 임용시험에 실패한 혜원과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귀농한 재하(류준열), 전문대를 졸업하고 농협에 취직해 줄곧 고향에 머무르고 있는 은숙(진기주)은 저마다의 좌절을 안고 사는 청춘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하지만 고단한 청춘들의 면면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하거나 걱정스럽지가 않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뿜어내는 흥취 때문일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카메라가 진실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따사로운 햇살이나 시원한 바람, 눈길을 머물게 하는 금빛 대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선에는 재하가 혜원에게 선물한 사과처럼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은 자연의 말없는 격려가 스며있다. 여기에 재기 발랄한 플래시백(과거 회상)과 마침맞게 활용되는 클로즈업 숏(가까이 찍기), 롱 숏(멀리 찍기)은 넉넉함과 모자람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동감있게 담아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재하의 과수원에 있는 혜원(김태리)과 재하(류준열)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재하의 과수원에 있는 혜원(김태리)과 재하(류준열)ⓒ 영화사 수박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극 중 유일한 남성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재하의 액션이다. 재하는 홀로 무서운 밤을 보낼 혜원을 위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불침번을 서는 대신 새끼 강아지 오구를 선물한다. 쓰러진 벼와 떨어진 사과 앞에서 재하가 혜원에게 보여준 모습은 남성다움이 아니라 지혜로움이다. 또한 재하는 '아주 심기'를 위해 잠시 서울로 올라간 혜원을 쫓아가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준다. 재하는 모든 담벼락을 허물고 혜원과 대등하게 교감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차근차근 건강하게 쌓아 올린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자전거를 타는 혜원(김태리)의 모습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자전거를 타는 혜원(김태리)의 모습ⓒ 영화사 수박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건 싱그러운 벼꽃 사이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내밟는 혜원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피로와 여유 같은 것이 있다. 그런 혜원을 카메라는 쫓아가지 않고 달리 아웃(카메라가 피사체에서 멀어지면서 촬영하는 것)으로 한 가득 담아낸다. 그리고는 혜원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지켜보고 기다리고. 늘 배가 고픈 혜원이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묘하게 닮아있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그렇게나 섬세하고 따뜻하다.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인고(忍苦)의 과정들이 의기투합하여 빚어낸 눈부신 땀방울. 몸이 아닌 마음을 누일 내 손바닥 안의 리틀 포레스트. 영화의 마지막, 혜원이 마당에 자전거를 파킹하고 창문 너머로 본 것은 아마 그런 게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사계절이 우리에게 준 선물도 다 그런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석주의 브런치(https://brunch.co.kr/@cinesong)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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